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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뮤지션 인증' 위해 승부수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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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뮤지션 인증' 위해 승부수 던졌다

[김봉현의 블랙비트] 괜찮은 힙합으로 채운 신보 [H-Logic]

선서. 나는 이 글에서 온전히 음악 이야기에 집중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

글을 아직 쓰지 않은 상태에서 100% 그럴 것이라고 선서해버리면 혹시라도 나중에 도망칠 구멍이 없어지므로 인간미 있게 90% 정도로 해두자. 일단 레이디 가가(Lady Gaga) 이야기는 꺼내지 않을 생각이다. 이효리를 둘러싼 수많은 가십은 다른 박사님들이 알아서 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가 할 일과 안 할 일을 알아야 하는 법이다. 낄 데 안 낄 데 가려야하듯이.

보아하니 이효리의 네 번째 앨범 [H-Logic]이 '승부수'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정상의 인기를 누린 가수가 음악적 인정을 받기 위해 뛰어든, 익숙히 보아오던 광경이다. 앨범 프로듀서 란에 본인 이름을 올린 것,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된 인기 작곡가 대신 알려지지 않은 신인 작곡가들과 작업한 것, 미니 앨범 형식이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서 감상과 평가가 더 용이한' 정규 앨범 형식을 이번에도 이어간 것, 그리고 지난 세 앨범보다 '한 가지 음악 스타일에 더 매진해 대체로 일관된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낸 것 등이 근거 되겠다.

▲이효리의 신보 [H-Logic] ⓒ엠넷미디어
승부수로 이효리가 택한 음악은 두 음절로 간단히 말하면 '힙합'이고, 조금 더 정확한 뜻의 네 음절로 말하면 '블랙뮤직'이며, 아예 풀어 쓰면 '블랙뮤직을 근간으로 하는 팝과 댄스'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효리의 힙합 사랑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솔로 데뷔곡 <10 Minutes>부터 이미 다분히 '힙합스러웠'고, 이후 자신의 앨범을 통해 꾸준히 블랙 뮤직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왔다. 즉 포인트는 '힙합' 그 자체에 있지 않다. 핵심은, 대중의 기호를 의식하기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블랙 뮤직)을 그 농도와 양에 있어 지금까지와 확실히 비교되는 수준으로 앨범에 가득 눌러 담았다는 점에 있다.

물론 대중의 기호와 이효리의 기호가 꼭 상반되리라는 법은 없다. 대중이란 대상을 하나로 규정할 수 있는지, 또 대중의 기호를 정의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삼단 논법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껏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죄다 대중이 안 좋아했다 → 이효리의 신작은 그녀의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나의 마음에 드는 앨범이다 → 그렇기 때문에 대중은 이효리의 신작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안 될 거야 난.

이상은 (진심이 담긴 하소연스러운) 우스갯소리였고, 진짜로 말하자면 '이효리의 기호'가 듬뿍 담긴 이번 앨범은 실제로 그리 대중적이지 않다. <Chitty Chitty Bang Bang>을 가리켜 <U-Go-Girl>을 위시한 이전 타이틀곡들보다 대중적이라고 평하기는 힘든 일이다. 충격적인 실험을 감행한 것도 아니지만 이효리 입장에서 볼 때 분명 흥행이 보장된 길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다른 곡들을 살펴봐도 대성과 함께 <How Did We Get>으로 후속곡 활동에 나서지 않는 한 딱히 대중에게 '잘 먹힐만한' 곡이 없다. 아마 안 될 것 같은 나나 좋아할 곡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런 유추가 가능하다. 분명 이효리의 목표는 이전과 달라졌거나 혹은 이전에는 미약했던 것이 이번 앨범을 통해 본격화되었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음악적으로 인정받기'다.

그렇다면, 음악 필자로서 스스로 블랙 뮤직을 정체성의 고향으로 여기는 나는 이효리의 신작을 어떻게 들었을까. 일단 나는 이 앨범을 '완연한 힙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효리가 본인 외에도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고 또 제약받아야 하는 위치에서 뽑아낸 결과물임을 감안한다면, 이 앨범은 의미 있는 음악적 성과를 담고 있다고 본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그네>의 정중앙 배치를 제외하면 앨범은 블랙 뮤직에 기반을 둔 일관된 작품의 면모 및 개별 곡의 비교적 고른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또 구태의연한 발라드 대신 자리한 것은 블랙 뮤직 계열의 알앤비로 수렴할 수 있는 <Feel the Same>과 <Want Me Back>, 그리고 <So Cold>다. 이 곡들이 더-드림(The-Dream)과 오마리온(Omarion), 팀버랜드(Timbaland) 등의 이름을 떠오르게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그 방증이라 하겠다. 더불어 <Love Sign>과 <100 Percent>는 이번 앨범에 임하는 이효리의 의지를 가장 세게 증명하는 곡들로 보인다(왜 그런지는 들어 보면 안다).

[H-Logic]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키워드는 '스웨거(swagger)'다. 물론 듣는 방법은 듣는 이의 마음이지만 <I'm Back>의 가사에도 등장하는 이 스웨거라는 개념을 제대로 숙지한다면 [H-Logic]을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하다. 스웨거는 말 그대로 '으스대다'는 사전 의미를 가진 단어다. 힙합 문화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힙합을 가까이 두고 살지 않는 사람들이 힙합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기 과시, 잘난 체, 항상 지가 짱, 너무 거만' 등의 부정적 이미지는 거의 모두 이 스웨거에서 파생되는 것들이다.

여기서 그 기원적 맥락까지 설명한다면 글이 방대해지기에,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힙합 안에서 스웨거는 일종의 문화적 합의다. 그들에게 잘난 체는 윤리적 문제가 아니다. 힙합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왜 잘난 체를 하냐고 따지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어떠한 방식과 표현으로 남보다 더 흥미롭고 절묘한 잘난 체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실제로 '얼마나 기발하고 재미있게 잘난 체를 하는가'는 래퍼들의 실력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통용된다. 여기에 대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는데, 너는 왜 이리 잘난 체가 심하니? 그러면 나쁜 사람인 거 모르니?'라고 해버리면, 약간은 다른 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예수천국 불신지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I'm Back>, <Chitty Chitty Bang Bang>, <Bring It Back> 등 앨범의 적지 않은 부분에서 볼 수 있는 '잘난 체'에 불쾌함을 드러내는 일은, (물론 그마저도 개인의 자유이긴 하겠으나) [H-Logic]을 채운 음악과 거기서 비롯되는 맥락 및 함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이효리는 그저 본인이 추구하는 '힙합' 안에서 가사를 통해 충실한 '장르적 실천'을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올바른 문제제기가 되려면 '힙합 한다면서 잘난 체 하나도 제대로 못하나?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가 되어야 한다(노파심에 말하자면 모든 힙합이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스웨거가 힙합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말이다). 또한 동종업계(?) 선두로 인식되는 이효리의 위치가 이러한 으스댐과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음 역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문제는 이효리를 '따라쟁이'로 평가해오던 사람들이 이런 잘난 체 가사에 예정된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적절한 인물로 구성돼 적재적소에 배치된 참여진은 이 앨범의 또 다른 미덕이다. 특히 남성 래퍼들의 면면은 이효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상추는 마이티 마우스(Mighty Mouth) 활동 이전 언더그라운드 시절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고(<Love Sign>), 비지(Bizzy)는 확고한 자기 스타일로 자신이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의 명성에 묻어가는 인물이 아님을 증명한다(<Highlight>). 또한 알앤비 듀오 올 댓(All That) 등의 곡에 참여하며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름을 다진 씨제이(Ceejay)는 이 인생 절호의 기회(?)를 탁월하게 부여잡는데 성공한다(<Chitty Chitty Bang Bang>).

▲이효리는 엄정화가 걸었던 그 길을 가려는 지도 모른다. ⓒ뉴시스

그러나 이제는 아픈 말을 해야 할 시간. 이효리는 거꾸로 해도 이효리인데 내 이름은 거꾸로 하면 현봉김이라 샘나서 이러는 건 아니다. 꼭 필요한 이야기니까 하는 거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보컬이다. 물론 전작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발전했다. 노력이 느껴진다. 수록곡들의 모양새가 그녀의 보컬에 잘 어울리는 옷이라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여전히 보컬이 거슬려서 곡에 몰입을 잘 하지 못하겠다거나 보컬 때문에 곡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분명 문제다. 인순이 같은 가창력을 요구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미안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극복하지 못할 난제 같다는 생각도 스친다. 그렇기에, 나는 더 이상 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

결론적으로 [H-Logic]에 대한 나의 시선은 따뜻함에 가깝다. 물론 이 앨범이 그 자체로서 독보적이지는 않다. '주류 가요계 중 블랙 뮤직의 정체성을 지닌 앨범'으로 대상을 국한지어도 그렇다. 예를 들어 이민우의 솔로 앨범들에서 번뜩이던 몇몇 순간이나 투애니원(2NE1)의 미니 앨범보다 이 앨범이 더 뛰어나다고 확언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 신인작곡가들과의 작업 자체가 절대적인 신선함과 놀라운 음악적 성과를 담보해주지는 못한다. 기성의 복제된 흐름에 동참하지 않을 기회를 제공할뿐이다. 실제로 이 앨범은 최근의 가요계를 주름잡고 있는 작곡가들과의 일정한 거리 유지에는 성공했지만 더 나아가 대안적인 흐름을 만들어낸다거나 그들의 음악을 압도하는 완성도를 성취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음악적 욕심으로 무장한 이효리가 준수한 실력을 갖춘 신인작곡가들과 함께 만들어낸 [H-Logic]에 대한 나의 시선은 여전히 따뜻하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이 앨범을 오래도록 붙들고 있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이내 더 좋다고 생각되는 다른 블랙 뮤직 앨범을 집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와는 상관없이, 그녀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가리켜 '뮤지션 인증을 받고 싶어 하는 인기가수의 전략에 비평가가 말려드는 꼴'이라며 질타할지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효리의 전략에 내 글이 어떻게 쓰이든 무슨 상관인가. 보이는 성과가 있으니 인정할 뿐이고, 이효리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앨범을 '득템'했으니 그것을 즐기면 될 일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니까 대중이 안 좋아하는, 그래서 '아마 안 될 것 같은 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심 불안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필자의 블로그에서 더 많은 음악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http://kbhm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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