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의 공식 출마 선언으로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 실시 여부에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경선 여부를 두고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대립 전선이 형성되고 있고, 야권연대 무산에 대한 책임론까지 확전되며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다.
경선과 전략공천 사이
천정배 의원 등 비당권파 의원들 중심으로 결성된 '민주당 쇄신모임'은 21일 회동 후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과 전남북지사 후보 경선은 민주당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경선을 촉구했다.
2006년에 이어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에 재도전하는 이계안 전 의원은 이와는 별도로 "지도부가 한 전 총리에 대한 전략공천을 강행하면 민주당에 내일은 없다"며 전면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들이 '경선'을 강력히 촉구하는 것은 지도부와 한 전 총리 측에서 경선을 꺼리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한 전 총리 출마선언식 축사를 통해 "민주당이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카드"라고 한 전 총리를 치켜세웠다. 당 지도부에서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가 갖는 의미를 고려해 가장 확실한 카드를 전략공천한다는 방안이 논의됐고, 한 전 총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실제로 민주당은 지방선거 경선 구도를 짜며 서울시장 경선을 4월 25일로 잡아놨으나, 사실상 한 전 총리 재판 일정 등을 지켜보며 경선 후보 등록도 연기하는 등 준비를 해오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25일 경선은 물 건너간 셈이다.
일정만 문제가 아니다. 지도부에서는 정권심판의 상징적 인물인 점, 경쟁력이 있는 유일한 카드라는 점 등에 의해 한 전 총리를 노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 전 총리의 가치 극대화를 위한 전폭적 지원이 필요한데, 경선이 벌어질 경우 불필요한 상처만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본선 경쟁력 키우기에 주력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솔직히 말해 한 전 총리 외에 대안이 있느냐"며 "경선을 해도 결과는 뻔 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도부 측에서는 "다 알면서 비주류 측에서 지도부 흠집을 내기 위해 무책임한 주장을 하는 것"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사라진 민주당 경선 흥행, 책임은?
그런데 문제는 한 전 총리를 기다리는 동안 민주당 지방선거 경선 흥행 구도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이다.
제주도 우근민 전 지사 영입·탈당 파동을 시작으로 전남북 경선이 무산됐고, 지도부가 야심차게 도입했던 시민배심공천제는 여론조사 방해 의혹과 각종 폭로전이 난무하며 열흘이 지나도록 재심 결론도 못 내리고 있다. 여기에 경기지사 경선 문제로 야권연대까지 무너지며 '한 가족 두 지붕'인 국민참여당과 헐뜯기 싸움까지 벌어지고 있다.
호남에서 시작해 서울에서 경선을 마무리하겠다던 계획은 완전히 무너졌고, 역으로 서울 한명숙 발 돌풍이 지방까지 퍼져 나가는 전략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계파 성향의 한 의원은 "이제 기대할 것은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열기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냉소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스텝이 완전히 꼬이자 비당권파 측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쇄신모임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야권연대 결렬에 대해 "당 지도부의 무능과 전략 부재도 한 몫 했다"며 "그 과정에서 보였던 소통부재, 당내 민주주의 실종도 심각한 문제"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지도부가 단일한 '룰'을 만들지 않아 혼선만 초래했고, 갈등 국면에서의 조정 능력도 한계를 드러내는 등 지방선거 전략 수립 및 이행 과정에서의 지도부 '독단'을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다.
'국민모임' 소속의 한 의원은 "개인적으로 한 전 총리를 존경하고 능력을 인정하지만, 이 문제는 개인이 아닌 당 내 민주주의의 문제"라며 "지도부의 한명숙 추대론은 그 많던 서울시장 후보군이 거의 다 사라졌다"고 선을 그었다.
이들은 특히 "야권연대 결렬, 광역단체장 경선 무산, 시민공천배심원제 실패에 대해 정세균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당원과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정 대표를 직접 겨냥했고, 23일 당무회의 개최를 촉구하며 전면적이고 직접적인 문제제기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깊은 골, 서울시장 경선으로 폭발하나
반면 지도부 측에서는 비당권파의 반발을 '불순한 의도'로 보고 있다. 지방선거에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차기 당권에만 눈이 어둡다는 것이다.
한 고위 인사는 "한창 협상이 진행 중일 때 협상 대표를 바꾸자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가 하면 야권연대의 최대 걸림돌도 비주류 측 일부 의원들이었고, 각종 공천잡음이 날 때 중재와 조율은커녕 뒷짐 지고 일이 커지길 지켜보고 있었던 것 아니냐"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주 내로 서울시장 경선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당권파 대 비당권파 간의 갈등이 분수령을 맞이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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