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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년, 노무현에게 바치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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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년, 노무현에게 바치는 노래

[김봉현의 블랙비트] "뻔뻔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요"

노무현을 잘 알았던 것은 아니다. 안 될 걸 알면서도 부산에 내려가 떨어지고 또 떨어지는 보기 드문 정치인. 딱 이 정도였다. 그래도 이상하게 그런 것만으로 차별화가 되었다.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말만 하는데, 그게 정치인들 사이에서 유달라 보였다. 그래서 대선 때 그를 지지했다. 발 벗고 나서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으로 응원했다.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당선이 확정되던 순간 나는 환호했고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는 이회창의 지지자였다. 당신에게는 5년 전의 악몽이 재현된 셈이었다. 나는 이제 새 세상이 올 거라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버럭 화를 냈다. 다 너 같은 노사모 탓이라고 했다(나는 노사모 가입 방법조차 몰랐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굳이 여기서 자세하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시간을 긍정하든 부정하든 모두가 아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만이 아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면, 바로 내 아버지의 변화다. 참여정부 5년 간 온 국민이 노무현을 탓하고 저주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그 반대로 변했다.

아버지는 노무현을 안타까워했다. "저만 진실하면 뭐하냐…. 한나라당을 잡질 못하는데…." 서거 후에는 이렇게 말했다. "똥 묻은 개들이 겨 묻은 개 나무라고 있다. 자살도 정직한 놈이 하는 거여. 정직하니까 자살을 했지. 못 견디겠으니까…." 지금의 아버지는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기본적으로는 노회찬이가 추구하는 게 맞기야 맞지…." <조선일보>를 내 손으로 끊고 <경향신문>을 구독한 게 아마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조금 뿌듯했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를 읽었다.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수록, 그리고 몰랐던 사실을 알아갈수록 남는 건 저미는 가슴이다. 비록 그 역시 완전히 새하얗지는 않았다. 실수도 했고 실패도 했다. 그러나 검은 물이 들지 않도록 평생을 치열하게 사투했다. 이 사실 앞에 숙연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명박'이란 말은 참으로 모욕적이다.

노무현은 쓸데없는 것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염치'나 '부끄러움' 같은 것. 지금의 세상을 '잘' 살아가는 데에 이런 것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뻔뻔하지 않다는 것은 도덕적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살기 위한 최상의 조건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아가기 힘겨운 인간형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뻔뻔할 줄 몰랐던 그는 자신을 바위 밑으로 내던졌다.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그것이 과연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만한 이유였습니까?" 그러나 물을 자신이 없었다. "왜 그것이 자살할만한 이유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되물을 그의 모습이 뻔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그런 사람이었다.

주절거림은 이쯤 해두기로 한다. 이미 나온 추모 글들이, 그리고 앞으로도 쏟아질 그것들이 내 이야기를 대신해 줄 것이다. 이제 나는 내 정치적 첫사랑이자 환갑이 넘도록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이 꿈 많은 청년을 내 방식대로 기리고 그리워하려고 한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떠올리며 들어볼만한 몇 곡의 노래를 준비했다. 그가 통기타를 무릎에 얹고 직접 불렀던 <상록수>와 함께 한번쯤 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지난 10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1주기 추모심포지엄 '노무현이 꿈꾼 진보의 미래'에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플래카드가 걸렸다. ⓒ뉴시스

1. 2Pac <Me Against the World> from [Me Against the World](1995)
요절한 래퍼 투팍(2Pac)은 단순한 힙합 뮤지션이 아니었다. 그는 흑인사회의 운동가이자 대변자였다. 흑인에게 가해지는 부조리를 비판했고 그들의 힘든 삶을 위로했다. '나와 세상 간의 싸움' 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제목의 이 노래는 각박하고 치열한 삶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고 다짐한다. 독재와, 지역주의와, 조폭언론과, 그 밖의 모든 몰상식과 평생을 싸웠던 노무현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곡이다.



2. Nas <Black President> from [Untitled](2008)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 뒤에는 흑인 사회의 수많은 노력이 있었다. 힙합 뮤지션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Vote or Die'라는 티셔츠를 입고 거리로 나갔고, 오바마 지지 곡을 잇달아 발표했다. 래퍼 나스(Nas)의 이 곡 또한 오바마를 절절하게 지지하고 있다. 노무현도 이렇게 대통령이 되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평범한 마음이 모여, 동전 가득한 돼지 저금통이 모여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 어떤 이들은 그를 가리켜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어쩌면 "We ain't ready to see a black President(우린 흑인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라는 이 곡의 가사처럼, 그가 아닌 우리의 준비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미련하게 권력을 다 내어주고, 조폭언론과는 싸워도 국민과는 싸우지 않았던, 그런 대통령을 맞이할 준비가.



3. Dilated Peoples <Proper Propaganda> from [Expansion Team](2001)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와 에픽 하이(Epik High)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던 래퍼 라카(Rakaa)가 소속되어 있는 힙합 그룹 다일레이티드 피플스(Dilated Peoples)의 이 곡은 제목 그대로 미디어의 허위 및 왜곡 선전에 일갈을 날린다. 또한 곡의 도입부에 흐르는 나레이션은 경찰이 이들의 평화적인 콘서트를 강제 폐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떤 족벌 신문들과 어떤 정부의 법치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들이 노무현을 죽였다.



4. 015B <독재자> from [The Sixth Sense](1996)

실험성과 젊은 감각으로 90년대를 풍미했던 그룹 공일오비(015B)의 여섯 번째 앨범은 그들의 제일 가는 문제작으로서 세기말(?) 기운이 넘쳤다. '희망은 거짓의 옷을 입고 있다'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섬뜩한 곡은, 결과적으로 그로부터 십여 년 후의 대한민국 현실을 정확히 예견했다. 물론 노무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죽음을 떠올릴 때 함께 생각나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다. 주어는 없다.

5. Edgar Winter's White Trash <Dying to Live> from [Edgar Winter's White Trash](1971)
70년대 록 밴드 에드가 윈터스 화이트 트래쉬(Edgar Winter's White Trash)의 곡이다. 피아노 반주에 맞춰 흐르는 애잔한 보컬과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동시에 주목할 것은 가사다. "You know, I wonder if they'll laugh when I'm dead(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비웃을지 나는 궁금해)/ Why am I fighting to live, If I'm just living to fight(단지 싸우기 위해 사는 거라면 나는 왜 살기 위해 싸우는 걸까)/ Why am I dying to live, If I'm just living to die(단지 죽기 위해 사는 거라면 나는 왜 살려고 발버둥 치는가)/ You know, I'm trying to live until I'm ready to die(죽을 준비가 될 때까지 나는 살려고 노력할거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던 노무현도 수없이 해보았을 고민이 아니었을지.



6. Dynamic Duo <끝(Apoptosis)> from [Band Of Dynamic Brothers](2009)
힙합 듀오인 다이나믹 듀오(Dynamic Duo)가 작년에 발표한 이 곡은 세상에 지치고 시달려 한강변으로 가 몸을 내던지는 한 젊은이의 심리를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극적으로 서술한다. 이른 새벽 부엉이 바위로 향했던 그의 심정이 이랬을까. 고요한 봉하 들판을 내려다보며 그는 삶의 끝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7. Bone Thugs-N-Harmony <Crossroads> from [E. 1999 Eternal](1995)
독창적인 멜로디-랩 스타일을 선보였던 그룹 본 석스-앤-하모니(Bone Thugs-N-Harmony)의 그래미 어워드 수상 싱글이다. 전설적인 랩 그룹 N.W.A.의 멤버이자 본 석스-앤-하모니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래퍼 이지-이(Easy-E)를 추모하는 뜻을 담은 곡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 곡을 통해 이지-이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See you at the crossroads. So you won't be lonely(하늘의 맞닿은 길에서 만나요. 당신이 더는 외롭지 않도록)" 나는 하늘에 있는 노무현에게 이렇게 외칠 테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뻔뻔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에서 다시 만나요."



*필자의 블로그에서 더 많은 음악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http://kbhm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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