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은 우리말로 대중영합주의 혹은 인기영합주의라고 번역되는데, 은연중에 일반대중의 뜻을 치기로 치부하거나 무식의 탓 혹은 정치선동의 탓으로 돌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포퓰리즘의 이름으로 대중을 비난하는 정치가의 태도에는 은연중에 오직 소수 엘리트들의 생각만이 옳다는 사고방식이 배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정치권에서 나도는 포퓰리즘은 본래 의미와는 상당히 다른 것 같다. 흔히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가 포퓰리즘의 원조 격으로 알려져 있다. 마치 각 개인이 생명과 의지를 가지고 있듯이 공동체로서의 사회도 생명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루소는 이 의지를 '일반의지(general will)'이라고 불렀다. 아주 오래 전부터 동양에서는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있었고 서양에서도 '국민의 목소리는 신의 목소리'라는 말이 있었다. 루소가 말하는 일반의지는 그렇게 절대적이고 신성한 뜻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상당히 권위를 가진 개념이다. 루소는 일반의지가 공익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서 항상 옳은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일반의지를 알아내서 이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정치의 도리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사상이 본래 의미의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일반의지를 알아내는 한 가지 방법은 국민투표다. 말하자면, 국민투표는 천심으로서의 민심을 알아내는 한 가지 방법이다. 물론, 루소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도 많다. 국민투표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간주되는 국민의 뜻을 알아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정권을 바꾸고 관료의 임기를 제한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현실적 수단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유력하다. 어떻든 오래 전부터 정치사상가들이 말하는 포퓰리즘은 요즈음처럼 일반 대중의 의사를 비꼬거나 백안시하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떠받들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개념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이란 민(民)을 받드는 정치사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본래의 의미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영국 캠브리지사전에는 일반국민의 필요나 소망을 대변하기 위한 정치사상이나 활동을 의미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원래의 포퓰리즘은 경제학 이론이나 시장주의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임을 가정한다. 사람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바나 목표를 잘 알고 있고 이것을 가장 잘 달성하는 수단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람들의 의사는 존중해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합의한 것 역시 최대한 존중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시장에서 결정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합리적인 사람들 사이의 거래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즉, 가격은 합리적인 사람들이 합의한 사항이요, 따라서 옳은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자들, 특히 보수성향의 경제학자들이나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을 거의 절대시한다.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이 비싸니 싸니 하고 시비를 것을 못 참는다.
▲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무상급식을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포퓰리즘이라는 비판 이면에는 대중들은 우매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연합 |
다수의 합리적인 사람들 사이에 합의된 것이 왜 옳은가? 이에 대한 보수성향 경제학자들이나 시장주의자들의 대답은 통계적으로는 대수의 법칙에 기반하고 있고 상식적으로는 '대중의 지혜'를 바탕으로 한다. 한 사람의 생각보다는 열 사람이 생각이 잘못될 가능성이 적고, 열 사람의 생각보다는 100사람의 생각이 틀릴 가능성이 낮다. 사람의 수가 많아질수록(집단이 클수록) 이들의 평균적 선택이 옳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요지의 '대중의 지혜' 이론은 대수의 법칙에 상응한 개념이다. 물론, 경제학자들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합리적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합리적이라고 굳게 믿는다. 사실, 인간이 별로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증거를 최근 수많은 과학자들이 무수히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나 시장주의자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경제학은 신자유주의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원리를 신봉하면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되도록이면 시장을 통해서 해결하거나 시장의 원리로 풀어나갈 것을 주창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정부의 간섭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각 개인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 각 개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최선이라고 본다. 요컨대, 경제이론이나 신자유주의의 밑바탕에는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과 대중의 지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대다수의 사람들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면 경제학의 이론은 대부분 와르르 무너진다. 만일 대중의 지혜가 믿을 수 없다면 신자유주의는 설득력을 잃는다.
이렇게 보면, 요즈음 정치가들이 입에 자주 올리는 포퓰리즘은 경제이론(시장의 원리)에도 맞지 않고 신자유주의와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어떤 용어를 나쁜 의미로 사용하든 좋은 의미로 사용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 지적하려는 것은 한 입으로 두 가지 말은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보수성향 정치가들은 대체로 시장의 원리와 신자유주의를 굳게 신봉하는데, 그렇다면 포퓰리즘의 이름으로 대중의 의사를 무식의 소치로 돌리는 발언은 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다수의 사람들이 무상급식을 지지한다면, 시장의 원리와 신자유주의를 믿는 정치가는 이들을 향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대중영합주의로서의 포퓰리즘은 시장의 원리나 신자유주의와 배치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상급식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일관성을 지적할 뿐이다. 만일 다수의 사람들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면 시장의 원리와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관료는 이들을 향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혈세로 미분양아파트를 사들이는 정부의 조치도 시장의 원리에 어긋난다. 경제학자들이나 시장주의자들은 부실한 건설업체들을 철저하게 퇴출시켜야만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성향의 정치가들이나 관료들이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계속 포퓰리즘으로 매도하고 정부의 미분양아파트 매수를 지지한다면 이들은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어떨 때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장의 원리와 신자유주의의 잣대를 들이대고 또 어떨 때는 다수의 사람들이 일부 몰지각한 정치가들의 인기영합작전에 걸려들었다면서 엘리트주의 잣대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이중 잣대가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명박 정부는 시장의 원리와 신자유주의를 굳게 신봉하는 보수층의 절대적 지지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출범한 정권이다. 그리고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시장의 원리와 신자유주의를 표방해왔다.
만일 이 정부가 진정 시장의 원리와 신자유주의에 충실하다면 세종시 수정안과 같은 관제 사업은 절대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도시로 만들기 위해서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퍼붓는 것은 보수성향의 경제학자들이 아주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은 재고되어야 한다. 4대강 사업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금만큼 결국 민간부문이 쓸 돈이 줄어든다는 사실(기회비용)을 보수성향 경제학자들은 매우 안타깝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업들을 강행한다면 결국 정부는 시장주의나 신자유주의 외에 또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 또 다른 잣대란 보수성향의 경제학자들이 아주 싫어하는 엘리트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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