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는 경상도보다 지리적인 이점이 훨씬 많다. 우선은 산지가 많지 않고 비옥한 평야 지대라서 농산물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또 전라도는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큰 서해안도 끼고 있어 개펄과 어량 어업에 더 유리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도 한정식의 풍부함은 이런 지역적 특성만 가지고 설명하기 곤란하다.
역사가 남도 한정식의 풍요로움을 만들었다
예컨대, 경상도라 하더라도 진주와 같은 고을은 평야가 있어 농산물이 풍부하고 바다가 가까워 해산물도 많다. 그런 지역적 특성 덕분에 특색 있는 음식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남도 한정식과 같은 풍성한 상차림이 보이지는 않는다.
남도 한정식의 풍부함에는 아마도 역사적인 배경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나주 지방은 고려 초기부터 나주 나 씨와 같은 호족의 근거지였다. 결국 고려의 건국도 이 지방 호족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당연히 개성을 근거로 한 중앙 정치에도 깊숙이 간여했다. 그것은 결국 개성의 호사스러운 삶 일부를 자신의 향리에도 가져갔음을 뜻한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도 남도는 유배지로 채택될 만큼 머나먼 땅이었다. 그만큼 중앙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호남의 고택을 보면 사대부의 집에서는 허용되지 않은 둥근 기둥을 한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둥근 기둥은 왕궁과 절에만 허용되었는데 사대부의 집에도 이를 쓴 것이다. 이는 호남의 남쪽이 그만큼 세속적인 규율로부터 자유로웠음을 증명한다.
호사스러운 남도의 한정식도 이런 문화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조선조 사대부 가운데서 영남학파에 비해 호남의 선비들이 조금 더 소외되었고, 근검절약을 중시하는 사대부 문화의 엄격함에서 더 자유스러웠던 것이 남도 한정식에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또 벼슬에서 물러나 물질적으로 풍부한 생활을 누리며 할 수 있는 것이 시와 노래, 술, 그리고 맛있는 음식 말고는 달리 또 무엇이 있으랴.
일품 요리로 정형화된 전주비빔밥
호남의 음식 가운데 요즘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비빔밥이 아닐까 싶다. 비빔밥을 한자로는 골동반(骨董飯)이라 하는데 이는 19세기 말 <시의전서>에 나온 용어다. 그 방법이 지금의 전주비빔밥과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전주식 비빔밥을 파는 집에서는 골동반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일종의 궁중 음식이 일반에 전해져 나온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밥 위에 무언가를 얹어 먹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이를테면 중국에서도 밥 위에 고기 한 덩이와 채소 볶은 것을 얹어 먹는 방식은 흔하고, 일본만 하더라도 '돈부리'라는 덮밥 형식 자체가 이 비빔밥과 크게 다른 형식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나물을 많이 먹는 민족이니만큼 고기보다 나물에, 그리고 장에 주안점이 옮겨간 것밖에는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전주에만 비빔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크게 보아 특색 있는 비빔밥으로는 해주반, 진주비빔밥, 경상도의 헛제삿밥, 통영비빔밥 정도를 들 수 있다. 저마다 약간씩 재료와 제법의 차이는 있지만 제 고장에서 흔히 나는 재료를 밥 위에 얹어 비벼 먹는다는 데에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반찬을 밥에 얹어 비벼 먹는다는 것은 요즘도 식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며, 그 재료가 무엇이든지 별로 구애가 없다.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에도 고추장이나 된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을 수 있으며, 더군다나 많은 사람이 함께 밥을 먹어야 할 때에는 이 방법이 더욱 효과적이다. 실제로 비빔밥의 재료 대부분은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에서 찾을 수 있고, 제사가 끝난 뒤의 식사에서 대가족 전체가 제사 음식을 나누려면 비빔밥이 효과적이었을 수도 있다.
전주비빔밥이 이름난 것은 그 비비는 방식 때문이 아니라 일품요리로서 정형화를 이뤄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콩나물도 임실에서 나는 서목태를 기른 것을 써야 한다든지, 장은 어떻고, 비빔밥에 들어가는 서른 가지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야 한다는 일정한 규범을 따르며 맛을 지킨 것이 바로 지금처럼 비빔밥의 대명사가 된 까닭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흔히 한식 세계화를 이야기할 때 비빔밥을 첫손가락으로 꼽는다. 비빔밥이 햄버거와 같은 '패스트푸드'로 자리 잡을 수 있으리라 여겨 그런 것 같은데, 비빔밥이 제대로 되려면 '슬로푸드'일 수밖에 없다. 비빔밥이 재료 면에서 건강에 좋은 음식임은 틀림없지만, 그 서른 가지 재료를 제대로 비비려면 각 재료의 공정 하나하나가 엄격하게 정형화된 '슬로푸드'여야 한다.
잔혹한 음식, 애저
비빔밥이 오늘날처럼 음식점 메뉴로 자리 잡은 것은 아주 오래된 일 같지 않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의 하나로 꼽힌다. 호남을 대표할 만한 음식을 또 하나 꼽자면 애저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애저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끔찍한 음식이다. 어미 돼지 태 안의 새끼 돼지를 먹는 것이다. 어미 돼지의 앞으로의 생산성과 새끼 돼지의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호사스러운 음식이 아닐 수 없다. 농경 사회에서 돼지 한 마리가 지닌 가치도 대단한데, 앞으로의 모든 생산성을 포기하고 식도락을 위해 가장 연한 돼지를 탐한다는 것 자체가 언뜻 보기에는 비도덕적인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의 육식 습관 자체가 잔혹한 것이니, 먹는 것에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반드시 올바르다고는 할 수 없다.
애저는 어미 뱃속의 새끼 돼지를 잡는 것이지만 정 이것이 어려우면 갓 태어난 돼지를 쓰기도 한다. 그냥 푹 삶아 양념장이나 새우젓을 찍어 먹기도 하지만 찜으로 먹기도 한다. 찜은 방법이 아주 복잡하다.
끓는 물에 파와 미나리, 순무를 넣고 애저를 삶는다. 푹 무르면 살을 찢고 뼈를 발라서 내장과 파, 전복, 해삼, 표고, 박 오가리 등을 썰어 넣고 파, 생강, 참기름, 참깨 등을 양념으로 하여 주무르고 중탕을 한다.
이렇게 한 다음에는 달걀지단을 부쳐 위에 얹고 잣가루와 후춧가루도 뿌려 상에 내놓는다. 먹을 때에는 겨자를 찍어 먹는다. 이렇게 제법이 복잡한 것은 오랜 세월을 두고 요리법이 완성된 경우가 많다. 실제로 조선 시대의 많은 책에서 이 요리를 찾을 수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
논과 들과 바다, 자연의 축복이 어린 전라도 음식
추어탕은 전국 어디에서나 즐겨 먹었던 음식이지만 이제는 웬만한 추어탕집에 가면 옥호에 '남원'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남원은 전라도 가운데서도 바다와 멀리 떨어진 곳이니 바닷고기 대신 미꾸라지를 훨씬 즐겼을 듯하다.
추어탕의 재료인 미꾸라지는 가을 무렵에 이를 잡아먹는다 하여 '추어'가 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논에서 벼와 함께 자라나 가을 무렵이면 새끼가 살이 오른다. 추어탕은 그야말로 개울과 논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즐겨 먹을 수 있던 보양식이었다.
추어탕을 끓이는 방법은 추어의 모양에 따라 대체로 세 가지다. 첫째는 가시가 센 미꾸라지를 그대로 가시가 흐물흐물할 정도로 푹 삶는 것으로, 주로 중부 지방에서 많이 쓰던 방법이다. 둘째로는 뜨거운 탕 속에 덩어리 두부를 넣고 산 미꾸라지를 그대로 넣어 미꾸라지가 두부 속으로 파고들게 익히는 방법이다. 북쪽과 전라도에서 이런 방법을 썼다.
남원의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따로 삶아서 체에 놓고 걸러 살점만을 따로 발라 닭 국물에 갖은 양념과 채소를 넣고 끓인 것이다. 먹을 때는 미꾸라지의 비린내를 없애려고 산초 가루를 넣고 먹는다. 이렇게 먹는 추어탕은 가시가 없어 가장 먹기 좋았기에 전국적으로 남원추어탕이 추어탕의 대명사가 된 것 같다.
또한, 개성 음식의 백미로 보쌈김치를 내세우듯 호남에서는 고들빼기김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고들빼기는 중부 이남이면 들에서 자라는 것이니 고들빼기로 김치를 담그는 것은 경상도나 충청도도 마찬가지지만, 전라도의 고들빼기김치는 그 풍성한 재료만큼이나 특별하다.
야생 고들빼기는 쓴맛이 강하기에 고들빼기를 다듬어 물에 담그고 돌로 눌러 일주일 이상 물에 우려 쓴맛을 가시게 한다. 그런 다음 물기를 없애고 마늘과 생강, 젓국을 섞고 고춧가루로 양념한다. 양념뿐만 아니라 밤과 당근, 실고추, 잣, 참깨도 풍부하게 들어간다.
예전에 배추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에는 주로 무로 김치를 담갔을 것이다. 하지만 무김치에만 만족할 수 없는 입맛에 고들빼기나 갓과 같은 재료들이 김치의 주재료로 등장했을 것이다. 거기에 쓰이던 재료와 방법들 덕분에 배추김치도 더욱 맛있어졌음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라도의 대표 음식으로 무엇보다도 홍어를 빼놓을 수는 없다.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항아리에 넣어 삭힌 것을 찜으로 먹고 회로 먹으며, 돼지고기·묵은 김치와 함께 삼합으로 즐기기도 한다. 홍어의 톡 쏘는 맛은 홍어에 들어 있는 성분이 자연 발효가 된 것인데 암모니아 냄새가 지독해서 처음 접하는 사람은 질색하지만 맛을 들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전라도의 넓은 개펄에서 잡은 벌교의 꼬막, 목포의 세발낙지 등도 전라도의 대표적인 입맛으로 꼽힌다. 젓갈도 남도의 또 다른 풍미인데 곰삭은 멸치젓이 된장 대신 쓰이기도 한다. 또 민물 새우인 토하젓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만큼 맛있다.
재료의 본디 맛을 살리는 경상도 음식
이처럼 전라도 음식이 논과 들, 바다가 어우러진, 그야말로 자연의 축복을 받은 데에 비해 경상도는 산이 많고 바다에 개펄이 드넓지 못해 전반적으로 음식 재료가 조금 달리는 듯하다. 하지만 진주, 상주, 안동과 같은 지방은 전라도 못지않은 음식들을 자랑한다.
예전에는 낙동강 하류에서 유명했고 강어귀 둑을 막은 다음에는 하동에서 이름난 재첩은 벌교의 꼬막에 비할 만하며, 제삿밥에서 나온 진주비빔밥은 전주비빔밥과 견주어 손색이 없다. 제사상에 올리는 생선을 조달하기 위한 안동의 간고등어나 상어구이 또한 홍어의 위세와 견줄 만하다. 전라도 음식에 비해 양념의 활용도가 떨어지지만, 양념을 많이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음식 재료의 본디 맛을 잘 느끼게 한다는 장점도 있다.
진주에서 먹어본 것으로 가장 맛있었던 가자미 매운탕을 예로 들면, 전라도의 매운탕은 흔히 고추장과 참깨 또는 들깻가루를 넣어 국물이 걸쭉하고 온갖 채소를 풍부하게 넣지만, 진주의 가자미 매운탕은 그저 가자미와 무,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고 끓이는, 언뜻 보기에는 멋없는 매운탕이다. 하지만 가자미의 본디 맛은 이런 매운탕에서 깊이 느낄 수 있다. 진주야 바다가 가까워 좀 사는 사람들은 대구를 즐겨 먹었겠지만 서민들은 가자미를 즐겨 먹었다.
경상도 음식으로 가장 보편화된 음식은 두루치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두루치기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것이 다르다. 남도의 것은 콩나물, 무, 배추, 버섯 등의 채소를 따로 볶고 쇠고기, 처녑, 간과 같은 고기도 볶아 양념장을 넣고 물을 부어 끓인 일종의 전골과 같은 음식이다. 북도의 것은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볶다가 김치를 썰어 넣고 김칫국물을 부어 만드는 일종의 김치볶음이다.
아마도 남도의 것이 재료가 귀한 북도에 와서 단순하게 바뀐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대구에는 따로국밥이라는 것도 있는데 고춧가루, 파, 부추, 마늘 등을 넣고 소뼈를 푹 고아 밥을 말아주지 않고 따로 준다 해서 따로국밥이다. 시장에서 팔던 음식이 이제는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경상도의 두루치기를 좀 더 쉽게 만든 것으로 짐작한다.
제사상에서 유래한 경상도 음식
경상도의 대표적인 음식들을 살펴보면 많은 부분이 제사와 연관되어 있다. 팔도 음식 대부분이 유교의 제사 음식과 관련이 없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나 경상도가 특별히 그런 관계가 더욱 밀접하다는 말이다.
대개 대표적인 음식이라 함은 그래도 어느 정도 사는 반가의 음식에서 유래했고 반가의 가장 중요한 의례인 제사와 관련이 있음은 지당한 사실일 테지만, 산이 많고 바다의 혜택을 그리 많이 받지 못한 경상도 땅에서는 이런 특색이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이를테면 진주의 비빔밥도 헛제삿밥에 유래를 두고 있으며, 제사상에 올리는 포나 적도 모두 이와 관련이 있다.
안동의 간고등어나 상어 고기도 반가에서 제사상에 올릴 생선을 마련한 데서 비롯되었다. 안동은 내륙 지방이라 멀리 떨어진 동해안에서 생선을 사 와야 했다. 바닷가에서 생선을 사서 우마차에 싣고 오노라면 싱싱한 생선이 발효되니까 안동에서 소금을 뿌려 간고등어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사실 이는 추운 날씨에나 가능한 것이다. 고등어는 쉬 상하는 생선이라, 더운 여름철에 이렇게 만든다면 거의 먹을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지금은 이를 지역 상품화하였는데 바닷가에서 생선을 실어와 안동에서 간고등어를 만든다. 하지만 197~80년대만 하더라도 안동이나 경상도 내륙지방에서 먹는 간고등어나 상어구이는 거의 소금 덩어리인 짜디짠 맛이었다.
덧붙이자면 안동에서 가장 뛰어난 음식은 무엇보다도 안동식해를 꼽을 수 있다. 찹쌀, 엿기름, 무, 생강, 콩나물, 고춧가루로 만드는 안동식해는 보기에 흉측한 모양과는 달리 입에 착 감긴다. 안동찜닭도 유명하지만 찜닭은 전국에 다 있었던 것이고 요즘에 파는 안동찜닭은 맵다는 것을 빼고는 다른 지방과 다를 바가 없다.
비빔밥과 냉면의 고장, 진주
진주비빔밥은 헛제삿밥이 조금 더 화려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헛제삿밥은 제사상에 기본으로 올리던 무나물, 고사리나물, 콩나물 등의 나물을 간장에 비벼 먹던 데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제사를 마치고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끼리 나눠 먹었는데, 제사를 지내지 않을 때도 제삿밥처럼 차려 먹으니 '헛' 자를 붙여 헛제삿밥이라 한 것이다. 고추장을 쓰지 않고 조선간장에 비벼 먹는 맛이 아주 담백하다.
진주비빔밥의 경우 콩나물은 대가리를 떼어내고 참기름과 육수, 소금을 넣어 볶고 고사리도 볶는다. 무는 채를 설어 간장을 넣고 붉은빛이 나도록 볶는다. 숙주와 쑥갓은 데쳐서 참기름, 마늘, 간장으로 무친다. 여기에 쇠고기를 채 썰어 양념하여 육회로 얹고, 청포묵을 채 썰고 김도 부셔 올린다. 바지락을 다져 참기름에 볶아 육수를 내어 비빔밥에 함께 붓는다. 그리고 비빔밥을 먹을 때에는 서울 해장국 같은 선짓국과 함께 먹는다.
진주는 냉면도 유명하다. 진주의 냉면은 국물이 고깃국물이 아닌 멸치, 대합, 홍합을 넣어 우려낸 해산물 육수인 것이 특이하다. 면도 남도의 것처럼 메밀은 조금 넣어 향만 내고 전분을 넣어 질깃한 것이 특색이다. 특별히 고명이 많은데 전복·문어와 같은 해산물, 석이·오이·배와 같은 농산물, 쇠고기 육전과 달걀지단을 올린다. 이 진주냉면은 재료의 특성 때문인지 중부 지방까지는 진출하지 못했는데, 부산이나 경주에 가면 밀면이라는 좀 더 싼 형태로 정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바다 한가운데 섬들의 별미
남도의 섬으로는 제주도가 있다. 지금은 관광지로 많이 찾는 곳이지만 원래는 아주 벽지로 고 씨가 왕을 하던 외딴섬이었다. 제주도에도 넓은 들은 있지만 물이 없기에 예전에는 벼농사를 할 수 없었다. 해운도 불편하던 시절, 밭만 가진 제주도 사람들은 조를 주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토종 흑돼지로 살이 연하다고 하여 유명해진 제주도 똥돼지는 사료를 줄 여유가 없었기에 측간에서 사람의 똥을 받아먹게 하여 기른 것이다. 그만큼 제주도의 삶이 고단하고 먹을 것도 없었다는 뜻이다. 다행히 수산물은 풍부한 곳이라서 해녀들이 잡은 전복이나 고기들이 입맛을 달래주었을 것이다.
제주도 음식으로는 전복의 살을 다지고 내장을 넣어 끓인 전복죽이 가장 유명했다. 이제는 제주도에서도 천연 전복이 귀해, 전복죽을 먹어도 그 전복은 완도에서 양식한 것을 다시 배 타고 운송한 것이기 십상이다.
제주도에서만 잡히는 자리돔도 특산물이다. 손바닥만 한 생선이지만 내장과 머리, 꼬리를 떼어내고 잘게 썰어 초고추장을 찍어 먹거나 물회로 먹는다. 또 하나의 제주도 별미는 '깅이젓'이라 부르는 게장이다. 제주도에서는 게를 '깅이'라 부르는데 게를 잡아 조선간장을 달여 넣고 삭힌 것이다. 게장이 제주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깅이젓'은 곰삭은 게장 맛이 일품이다.
바다 건너 동해에는 울릉도가 있다. 오래된 화산섬인 울릉도는 위도상으로는 꽤 북쪽에 있지만 바다 가운데 있어 따뜻하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는 고장이다. 울릉도에서 제일인 음식은 따개비와 홍합을 쌀에 넣어 밥을 지은 따개비밥, 홍합밥이다.
오징어가 많이 잡히는 이곳은 오징어요리도 다양하다. 울릉도 하면 호박엿이 유명한데 흔히 호박으로 엿을 만드는 줄 알지만 엿에다 호박을 넣은 것이다. 울릉도에서 호박을 많이 심는 이유는 섬 전체가 비탈이라 다른 농사를 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명이나물도 이 섬에서 나는 특산품이다. 그냥 나물로 먹기도 하지만 장아찌로 담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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