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정수완 프로그래머, 드니 코테 감독, 제임스 베닝 감독,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 민병록 집행위원장. ⓒ프레시안 |
올해 '디지털 3인3색'에 참여한 감독들은 모두 이전에 전주를 방문한 적이 있고, 수상 경험도 있는 감독들이다. 이는 정수완 프로그래머가 밝힌 바에 따르면 전주영화제 측이 "새로운 감독을 발굴하는 것 못지않게 이미 발굴한 감독들과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 역시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베닝 감독은 2008년 <RR>을 들고 전주를 방문한 바 있으며, 2년 전인 2006년에는 <원 웨이 부기우기 / 27년 후>가 전주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적이 있다. 캐나다 출신의 드니 코테 감독은 장편데뷔작인 <방랑자>로 2006년 전주영화제에서 우석상을 수상했고, 아르헨티나가 낳은 젊은 신예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 역시 2008년 <도둑맞은 남자>로 전주영화제 우석상을 수상했다.
이번 디지털 3인3색에서 감독들이 선보인 작품들은 각각 <선철>(제임스 베닝), <에너미 라인즈>(드니 코테), <로잘린>(마티아스 피녜이로)이다. <선철>은 독일 HKL제철소에서 강철을 제련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은 31분짜리 작품이고, <에너미 라인즈>는 병정인형을 등장시킨 전쟁 미스터리 코미디물. <로잘린>은 작은 섬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의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로잘린'이라는 제목 역시 원래 '뜻대로 하세요'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 드니 코테 감독, 제임스 베닝 감독,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프레시안 |
그간 주로 16mm 필름으로 작업해온 제임스 베닝 감독에게 이번 <선철>은 두 번째 디지털 작업이다. 처음 작업할 때보다 디지털 기술을 더 잘 활용할 수 있었다고 밝힌 제임스 베닝 감독은 "16mm로 작업할 땐 10분 내외의 한계까 있었는데 디지털은 그런 제한이 없다"고 밝혔다. 드니 코테 감독의 <에너미 라인즈>는 제목만 보면 여느 헐리우드 전쟁 블록버스터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드니 코테 감독은 "헐리웃 영화에 관심이 별로 없고, 오히려 병정인형을 등장시켜 헐리웃 전재영화를 놀려먹고 싶었다"고 밝힌다. 그런가 하면 피녜이로 감독은 "내 모든 영화에 출연했던 마리아 빌라는 나의 개인적인 친구이기도 한데, 셰익스피어의 이 희곡을 읽고 마리아에게 역을 맡겨 영화화하고 싶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영화화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 때문에 이번 디지털 3인3색 제안을 받으며 '뜻대로 하세요'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로잘린>을 만들게 된 배경을 밝혔다.
세 감독 모두 자신의 작품에 머나먼 아시아의 관객들이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깊은 인상을 지니고 있는 듯 보였다. 다시 전주를 방문한 것에 대한 소감과 전주영화제에 대해 갖고 있는 인상을 밝혀달라고 말하자, 세 감독은 모두 "처음 작품 초청을 받았을 때 머나먼 이국의 나라에서 내 작품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드니 코테 감독의 경우 '지역색이 강한' 자신의 영화에 한국에서 관심을 두어서 놀랐고, 더욱이 우석상까지 수상하면서 더욱 놀랐다고. 상을 수상할 당시 리스본에 있느라 전주를 방문하지 못한 대신 프로듀서를 보냈다는 드니 코테 감독은 상까지 수상했다는 소식에 "대체 전주영화제가 어떤 영화제인지 너무 궁금해져서 조사를 해보니, 꼭 와봐야 할 영화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08년 전주를 방문했는데, 다른 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가 10분만에 끝나는 것과 달리 전주에서는 무려 1시간이나 '시네토크'란 이름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고 밝혔다. 마티아스 피녜이로 감독은 "전주영화제는 내가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존재"라는 말로 전주영화제에 대한 인상과 감사를 전했다. 그의 첫 장편 <도둑맞은 남자>가 전주영화제에서 우석상을 수상하면서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만든 <그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가 전주에서 또 다시 소개될 수 있었다는 것.
한국음식을 좋아한다는 제임스 베닝 감독은, "예술가란 무언가를 자세히 관찰하고 이를 보고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며 자신의 작업의 의의를 밝혔다. 그의 영화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것도 "프레임 안에 있는 것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하는 반면, 프레임 바깥에 있는 것들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카메라가 움직이면 그냥 스쳐보게 될 것을, 카메라를 고정시킴으로써 더욱 자세히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관객들이 직접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영화에 대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민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드니 코테 감독은 "전쟁물에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오랜 시간 여자 없이 남자들끼리 지내는 남자들의 공동체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에너미 라인즈>를 구상해냈다. 그의 이전 작품들 역시 이렇게 여자 없이 오랫동안 남자들끼리 지내는 생활을 다룬 영화들이다. "남자들이 처음 만났을 때에는 다들 터프하고 마초적인 척하지만, 그들끼리 지내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점점 두려움과 같은 진짜 감정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에너미 라인즈> 역시 마찬가지. 처음엔 마초적인 척하던 남자들은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저런 감정들을 드러내게 된다.
그렇다면 피녜이로 감독은 왜 숱한 작가들 중 하필 고전 중의 고전인 셰익스피어를 선택했을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오늘날 공연해도 충분히 좋을 만큼 현대적이고, 인물들 역시 충분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것을 갖고 현재에 적응시키는 작업을 좋아한다"고 밝힌 피녜이로 감독은 "셰익스피어의 코미디 역시 단지 과거에 머물 작품이 아니며, 로잘린이란 캐릭터 역시 상당히 복잡한 인물이라 매우 현대적"이라고 밝혔다.
▲ ⓒ프레시안 |
기자회견 끝에 세 감독은 시종일관 웃고 잡담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핸드프린팅 행사를 가졌다.
한편 '디지털 3인3색 2010'은 1일 밤 첫 상영을 마친 상태. 이후 3일과 5일에 걸쳐 두 번의 상영이 남아있으며, 관객과의 대화도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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