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수 의견>(들녘)을 펴낸 손아람(31) 씨가 인터뷰 말미에 한 말이다. 상식적으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소수 의견>의 내용은 이렇다. 서울 도심 재개발 지구 망루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16세 철거민 소년이 용역 깡패의 폭력에 죽음을 당했고, 그곳에 같이 있던 아버지는 진압 작전을 펼치던 경찰을 각목으로 때려 죽였다. 아버지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로 기소됐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죄를 주장했다. 경찰이 자신의 아들을 때리는 걸 보고 그것을 막고자 각목을 휘둘렀다는 것. 아버지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당방위다. 그의 변론을 맡은 국선 변호사는 법정에서 아버지의 무죄를 밝혀내고자 불철주야 뛰어다닌다.
여기까지 들으면 많은 독자는 이 소설이 용산 참사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경찰의 과잉 진압이 그렇고, 이로 인해 사람이 죽은 설정 역시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용산 참사를 소설로 썼을까?
손아람 씨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고 결국 말도 안 되는 재판 결과가 나왔다"며 "용산 참사는 법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되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손 씨는 "법이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며 "이 소설은 분명 실화가 아니지만 실화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이 카페에서 <소수 의견>을 집필했다.
▲ 손아람 씨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고 결국 말도 안 되는 재판 결과가 나왔다"며 "용산 참사는 법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프레시안(허환주) |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법이 우리 사회에 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손아람 씨는 용산 참사를 텔레비전을 통해 접했다. 그때 든 생각은 '반복적이고 보편적인 일이 또다시 발생했다' 정도였다.
"용산이 특수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단지 국가가 반복적으로 내놓는 분비물처럼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구나 하고 생각했죠. 과거 역사에서 국민이 국가에 의해 희생당한 일이 너무 많았잖아요. 그런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심각한 문제라고 느낀 건 용산 참사 재판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철거민이 있었기에 재판은 철거민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식이 될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정반대였다. 철거민이 피고인이 됐고 국가가 원고가 되었다.
손아람 씨는 전부터 법이 우리 사회 기저에서 작용하는 걸 소설로 다뤄보려고 고민 중이었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용산 참사를 둘러싼 재판이 딱 그랬으니까.
용산 참사와 관련한 자료뿐만 아니라 여러 판례 등을 모으기 시작했다. 국가 소송 재판, 형사 소송 재판 등을 연구하며 법리 공부도 동시에 진행했다. 용산 참사 재판은 물론 국민참여재판 등도 직접 참관했다. 손아람 씨의 동생이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에피소드는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다. 하나하나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주인공인 국선 변호사가 국가를 상대로 100원 소송을 낸 것은 2008년 지율 스님이 왜곡 기사를 게재한 <조선일보>에 정정 보도 게재 불이행시 매일 10원을 배상할 것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일에서 가져왔다.
검사가 국선 변호사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면서 영장에 없는 다른 증거품을 압수해가는 장면은 과거 제주도에서 있었던 사건에서 가져왔다. 검사가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부분도 과거 이태원햄버거 가게 살인 사건을 맡았던 검사가 기자에게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한 것에서 가져왔다.
한아람 씨는 "어떻게 보면 현실이 허구보다 더 과격하다"며 "현실에 있었던 일인데도 출판사에서 초고를 받아보고 '너무 과장됐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서 법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법이 이렇게 작용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법은 기계적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 <소수 의견>(손아람 지음, 들녘 펴냄). ⓒ프레시안 |
"검사의 경우 국가를 자기 종교로 믿는 사람입니다. 법과 이데올로기가 그 사람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거죠. 판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변호사도 무슨 정의감에 불타 철거민 사건을 맡은 게 아닙니다. 그냥 국선 변호사로서, 일로서 사건을 맡았을 뿐이죠.
법을 다루는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입장이 존재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걸 통해 법이 기계적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법이 적용되는 맥락(사람, 정치 등)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용산 참사 재판의 경우도 손아람 씨가 보기엔 법이 적용된 게 아니라 법을 둘러싼 특정한 맥락의 정치가 작용된 것이다. 그는 "용산 참사 과정에서 나왔던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검찰에서는 증인을 60명 신청했다. 국민참여재판 무마가 목적이었다"며 "판사의 판결 역시 법과 괴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법보다는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회"
책의 제목에는 작가가 말하고 싶은 열쇳말이 들어가는 게 보통이다. <소수 의견>도 마찬가지다. 법률 용어로 '소수 의견'은 합의체(合議體)에서 다수결에 의하여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다수의 찬성을 얻지 못한 채 폐기된 의견을 말한다. 헌법재판소, 대법원 등이 합의체에 속한다.
한국 대법원의 재판에는 그 재판에 관여한 대법관의 의견을 표시하게 되어 있는데(법원조직법 15조) 이 경우에 과반수의 의견이 되지 못하는 의견이 곧 소수 의견이며 반대 의견이라고도 한다. 소수 의견은 비록 그 사건에서는 무시된 것이지만, 이것이 어느 시기에 가서는 다수 의견이 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다수 의견 못지않은 중요성을 가진다.
소설에서도 소수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한 소수 의견과는 다르다. 다수의 의견을 소수가 뒤집기 때문이다. 손아람 씨는 "다수가 옳다고 결정을 내리더라도 결국 힘 있는 한 명이 그것을 뒤집을 수 있는 게 한국 사회"라며 "이를 통해 법보다는 권력에 의해 이 사회가 좌지우지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현실 속 용산 참사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용산 참사 1심 재판에서 철거민 9명은 징역 6년 등 중형이 내려졌다. 오는 5월 10일에는 항소심 최종 변론 공판이 진행될 예정이다. <소수 의견>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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