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있다. 천안함 침몰과 같은 돌발변수가 공간을 좁혀버렸다. 그것이 경쟁, 나아가 싸움 속성을 벗어날 수 없는 선거전에 울타리를 쳐버렸다. 애도와 통합의 분위기를 강제하면서 '전쟁' 무대를 좁혀버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 천안함을 비껴갈 여지가 아예 없는 게 아니라면 선거전은 별도의 트랙에서 얼마든지 전개될 수 있다.
따로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전선과 전열의 불일치다.
지방선거가 그렇다. 권역별로 공약을 내놓고 권역별로 단체장을 뽑는 선거이기 때문에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더 크게 작용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각 정당은 '대전선' 즉 전체 선거판을 아우르는 공통 이슈를 내걸고 지방선거에 임해왔다. 바로 안정론 대 심판론이다.
하지만 갖춰지지 않았다. 전선은 쳤지만 전열은 정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파리 날린다. 구호와 공약과 설전을 쏟아부어야 할 전선에서 찬바람만 쐬고 있다.
여당은 상관없다. 전선에 찬바람이 분다고 해서 애달파 할 이유가 없다. '맥빠진 선거'가 안정으로 가는 한 경로일 수 있으니까 그렇다. 문제는 야당이다.
▲ 프레시안이 주최한 경기지사 야당 후보 토론회 장면 ⓒ프레시안 |
아이러니하게도 심판론의 주포로 설정했던 후보단일화(야권연대는 사실상 물거품이 됐으니까 논외로 하겠다)가 오히려 심판론에 찬물을 끼얹고 야당에 찬바람을 맞힌다. 전선 부각을 가로막고 국민 관심을 저해한다. 후보단일화가 김빼기의 주범이 돼 버린 것이다.
그 예가 경기지사 선거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한나라당 후보로 일찌감치 확정됐는데도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선거판에 얼굴 들이밀고 열변을 토하지 않는다. 지사실에 앉아 느긋하게 선거전을 관망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야당 후보들이 연대 결렬을 선언해놓고도 다시 후보 단일화를 한다고 설레발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야당 후보들이 단일화 문제 때문에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바람에 과녁 이동을 하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심판하자는 사람들이 정작 심판 대상과 싸울 여력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야당 후보들은 본게임에 오르기도 전에 오픈 게임에 기진맥진해 하고 김문수 지사는 짧고 굵은 본게임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막판 스퍼트'를 올리면 만회할 수 있으니까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기만 하면 '마지막 불꽃'을 환하게 밝힐 수도 있다. 하지만 보장이 없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사과'와 '단일화 방법'을 놓고 한 치 양보 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민노당은 야권연대가 아닌 합종연횡식의 후보 단일화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고 있으니 현재로선 보장이 없다.
행여 이대로 끝나면, 설레발만 치다가 공수표만 날리면 모든 게 끝난다. 야당이 뒤늦게 심판 전선에 달려가봤자 아무 소용없다. 소모적인 후보단일화 입씨름에 질린 국민들이 선거를 아예 거들떠보지 않으면 그곳에서 뒷머리만 긁적이게 된다.
이치는 늘 같다. 단순하다. 약과 독은 동전의 양면이다. 심판론의 최대 무기로 설정했던 후보 단일화가 심판론의 김을 빼는 송곳이 될 수도 있음을 목도하며서 다시 깨우치는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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