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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작은 용산'…기적의 현장을 보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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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작은 용산'…기적의 현장을 보러 오세요!

[여기가 용산이다] 이적(異蹟)은 누가 만드는가

'붕어빵에 붕어 없고 칼국수에 칼 없다'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킬킬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혹시 '칼국수 없는 칼국수 음악회'라는 말은 들어보셨는지? '칼국수 음악회'는 재미삼아 지어낸 말이 아니고, 엄연히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정기 공연 중인 음악회의 이름이다.

칼국수 음악회에 참석하고 싶으면 매주 금요일 오후 7시 30분에 홍대 앞 식당 '두리반'으로 가면 된다. 가수는 그때그때 바뀌는데, 얼마 전에는 까락 뺀빠라는 티베트 가수를 초대하기도 했다. 그 전에는 연영석, 이수진, 조약골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과 인디밴드들이 참여해서 무대를 빛내주었는데, 이제 외국 가수까지 섭외를 할 정도가 됐으니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공연이라 하겠다.

칼국수 음악회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러니 부담 없이 들러서 흥겹게 놀다오면 된다. 다만 칼국수 음악회에서 왜 칼국수는 제공하지 않느냐는 타박만은 늘어놓지 않기 바란다. 두리반의 대표 메뉴였던 칼국수를 내놓고 싶어도 지금은 한국토지신탁과 LG건설에 의해 강제 폐업 중이므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두리반이 이번 싸움에서 이기게 된다면, 그때 와서 두리반 칼국수의 명성을 확인하시기 바란다.

두리반 농성은 대한민국 철거 싸움에서 특이하고도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재개발 지구 안에서 오로지 한 집만 남아 싸우고 있다는 게 첫 번째 특이한 일이고-그럼에도 안종녀 사장님은 대원을 두 명이나 거느리고 있는, 전철연 산하 동교동세입자철거투쟁위원회 위원장이시다-다음으로는 철거 현장을 온갖 예술인들이 모여들어 난장을 펼치는 문화 거점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요일에는 하늘지붕 음악회, 화요일에는 '푸른영상'이 주관하는 다큐 상영, 목요일에는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이 주관하는 촛불 예배. 금요일에는 앞서 말한 칼국수 음악회, 토요일에는 인디밴드들이 출연하는 '사막의 우물 두리반'을 위한 자립 음악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사진에 담아 기록하고 있는 사진 작가와 두리반의 투쟁을 글로 기록하는 작가들이 있다.

용역들이 둘러친 철판을 한밤중에 뚫고 들어가 농성을 시작할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이제 많은 벗들의 지지와 방문 덕에 한결 여유로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농성 첫날 인천작가회의 회원들이 달려가 매직으로 철판 벽마다 항의 글을 적고, 2층 창문에 구호를 써서 붙일 때만 해도 농성이 100일을 훌쩍 넘기게 될 줄은 몰랐다. 더구나 지금처럼 인디밴드들이 앞 다투어 두리반으로 몰려들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 홍대 앞 철거 직전의 식당 '두리반'에서는 100일째 요술 같은 일이 진행 중이다. 투기 자본이 평당 800만 원짜리 땅을 8000만 원으로 올려놓는 이적을 선보였다면 두리반은 인간다운 삶을 지켜내고자 하는 낮은 목소리들의 연대라는 이적으로 맞불을 놓고 있는 중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예수가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였다는 오병이어의 일화 못지않은 이적(異蹟)이 두리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투기 자본이 평당 800만 원짜리 땅을 8000만 원으로 올려놓는 이적을 선보였다면 두리반은 인간다운 삶을 지켜내고자 하는 낮은 목소리들의 연대라는 이적으로 맞불을 놓고 있는 중이다.

농성 100일을 맞아 흥겨운 잔치판을 벌였던 두리반은 지난 5월 1일 또 다른 이적을 만들어냈다. '투쟁을 축제처럼!'이라는 모토 아래 <51+>라고 이름 붙인 프로젝트가 그것이었다. 세계 노동절 120주년을 맞아 두리반에서 한바탕 축제의 난장을 펼쳐 보인 '뉴타운컬쳐파티'라는 이름의 전국자립음악가대회!

5월 1일에 맞춰 51개의 밴드를 모아 공연을 해보자는 취지였는데, 기획 단계부터 호응이 넘쳐 순식간에 51개 밴드를 훌쩍 넘겨버렸다. 신청 밴드가 60개를 넘어서자 더 이상 받을 수 없다며 거절하느라 바쁠 정도였다. 수십 명에 이르는 자원 봉사자도 어렵지 않게 모을 수 있었다.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티켓 예매를 했는데, 좁은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매를 신청하는 바람에 이 또한 미리 마감을 해야 했다.

드디어, 5월 1일 낮 12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두리반 건물 전체와 뒷마당에서는 쉴 새 없이 음악이 흘러나왔고,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공연을 구경했다. 홍대 앞이라는 지리적 특성에 맞게 괴상한(?) 복장과 헤어스타일을 한 젊은이들은 물론 적잖은 수의 외국인들도 흥겨운 잔치판에 함께했다.

이 모든 일은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며, 시킨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할 수도 없는 일이다. 굳이 배후 조종자를 대라면 돈에 눈이 먼 투기 자본의 횡포라고나 할까?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며, 저항에는 특별히 정해진 방식이 있을 수 없다. 억압이 진화하면 저항의 방식도 진화해야 하는 법! 그러므로 이번 공연은 철거 투쟁사에서도 인디밴드 역사에서도 흔치 않은 사건으로 기록될 게 분명하다. 단순히 철거 투쟁과 인디밴드의 만남이라는 차원을 넘어 상상의 울타리를 넘어선 새로운 연대와 투쟁의 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적(異蹟)은 결코 예수와 같은 신적인 존재만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비록 가진 것 없고 힘도 약하지만, 탐욕으로 똘똘 뭉친 투기 자본에 외롭게 맞서고 있는 두리반 식당을 찾는 이들이 늘어날 때, 이적은 현실이 되어 우리에게 놀라움과 희망이라는 선물을 안겨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이적을 두리반에서 충분히 목격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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