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국이 유럽보다 자유롭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국이 유럽보다 자유롭다?

[이정전 칼럼] 자유와 자유의 충돌

얼마 전 전교조회원 명단공개 문제로 정치권이 한 때 떠들썩하더니 한나라당은 이 문제를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치이슈로 삼을 예정이라고 한다. 전교조 측은 양심의 자유 및 결사의 자유를 외치고 있고, 명단을 공개하는 측은 법원의 명단공개 금지처분이 학부모의 알 권리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국회의 정치활동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불복하고 있다. 저마다 자유를 강하게 요구하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자유와 자유가 충돌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혹시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자유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흔히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나눈다. 소극적 자유란 외부의 방해나 간섭 없이 원하는 행위를 할(원치 않는 행위를 하지 않을) 자유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소극적 자유는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불간섭 자유)를 의미한다. 적극적 자유는 주체의식을 가지고 자기실현을 위해서 어떤 행위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소극적 자유는 외적 간섭이나 방해가 없음을 강조하는 개념이고 적극적 자유는 자율성과 자기실현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 전교조 명단 공개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 ⓒ연합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자유 모두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특히 강조되는 자유는 소극적 자유 혹은 불간섭 자유다.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가 강하게 요구하는 자유는 이 불간섭 자유이며, 우리나라 보수주의자가 집요하게 요구하는 자유 역시 불간섭 자유다. 불간섭 자유 중에서도 특히 신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신성시하는 자유는 경제적 자유, 즉 외적 간섭이나 규제를 받지 않고 돈을 마음대로 벌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번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다. 이들은 바로 이런 경제적 자유가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이들의 말이 옳다면,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가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자유가 넘칠 만큼 충분히 보장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불간섭 자유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비교적 자유를 풍부하게 누리고 있는 사회인 것 같다. 유럽에서 오래 살다가 온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나라가 유럽 사회보다 더 자유스러운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유럽에서는 토지이용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매우 강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은 교내에서 정문의 위치를 바꾸기 위해서 정부의 허가를 얻는데 수년이 걸렸다는 일화가 있다.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스위스에서는 개인이 집을 짓거나 고칠 때 집의 모양은 물론이고 집의 색까지 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일일이 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그러니 이 나라 도시들이 아름다울 수밖에 없고 관광객이 들끓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유럽 국가들의 토지제도가 건축부자유의 원칙 혹은 계획우선의 원칙(계획고권의 원칙)에 입각한 계획지향형이라고 말한다. 개인은 자신의 토지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음을 원칙으로 하되, 개별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사전적으로 작성된 세부적 토지이용계획에 따라 개인의 토지이용이 심사되고 허가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과 우리나라는 개인이 자유롭게 토지를 이용함을 원칙으로 하되 이로 인한 부작용을 사후적으로 규제하는 이른바 시장지향형 토지제도를 택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처럼 개인의 토지이용이 자유로운 나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소극적 자유에는 단서가 붙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유를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자유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도 높아지고 또한 사회도 점차 더 복잡해지면서 이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유를 행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조망권이나 일조권을 침해하지 않고 건물을 짓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다. 하다못해 산 한 가운데나 논바닥 한 가운데 집을 지어도 미관을 해친다는 둥 꼴불견이라는 둥 온갖 불평이 쏟아진다. 그 만큼 사람들의 환경의식이 높아졌고 앞으로는 더욱 더 높아질 것이다. 앞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점점 더 강해지면, 기업의 활동에도 많은 제약이 가해질 것이다. 이와 같이 자유와 자유 사이의 상충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단서를 충족시키면서 불간섭 자유를 행사할 여지도 점차 좁아지고 있다. 그러니, 단순히 소극적 자유를 주장하고 요구할 뿐만 아니라 자유와 자유 사이의 충돌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일에도 우리 사회가 배전의 노력을 기우려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간섭 자유의 행사는 경제력에 비례한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여행도 많이 할 수 있고, 대기오염이나 소음을 피해서 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가 살 수도 있으며, 원하는 곳, 원하는 시간에 얼마든지 쇼핑을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부자들은 정부의 간섭이나 규제가 자유행사의 방해가 된다고 불평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경제력이 자유행사의 큰 제약이 된다. 그러므로 경제적 불평등은 곧 자유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 사회의 소득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어서 걱정인데, 헌법에 보장된 자유의 행사에 있어서도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니 더욱 더 걱정이다. 이제 단순히 불간섭 자유를 주장하고 요구할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골고루 소극적 자유를 누리게 하는 데에도 우리 사회가 좀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