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
백조가 날개를 퍼덕이지만 더 이상 가냘프고 순결하지 않다. 상반신을 노출시킨 백조의 하체는 하늘거리는 튀튀 대신 무성한 깃털로 덮여있다. 이것이 관객의 허를 찌른 지 15년, 매튜 본의 댄스뮤지컬 '백조의 호수'는 지치지도 않고 관객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남성백조들의 절도 있는 동작, 대기를 힘껏 가르는 날갯짓은 강렬한 파동을 일으키며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야성적이고 공격적이지만 아름다운 남성백조는 역동적 움직임으로 무대를 채운다. 시선을 압도하는 백조가 매섭게 공연장을 배회한다. 발을 억압하는 토슈즈는 없다. 자유로워졌고 자유로워진 만큼 객석 곳곳을 커다란 날개로 쓰다듬는다.
- 현실에서 멀어지는 인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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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에는 용감하고 사랑에 헌신적인 왕자 대신 유악하며 유아적 정신 상태에 머물러 있는 왕자가 등장한다. 어머니에 대한 왕자의 사랑 역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표방, 이 사랑은 어머니의 강함에 대한 동경과 다르지 않다. 냉랭하고 비정상적인 심리상태 속에서 만나게 된 백조 역시 남성이다. 백조는 왕자의 이상향으로 나약한 자신의 모습과는 달리 도발적이며 매력적이다. 긴 목선을 가진 채 촘촘하게 움직였던 여성백조는 없다. 예리한 시선을 가진 남성백조는 세밀한 근육을 움직이며 강한 생명력을 나타낸다. 왕실 무도회에 낯선 남자의 모습으로 등장한 백조로 인해 왕자는 혼란을 겪는다. 더욱이 어머니와 낯선 남자(백조)라는 두 동경의 대상이 서로를 탐닉하면서 왕자는 당연한 파국으로 치닫는다. 왕자는 두 개의 구원요소를 동시에 상실한다.
- 현실에 발 디딘 백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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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연출 효과 역시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달콤하면서도 자극적이다. 치료를 받는 왕자를 둘러싼 간호사들의 기형적 얼굴과 그들이 이루는 그림자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왕자와 백조의 2인무는 여성이 표현하지 못할 관능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마지막, 왕자의 침대를 둘러싸고 이뤄지는 백조들의 투쟁은 완벽한 대단원을 장식하며 전율을 이끌어낸다. 감동받기에 어쩔 수 없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다양한 매력들로 인해 더욱 풍부해지며 관객들의 기립을 유도한다. 백조와 왕자의 은밀한 시선교환이 이뤄질 때, 관객은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 백조의 품에 안겨 영원한 휴식을 얻게 된 왕자가 모습을 드러낼 때, 여성관객들은 불쌍한 왕자가 되기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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