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12일 상장된다. 삼성생명은 공모가(11만 원) 기준으로 시가총액 22조 원으로,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차, 신한지주에 이은 시가총액 5위의 거대 상장사가 출현하게 됐다. 공모주 청약 경쟁률이 40대 1에 달하는 등 '투자 광풍'이 일었던 점을 감안하면 삼성생명의 시가 총액은 더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삼성생명 상장은 최근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공포로 크게 출렁이고 있는 주식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삼성생명 상장으로 4조 원 '대박'난 이건희 회장, 계약자들은?
액면가 500원이던 주식이 11만 원이 됐으니 삼성생명 상장으로 가장 큰 시세 차익을 얻게 되는 사람은 전체 주식의 20.76%를 보유하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가치는 4조5671억 원으로 삼성전자 지분 3.88%(4조1000억 원)를 넘어서 이 회장의 '재산목록 1호'가 됐다.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이 회장이 보유한 주식은 8조8000억 원을 넘어서 현대차 등 4조 원대의 주식을 보유한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도 비교할 수 없는 '슈퍼 거부'가 되는 셈이다.
이처럼 삼성생명 상장으로 주주들은 '대박'이 났지만, 계약자들에게 돌아오는 건 한 푼도 없다. 지난 2007년 생보사 상장자문위원회는 "생보사는 완전한 주식회사이며, 배당 문제 등에서 보험계약자의 권익을 침해한 바도 없고, 따라서 상장에 따른 자본이득은 모두 주주 몫"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앞서 금융감독위원회도 2004년 "계약자의 이익은 인정할 수 없다"고 같은 결론을 내렸다.
상당수 계약자들은 이런 결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생명이 형식적으로는 '주식회사'지만 실질적으로는 '상호회사'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생명은 1990년대 대부분 배당보험을 팔았기 때문에 결손시 주주가 손실을 보전하지 않고 계약자 배당 준비금으로 충당했다. 이처럼 삼성생명이 계약자에게 손실을 떠넘겼으므로 이익이 나는 경우에도 계약자에게 상당 부분 나눠주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삼성생명 상장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보험소비자연맹은 지난 1월 삼성생명 유배당보험 계약자 2802명을 모아 미지급 배당금을 달라고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냈다. 이미 감독기관이 삼성생명의 '손'을 들어준 상태에서 법원이 계약자들에게 유리한 결정을 가능성이 커보이지는 않지만 10여년을 끌어온 이 논쟁은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삼성생명 상장의 일등공신, 삼성특검
삼성생명 상장과 연관돼 주목해야할 또 하나의 문제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다.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을 상장하지 못한 중요한 이유가 금산분리 규정 때문이었다. 얼마 전까지 삼성생명의 1대 주주였던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이 상장됐을 경우 삼성전자에 대한 경영권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상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생생명 지분의 가치가 에버랜드 자산총액의 50%를 넘으면 에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가 되고, 그 자회사(삼성생명)가 비금융 손자회사(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은 위법이다. 이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부사장으로 경영승계를 위한 '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출자구조에서 치명적 약점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이 문제를 풀어준 게 아이러니컬하게도 '삼성특검'이었다. 삼성특검은 숨겨진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차명 주식을 찾아냈고, 이 회장이 이 주식을 실명전환하면서 에버랜드(지분율 19.34%)를 제치고 1대 주주가 됐다. 그래서 금산분리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도 삼성생명 상장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은 차명주식 보유의 대가로 처벌이 아닌 막대한 시세차익과 삼성전자 경영권 유지라는 선물을 받았다"고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11일 삼성생명 상장을 앞두고 낸 논평에서 밝혔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경제개혁연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 '삼성생명의 이상한 상장'에서 삼성생명이 신주를 발행하지도 않고 이 회장이 구주를 팔지도 않는 '이상한 상장'을 하게 된 이유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경영 승계 문제와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희 회장이 1.42% 이상의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할 경우, 다시 에버랜드가 최대주주가 되고 금융지주회사 문제가 재연되기" 때문에 이 회장은 구주 매출에 나설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비상장 회사가 상장을 통해 그 지배구조 상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제고되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 통상적인 예임에 비추어본다면, 삼성생명의 상장은 오히려 해당 회사는 물론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 상의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의 최종적인 향배는 지금 이 순간 이 회장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비록 불법은 아니라고 하지만, 삼성생명의 그 이상한 상장이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강조했다.
천정배 의원은 "삼성생명 상장과 관련해 이 회장은 최소한 도덕적, 상식적으로 당당하지 못하다"며 이 회장에게 계약자의 몫을 자진해서 사회에 환원할 것과 삼성생명 주식 상속 등 향후 경영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속세에 대해 더 이상의 탈세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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