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안한 느낌 안 들어요. 왜냐하면 제 생활 자체가 항상 저는 열심히 살아요. 저는 뭐, 여태까지도 열심히 살아왔고, 또 진짜 열심히 살거든요? 그래서 그거에 대한 보답이지 그냥 뭐 내가 운이 좋아서, 그냥 이게 어느 날 뚝딱 된 거라고 생각은 안하거든요?"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소유자)
"재테크를 몰라서 집을 못 산 사람은 참 바보인 것 같아요. 제가 바보인 것 같아요. 너도나도 집에 대해서, 재테크에 관심이 많고 융자를 얻어서 집을 사고 이러는 시점에 사실은 저는 간이 작아서…. 융자를 얻어서라도 집을 샀어야 되는데…."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 전세 입주자)
▲ <주거 신분 사회 : 타워팰리스에서 공공임대주택까지>(최민섭·남영우·강민석·천현숙·김태섭·조주현 지음, 창비 펴냄). ⓒ프레시안 |
강남 아파트와 땅에 대한 욕망,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사람의 현실 인식, 서울 중심 사회를 살아가는 지역민의 소외감, 신도시 개발을 둘러싼 욕망의 이전투구, 뉴타운 개발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구술 면접을 통해 가감 없이 책을 메운다.
이 책에서 저자의 입장은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처연함을 풍긴다. 책에서 그려지는 오늘날 한국인의 삶은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주는' 아파트 논리로 모든 생활이 매몰된다. 그리고 이 '아귀다툼'의 먹이사슬 최정점에 강남 고급 아파트가 자리잡았다.
고급 아파트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은 경쟁에서 패배한 '바보'일 뿐이다. 이들과 섞이지 않고자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은 아파트 경계에 담을 쌓아 올린다. 어느새 집은 아이들의 교우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라며 정책적으로 지원되는 부동산 금융은 오히려 집값만 더욱 높이고 사람들의 꿈을 더 먼 곳으로 날려버렸다.
그나마 지역민은 이런 경쟁조차 꿈꾸지 못한다. 지역에서 살다 서울로 이사하는 사람들은 마치 이질적인 세계에 들어온 것인양 혼란을 느끼기 일쑤다. 부동산 투기 열풍은 이 '이질적 세계'를 전국 곳곳으로 퍼뜨리고 있다.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시금 욕망의 늪에 허우적댄다.
구어체를 손질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책에 담아내, 어떤 부동산 관련 자료보다 생생하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현란한 통계 없이도 한국의 부동산 현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짚어낼 수 있었던 공로는 저자들의 충실한 인터뷰와 부연 설명에 돌려야 할 것이다.
최민섭 서울벤처정보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의 책임연구 아래 남영우 나사렛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최은영 메리츠증권 부동산금융연구소 전임연구원, 강민석 메리츠증권 부동산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천현숙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김태섭 주거환경연구원 연구실장,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여섯 가지 주제를 밀도 있게 연구해 주거가 곧 사람의 신분이 되는 한국의 현실을 독자에게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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