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도 오곡에 속하는 곡물이기는 하지만 우리 관념 속에서는 다른 곡식들과는 사뭇 다르다. 쌀이나 보리, 밀이나 조와는 무언가 다른 것이 이 콩이다. 또한 콩은 농경 생활에서 가장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인 단백질을 공급하기도 한다. 콩을 뜻하는 원래 한자는 숙(菽)이다. '숙맥'이라는 말은 바로 콩과 보리라는 말이니 가장 중요한 양식도 구분하지 못한다는 뜻에서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콩의 원산지는 우리나라
콩을 뜻하는 한자 두(豆)는 원래 고기를 담던 그릇을 말한다. 일부에서는 콩깍지가 이 그릇을 닮아 콩 두 자로 썼다는 말도 있지만 두는 원래 긴 밑받침이 있는 그릇으로, 제사상에 제기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니 콩깍지 하나만 놓고 보면 닮았지만 전체 모양으로는 별로 닮은 데가 없다. 무슨 연유에서 이 두 자가 차용되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두가 콩의 뜻으로 쓰인 것도 이미 오래된 일이다.
여하튼 이 콩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곡식이었다. 콩의 종류도 무척 많은데, 가장 흔한 콩인 대두는 바로 만주를 원산으로 하며 모든 콩의 주종을 이룬다. 대두의 상대적인 개념은 소두라 할 수 있는데 소두는 팥을 이르는 말이다. 보리가 대맥, 밀이 소맥인 것처럼, 종류가 비슷할 때 뒤늦게 들어온 것에 '소' 자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팥은 콩보다 늦은 시기에 재배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늘 팥은 콩과 함께 짝을 이룬다. '콩쥐팥쥐' 같은 말을 보면 콩도 팥도 우리와는 오래전부터 친숙한 것이다.
모양과 색깔에 따라 다른 변종도 여럿 있다. 서리태, 쥐눈이콩, 검정콩 등이 그것이다. 크기가 작고 녹색을 띠는 녹두는 원산지가 인도지만 중국과 동북아에서도 일찍부터 재배한, 같은 콩과에 속한 식물이다. 완두콩은 비록 콩이지만 지중해 근처에서 자라던 것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것이고 강낭콩은 근대에 와서 들어온 남미의 콩이다. 유럽은 콩과는 비교적 거리가 멀어서 렌즈콩이 주류를 이루고 17세기가 되어서야 아시아에서 콩이 전래되었다.
우리는 부여나 고구려가 콩의 원산지였기에 중국의 중원보다 훨씬 일찍 콩에 친숙할 수 있었다. 백제나 신라도 고구려로부터 콩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다양한 콩 조리법이 발달할 수 있었다. 중국도 춘추전국시대에야 콩을 만주 지역으로부터 받아들였고 콩의 재배가 일반화된 것은 진한시대가 되어서였다.
그 이후로는 중국의 콩 재배지가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약 2000년 전에 한반도를 통해 콩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삼국시대 때 일본과 한반도의 긴밀한 접촉으로 보아 일본도 콩을 먹기 시작한 것은 꽤나 옛날 일이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콩 쓰임새를 보면 콩을 정말 오래전부터 먹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 메주콩이 유럽으로 건너간 것은 강낭콩보다도 늦은 시기였고, 다시 이 콩이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19세기 초이니 서유럽이나 미주에서는 상당히 낯선 곡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콩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 바로 미국이고 세계의 어느 밥상에서도 콩은 낯설지 않다.
ⓒ프레시안(손문상) |
'밥심'을 떠받치는 '콩심'
그런데 이 콩이 밥상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면 곡식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밥에 콩을 직접 넣어 곡식으로 먹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 재료의 역할이다. 콩은 주식이기보다는, 메주를 만들어 된장과 간장을 뽑아 먹고, 갈아서 두부를 만들어 먹고, 콩나물과 숙주나물로 키워 나물로 먹는 '반찬'이다.
간장에 졸여 만든 콩자반을 반찬 삼고, 볶아서 간식을 만들기도 한다. 콩소, 팥소, 녹두소, 콩가루는 떡의 맛을 내는 보조 재료다. 또 콩을 볶아 압착해서 짜낸 콩기름은 참깨에서 나온 참기름과 함께 부엌에서 쓰던 기름의 주종이었다.
이렇게 보면 콩은 오히려 곡식이 아니라 반찬으로 바뀐 것 같은 생각조차 든다. 쌀, 보리, 기장, 조처럼 주곡으로 먹는다기보다는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의 재료로 쓰일 경우가 훨씬 더 많을 성싶다. 옛날 식탁이라면 밥에다 콩을 반찬 삼아 먹었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물론 채소와 나물, 고기반찬도 추가되겠지만 기본적인 골격으로는 쌀, 보리, 조가 밥을, 콩이 반찬을 구성했던 것이다.
이는 영양이라는 측면에서도 올바른 선택이었다. 농경 생활에서 고기나 생선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을 헤아린다면 단순한 탄수화물 중심의 주곡에다 콩으로 단백질을 보충하는 게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
농촌에서 콩을 재배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주곡을 중심으로 논과 밭을 활용하는데 콩 혼자 밭을 온통 차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보통은 밭에서 다른 작물 사이에 심거나, 논두렁과 같은 여분의 땅에다 콩을 심어 거둬들인다. 밥이 우선이고 반찬은 그다음인 셈이다. 일단은 보리나 쌀이 가장 중요하고 그 여분을 콩으로 보충한 것이다.
콩 요리의 최고봉인 두부
우리는 콩과 친숙한 만큼 정말 다양하게 콩을 이용하고 조리했다. 우선, 밥을 먹을 때 가장 중요한 된장과 간장이 모두 콩의 자식이다. 고추장은 장의 특별한 형태라 보아야 하겠지만 여기에도 메주는 필수적이다. 온갖 떡에도 쌀이나 찹쌀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콩이나 팥이다. 겨울철 채소를 키울 수 없을 때에는 콩에 뿌리를 내려 콩나물과 숙주나물을 반찬으로 삼아 비타민을 보충한다.
밥에도 콩과 팥을 섞어 먹는다. 콩기름은 부엌에서 부침개를 지질 때 필수품이다. 녹두를 갈아서 부친 빈대떡과 녹두의 전분으로 만든 청포묵은 여느 곡식으로 만든 것과는 다른 상큼한 반찬이다. 심지어 김치를 담글 때에 맛을 좋게 하려고 콩 국물을 붓기도 한다. 청국장의 구수한 맛은 속성 발효 된장으로 손색이 없다.
더욱이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두부다. 두부는 그냥 양념장을 얹어 먹기도 하지만 지져 먹거나 조림을 하기도 한다. 두부를 튀긴 유부도 있고 찌개나 전골에도 빠지지 않는다. 콩을 늦게 받아들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멀건 고기 국물에 삶아 먹는 콩 수프와는 격이 다른 진수성찬이다.
두부는 물에 불린 콩을 맷돌에 갈아 물을 부어 끓이고 나서 건더기를 거르고 그 콩 국물에, 묵힌 소금에서 나오는 염화마그네슘인 간수를 넣어 단백질을 응고시키고, 이를 압착하여 탈수한 것이다. 생각보다는 간단한 공정이지만 단백질 응고라는 기술적 장벽이 높았기 때문에 발명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아마 두부를 처음 보는 사람한테 콩과 두부를 앞에 놓고 둘 사이의 상관관계를 유추하라고 하면 거의 다 실패할 것이다.
이렇게 만든 두부는 우선 콩과는 식감이 전혀 달라 색다른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두부는 이 색다른 식감 말고도 커다란 장점이 있다. 콩은 비록 단백질이 많기는 하지만 소화 흡수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곰팡이를 이용해 장을 담그는 것도 콩 단백질의 이용률을 좋게 하기 위한 한 방편이다.
그렇지만 된장이나 간장은 짜니까 많이 먹을 수 없다. 두부는 짜지 않으면서도 몸에서 단백질을 충분히 흡수하게 하는 탁월한 조리법인 것이다. 게다가 두부를 만들면서 거른 찌꺼기도 뭉쳐놓고 약간의 발효를 거치고 나면 김치나 푸성귀를 넣어 맛있는 비지찌개를 끓일 수 있다.
두부의 발명과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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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내용은 명나라 이세진이 <본초강목>이라는 책에 기록한 것이다. 발명의 시기와 기록의 시기에 무려 1800년 가까이 시차가 있으니 믿을 만한 기록이 될 수 없다. 그저 이 신기한 발명품을 옛 사람 이름을 빌려 의탁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두부에 관한 기록은 송나라 초기의 <청이록>에 처음으로 나온다. 당나라 이전의 중국 문헌에는 두부의 명칭이 나오지 않으니 그 이전에 두부가 있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만들기 어렵지 않고 맛있는 발명품인 두부가 그 긴 세월 동안 숨어 있다가 갑자기 문헌에 나타날 까닭이 없다.
더군다나 당말 송초 즈음은 변방의 유목 민족이 중원에 들어온 시기니, 우유에서 치즈를 만드는 단백질 응고 기술에서 유추한 발상이 두부의 발명에 공헌했을 공산이 크다. 어쨌거나 두부는 식품에서는 종이의 발명에 비견할 만한 커다란 발명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두부가 전래된 것은 언제일까? 문헌상으로는 고려 말 이색의 <목은집>에 두부에 관한 시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두부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일찍 도입되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아마도 그렇게 일찍부터 들어왔을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
중국의 송나라 시기는 고려와 송 사이에 요와 금이라는 북방민족이 세운 나라들이 있어 접촉이 활발하지 못했다. 남송과 고려 사이에 무역 왕래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두부는 무역품이 되기에는 문제가 많은 식품이다. 상할 염려 때문에 배를 통한 무역품으로는 적합하지 못한 물건이고 무역을 할 만큼 고가품도 아니다.
결국 두부가 전래되려면 인적 교류가 필수인데 그 먼 뱃길을 요리사가 동승해서 두부를 전래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아마도 원대에 이르러 고려가 몽골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인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두부가 전래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보면 몽골이 우리에게 전해준 것은 꽤나 많은 셈이다.
현재 우리의 경우에는 두부 종류가 그다지 많지 않다. 응고된 상태로 물기를 짜지 않고 그냥 먹는 순두부, 보통의 두부, 튀긴 두부 정도다. 하지만 두부의 본고장인 중국은 정말 다양한 두부가 있다. 물기를 바짝 제거한 마른 두부, 딱딱한 두부, 껍질처럼 얇은 두부피, 국수처럼 만든 두부 국수, 심지어 심한 악취를 풍기지만 맛있는 썩힌 두부까지 종주국답게 여러 가지 두부 요리를 즐긴다. 우리도 두부의 종류를 늘릴 필요가 있다. 두부의 건강 효용성을 뒤늦게 깨달은 서양에서는 두부 아이스크림까지 만들 정도로 두부를 다양하게 응용하고 있다.
콩 문화의 발전을 기대하며
콩의 효용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콩의 원산지인 여진이 전투 식량으로 먹었다고 하는 속성 발효 식품인 청국장은 항암 효과까지 들먹일 정도로 좋은 식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의 나토는 콩과 그 이용법을 전해준 한국에서도 거꾸로 많은 애호가가 생겨날 정도로 대단한 건강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나토의 제법은 우리에게도 있었지만 사라지고 일본에 남아 있던 것이 다시 들어온 것이다. 콩을 통한 동아시아의 공통점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된장과 간장은 형태만 약간 달리했다고 할 정도로 공통점이 있다. '콩의 동북아시아'라는 말이 성립할 만큼 콩을 다양하게 이용한 곳이기에 된장의 이름을 자국의 이름으로 세계에 알리려고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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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콩 문화를 더욱 가다듬어야 한다. 프랑스가 목축 국가로 자랑스럽게 수많은 치즈를 자랑하듯 콩에 관해서는 동북 세 나라를 따라올 나라가 없다. 가장 익숙한 재료를 가장 오래 먹었던 나라가 가장 잘 다루는 법이다. 된장의 냄새를 부끄러워하지만 치즈도 이에 못지않은 냄새를 자랑한다. 단백질 발효에는 냄새가 거의 필수적이지만 그래도 치즈는 세계화에 성공했다. 된장 냄새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냄새를 넘어선 새로운 콩 요리법을 발견해야 한다.
콩은 이제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곡물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론을 보면 '농경의 시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안에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 존재하는가'가 관건이다. 콩은 다른 곡식처럼 전래된 것이 아니라 우리 영토 안에 있어 우리가 작물로 키워낼 수 있었던 곡식이다. 곡식 가운데서도 가장 단백질이 풍부하기에 미래의 희망으로 꼽는 곡식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건강식으로 콩의 효용성에 주목하여 콩을 이용한 새로운 재료들도 나타나고 있다. 콩을 이용해 고기 같은 질감을 내는 재료도 있고, 고기를 먹지 않는 사찰의 음식은 콩 요리법의 보고라 할 만큼 다양하다. 우리보다 늦게 콩을 받아들인 중국과 일본에도 다양한 콩 요리법이 발달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전해주었듯 남의 것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콩의 종주국답게 더욱 풍성한 콩 요리법을 개발해 우리 식탁이 풍요로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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