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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32] 강렬한 파동,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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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32] 강렬한 파동,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공연리뷰&프리뷰] 백조가 날개를 펴는 순간, 관객은 미련 없이 압도당한다

물가를 거닐고 있는 한 무리의 백조. 가냘프면서 고귀한 이미지의 백조는 그동안 가장 여성적이라고 파악되는 지점에 당연하듯 서 있었다. 고정돼 있던 발레의 여성성은 어떠한 판타지를 생성했다. 이는 클래식 발레 '백조의 호수' 탄생 이후 지금껏 변하지 않았으며, 백조에 덧입혀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힘을 입어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왕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백조, 그런데 여기 그 백조가 남성이다.

▲ ⓒ프레시안

백조가 날개를 퍼덕이지만 더 이상 가냘프고 순결하지 않다. 상반신을 노출시킨 백조의 하체는 하늘거리는 튀튀 대신 무성한 깃털로 덮여있다. 이것이 관객의 허를 찌른 지 15년, 매튜 본의 댄스뮤지컬 '백조의 호수'는 지치지도 않고 관객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남성백조들의 절도 있는 동작, 대기를 힘껏 가르는 날갯짓은 강렬한 파동을 일으키며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야성적이고 공격적이지만 아름다운 남성백조는 역동적 움직임으로 무대를 채운다. 시선을 압도하는 백조가 매섭게 공연장을 배회한다. 발을 억압하는 토슈즈는 없다. 자유로워졌고 자유로워진 만큼 객석 곳곳을 커다란 날개로 쓰다듬는다.

- 현실에서 멀어지는 인간이야기

▲ ⓒ프레시안
원텍스트의 고정적 이미지를 비틀고 풍자하며 새롭게 탄생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고전발레의 형식과 기법을 파괴, 여러 가지 무용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표현의 극대화를 가져왔다. 남성무용수들이 몸으로 이뤄내는 음악의 화음은 실로 자극적이며 날카롭다. 성정체성의 한계를 극복한 이 작품은 백조를 비롯해 원작 인물들의 성격들을 다양하게 바꿨다. 현실적인 인간성의 부각은 삶과 조금 더 밀접해지며 고독과 방황, 성적 욕망 등 다양한 극적 재미를 선사한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에는 용감하고 사랑에 헌신적인 왕자 대신 유악하며 유아적 정신 상태에 머물러 있는 왕자가 등장한다. 어머니에 대한 왕자의 사랑 역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표방, 이 사랑은 어머니의 강함에 대한 동경과 다르지 않다. 냉랭하고 비정상적인 심리상태 속에서 만나게 된 백조 역시 남성이다. 백조는 왕자의 이상향으로 나약한 자신의 모습과는 달리 도발적이며 매력적이다. 긴 목선을 가진 채 촘촘하게 움직였던 여성백조는 없다. 예리한 시선을 가진 남성백조는 세밀한 근육을 움직이며 강한 생명력을 나타낸다. 왕실 무도회에 낯선 남자의 모습으로 등장한 백조로 인해 왕자는 혼란을 겪는다. 더욱이 어머니와 낯선 남자(백조)라는 두 동경의 대상이 서로를 탐닉하면서 왕자는 당연한 파국으로 치닫는다. 왕자는 두 개의 구원요소를 동시에 상실한다.

- 현실에 발 디딘 백조이야기

▲ ⓒ프레시안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댄스뮤지컬이라는 수식만큼 뮤지컬을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서사는 치밀해졌고 무대장치와 의상, 조명의 효과적 사용은 시각적 만족 외에 다양한 상징성을 내포한다. 또한 왕실의 허영과 그 안에서 성숙되지 못한 인간상, 마약과 동성애, 방탕과 분륜 등 실질적 문제를 건드리므로 감정의 기폭 영역도 확장됐다. 곳곳에 숨어있는 유머와 위트는 무거운 주제 및 소재 전달을 한결 가볍고 경쾌하게 풀어낸다. 발레 관람에 있어서의 난해함이 없다. 이 모든 것이 남자무용수만으로 가능하다.

다양한 연출 효과 역시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달콤하면서도 자극적이다. 치료를 받는 왕자를 둘러싼 간호사들의 기형적 얼굴과 그들이 이루는 그림자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왕자와 백조의 2인무는 여성이 표현하지 못할 관능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마지막, 왕자의 침대를 둘러싸고 이뤄지는 백조들의 투쟁은 완벽한 대단원을 장식하며 전율을 이끌어낸다. 감동받기에 어쩔 수 없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다양한 매력들로 인해 더욱 풍부해지며 관객들의 기립을 유도한다. 백조와 왕자의 은밀한 시선교환이 이뤄질 때, 관객은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백조의 품에 안겨 영원한 휴식을 얻게 된 왕자가 모습을 드러낼 때, 여성관객들은 불쌍한 왕자가 되기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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