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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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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판다곰의 음식 여행·9] 나물 먹고 물 마시고

채소를 전혀 먹지 않는 민족은 유목 민족이나 에스키모를 빼면 거의 없다. 육식을 주로 한다 하더라도 대개는 채소를 곁들이게 마련이며, 식물이 지닌 특별한 향기와 맛 때문에 많은 허브 식물을 음식 재료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식물들은 대개 재배한 것들이고 야생의 것을 직접 채취해서 쓰는 경우는 그다지 흔치 않은 편이다.

우리네 봄철 식탁을 보면 정말로 많은 식물이 올라온다. 요즘은 밭에서 기르는 것들도 많지만 산과 들에서 채취한 것을 진짜 봄나물로 여기고 즐긴다. 이른 봄 쑥과 달래, 냉이에서 시작해 봄철 내내 산에서 나는 야생 식물을 채취해 밥상에 올린다. 봄철만 이 풀 향기에 흠뻑 취하는 것은 아니다.

봄철에 채취한 산나물을 정성스럽게 말려, 예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향기를 철이 지난 다음에도 즐기고, 간장이나 된장에 넣어 나물 장아찌를 담그기도 한다. 사시사철 언제나, 나물 없는 밥상이란 생각하기 어렵다. 가난한 선비들도 술 한 모금이 생각날 때에는 나물 반찬 한 접시를 갖춰놓고 막걸리 한 사발을 즐겼다.

나물 없이는 못 살아

모든 야생 식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독을 품고 있기도 하고, 맛이나 냄새가 역하거나 질겨서 먹지 못하는 것도 많다. 그러면 어떤 식물을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 먹기 시작했을까? 농경 시대 이전의 채취 시대에는 사람에게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냄새와 본능으로 구분하는 능력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 시각이 발달하고 후각은 둔해지면서 점차 이런 능력을 잃어버렸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식물을 구분하는 것은 소나 염소를 보고 배운다. 소가 먹을 수 있는 풀은 대개 사람도 먹을 수 있다. 소나 염소가 먹는 풀들을 맛보면서 우리 입맛에 맞는 나물들을 골라냈을 것이다.

나물은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같은 날것과 익힌 것 둘 다를 이르는 말이지만, 보통은 익힌 채소를 양념하여 버무린 것을 뜻한다. 가장 흔하게는 일부러 싹을 틔워 기르는 콩나물, 숙주나물부터 온갖 버섯의 무침, 나무의 새순인 두릅, 뿌리인 도라지·더덕, 고사리·고비·아욱·취 등의 이파리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처럼 많은 식물을 밥상에 올려놓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비단 이렇게 익힌 것만 먹는 것도 아니다. 상추나 곰취, 들깻잎과 같은 이파리에 밥이나 고기를 싸먹기도 하고 더러 호박잎처럼 질긴 것은 데쳐서 싸먹기도 한다. 이제는 아예 이 여러 가지 쌈을 고기와 함께 정형화해 '쌈밥'이라는 형태로 만들기까지 했다. 이 쌈밥에 올리는 채소들은 우리 것만이 아니다. 예컨대, 양배추도 우리 것이 아니었지만 그 넓은 잎은 우리나라에서 쌈의 재료로 변모한다. 요즘에는 서양에서 샐러드용으로 개발된 여러 채소도 함께 올라와 있다. 서양의 것이라도 우리에게 오면 우리식의 용도를 새로이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의 나물 중독이 얼마나 대단한 경지에 와 있는지는 고기를 먹을 때에 더욱 잘 알 수 있다. 서양 사람들도 고기를 먹을 때 채소를 곁들이기는 하지만 우리만큼은 아니다. 고기의 느끼함을 없애는 정도의 간단한 채소만 곁들여 먹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기를 구워 먹을 때에도 푸짐한 푸성귀를 함께 먹어야 한다. 상추나 깻잎에다 싸서 먹는 것은 기본이고, 파를 채 썰거나 콩나물을 무쳐서 쌈 안에 넣고 거기에 마늘과 쌈장을 올려 아예 즉석 나물을 만들어 상추에 싸서 먹는다. 옛날부터 잎이 크다면 쌈을 싸 먹은 것이다.

아무리 맛난 고기를 먹어도 고기만으로는 먹지 못하는 게 우리네 습성이다. 밥상에 고기반찬이 올라왔다고 해도 나물이 없다면 푸짐한 밥상이 되지 못한다. 이 나물 사랑은 무척이나 좋은 식습관이다. 고기를 지금처럼 많이 먹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물도 함께 풍부하게 먹는 우리 전통은,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고기에도 곡식에도 치우치지 않으면서 영양의 균형과 건강을 배려하는 좋은 습성으로 자리 잡았다. 고기를 먹을 때뿐만 아니라 전골이나 복을 먹을 때에도 그렇다. 우선 푸짐한 미나리나 쑥갓을 위에 얹어 나물처럼 먹고서야 다른 것들을 먹는다. 하다못해 생선찜을 하더라도 콩나물을 듬뿍 넣어 나물과 함께 생선찜을 즐긴다.

우리가 풀을 즐겨 먹었다고 해서 육지에 자라는 풀만을 먹은 것도 아니다. 바다에서도 풀들을 따다 식탁 위에 올렸다. 중국과 일본도 다시마와 미역과 김을 먹기는 하지만 해초의 양과 방법에서 우리만큼 다양한 바다풀을 먹은 나라는 유례가 없을 정도다. 국으로 끓여 먹고, 말렸다가 다시 물에 불리고, 나물로도 무쳐서 상에 내놓는다. 종류도 다양해서 톳, 파래, 청각, 매생이, 우뭇가사리와 같은 여러 바닷말도 먹는다. 해초는 대개 겨울철에 자라므로, 육지에서 나물을 캘 수 없는 시절에 나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프레시안(손문상)

밥상 위에 펼쳐지는 봄의 향연

우리나라 밥상은 정말 온갖 식물의 보고다. 기본적인 상차림은 밥과 국, 그리고 찌개와 나물이면 거뜬하다. 그 가운데서도 나물이 빠진 밥상은 좀처럼 생각하기 어렵다. 나물을 여러 가지 차려놓고 있다면 밥에 나물을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 이런 것을 정형화한 것이 바로 비빔밥이다. 여기에 고기나 육회가 추가되고 달걀을 하나 얹어 돌솥에다 식지 않게 담아 내온 것이 바로 골동반 같은 비빔밥으로 정형화된 것이다.

나물은 시기적으로 민감하다. 봄에 나는 많은 산나물은 채취할 수 있는 시기가 아주 짧고, 조금만 시기가 지나면 질겨져서 먹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알맞은 시기에 채취한다면 질기지도 않을뿐더러, 설사 약한 독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시기에는 미처 독성을 갖추기 전이어서 몸에 해롭지 않다.

우리 상차림은 나물과 밥을 기본으로 하기에 봄철이 아니라도 나물이 없을 수 없다. 여기에 여러 가지 나물을 말려서 갈무리했다가 다시 물에 불려 데쳐 먹는 방법을 개발했다. 호박고지, 박고지, 고사리, 고비, 가지오가리, 버섯, 시래기, 곰취 등 말린 나물들은 제철 나물이 나지 않을 때나 겨울철에도 밥상을 지켜주는 든든한 힘이 되었다. 말린 나물만 있는 게 아니다. 콩나물과 숙주나물은 나물이 부족한 계절을 염두에 두었지만 이제는 사시사철 길러 나물이 풍부한 봄철에도 밥상에 빠질 수 없는 반찬이 되었다.

겨울철인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을 짓고 이렇게 말린 나물들을 무르도록 푹 삶고 볶고 무쳐서 함께 먹었다. 이제 올 봄을 맞이하는 전령인 셈이다. 앞으로 식탁에 오를, 봄의 향기 가득한 나물을 기다리며 말린 나물을 먹는다. 이윽고 봄은 오고, 들과 산은 아직 누런 물결이 그대로지만 겨우내 시들고 마른 이파리 밑에서는 생명의 느낌들이 자란다. 쑥과 달래, 냉이가 가장 먼저 찾아오는 봄의 전령사다. 우선은 쑥을 캐다가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달래, 냉이를 무쳐 밥상에 내놓는다.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5월 중순까지 나물은 봄의 밥상을 흥겹게 한다.

나물은 간이 강하지 않게

서양에서는 야채를 샐러드처럼 생식하거나 익혀서 먹고, 중국에서는 대부분 기름에 볶아 먹는다. 우리도 기름에 볶거나 겉절이처럼 생식에 가까운 예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재료에 따른 선택일 뿐이다. 보통 나물은 물에 살짝 데쳐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과 마늘, 파와 같은 양념을 해서 먹는데, 이렇게 살짝 데치는 것은 억센 식물을 다스리고 들에서 묻은 먼지를 씻는 소독을 겸한 방법이다. 너무 오래 삶으면 재료의 향기와 맛을 해치니 살짝만 익혀 원재료의 맛을 극대화한다. 간을 세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경우는 간장이나 된장이 재료의 원래 맛을 없앨까봐 두려워 소금물에 살짝 데치기만 해서 먹기도 한다.

나물에 들어가는 양념도 요즘은 마늘과 파, 고추처럼 자극성이 강한 양념을 많이 쓴다. 하지만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만 하더라도 승려들은 마늘과 파 같은 강한 향신료를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속세를 떠나 수도하는 승려에게는 맛의 자극도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여염집의 음식에서야 절만큼 강한 원칙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대체로 마늘과 파의 사용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한 맛은 더 강한 맛을 부르기에 차츰 파와 마늘로 양념하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고추가 도입된 뒤로는 매운맛까지 가세하게 되었다.

간장과 된장, 고추장은 그다지 강한 맛을 내는 조미료는 아니다. 오히려 짠맛과 함께 나물에 아미노산의 풍미를 더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참기름과 들기름은 조금 다르다. 지금 대부분 나물을 조리할 때에 참기름을 넣는데 참기름은 조금만 넣어도 다른 향기를 다 앗아갈 정도로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들기름도 참기름보다는 덜하지만 무척 향기가 강하다. 물론 기름을 나물에 넣으면 향기 위주의 나물이 더 반찬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나물의 본디 맛과 향기는 변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남도에서는 나물을 무칠 때 참기름이나 들깨기름을 넘어서 들깻가루나 참깻가루를 듬뿍 넣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먹으면 나물의 본디 향기를 느끼기란 쉽지 않다.

물론 어떤 조리법이 더 좋고 나쁜지를 가늠할 수는 없다. 느끼한 맛이 나는 참기름이나 참깻가루를 듬뿍 넣은 나물을 본디부터 먹은 사람은 그 맛을 더 좋아할 것이고, 살짝 데친 나물의 향기를 즐기던 사람들은 그런 맛을 싫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봄에 한창 무르익은 향기를 내뿜는 나물을 먹을 때에는 되도록 마늘과 파, 고춧가루, 참기름과 들기름, 참깻가루와 들깻가루처럼 향기와 맛이 강한 조미료는 피하고 간장과 된장처럼 기본적인 맛만 더하는 것이 향기로운 봄나물을 더욱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프레시안(손문상)
나물에 붙은 부정적인 관념 중 하나는 '실속 없는' 반찬이라는 의미다. 나물 반찬만 가득한 밥상을 놓고는 '풀밭'이라는 표현을 쓴다. 고기가 올라오지 않은 가난한 밥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아린 것은 춘궁기의 '초근목피'를 떠올리는 기억일 것이다. 빈한한 농가에서는 아직 보리를 추수하기 전에 양식이 떨어지면 심한 양곡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 마침 봄철에 솟아나는 나물들이 식량의 대용 역할을 하니, 산과 들에서 나물을 캐다가 보리쌀 한 줌을 넣고 죽을 쑤어 먹었다. 그런 아린 기억들 때문에 나물 밥상을 폄훼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열량 과잉의 시대에는 나물에 대한 우리 생각도 바뀐다.

나물의 좋은 점은 곡식이나 고기, 기름기와는 달리 열량이 적어 살이 찔 걱정을 덜어주고, 무기염류와 비타민을 충분히 공급해주며, 식이섬유가 많아 위와 장의 활동에 이롭다. 비만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건강식이다. 서양의 샐러드처럼 날것으로 섭취해 제대로 씻지 않았을 때의 위생적인 면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 뜨거운 물에 살짝 삶으니 유기농으로 말미암은 세균감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드레싱의 열량이 문제 될 것도 없다. 중국 음식처럼 기름에 볶은 게 아니니 느끼한 맛과 열량과잉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나물이 우리 입맛에 좋은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즐긴 음식이라서 그렇다. 하지만 우리식 나물의 즐거움은 꼭 우리만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들이 비빔밥을 즐긴다면 나물인들 좋아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우리식 나물 조리법이 지닌 강점은 오랫동안 경험에서 축적된 것이다.

다만 외국인들에게는 재료가 평소에 맛보지 않았던 것이고 모양과 식감, 느낌에서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습성 때문에 조금 낯설게 느껴질 뿐이다. 나물의 특이한 냄새는 처음 접할 때에는 낯설지 몰라도 익숙해지면 향기로움으로 변한다. 나물이야말로 한국 음식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경쟁력을 가진 식품이다. 다만 더 익숙한 방식으로의 변용이 필요할 뿐이다.

이제 우리 나물을 여기에 한번 늘어놓아보자. 올해 맛본 나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미나리, 명아주, 달래, 냉이, 씀바귀, 돌나물. 바위취, 단풍취, 미역취, 곰취, 수리취, 개미취, 다래순, 머위, 아욱, 더덕, 더덕순, 자귀나무순, 참죽나무순, 달맞이꽃, 두릅, 참나물, 고춧잎, 참당귀, 도라지, 박쥐나물, 우산나물, 참나물, 쑥, 엉겅퀴, 민들레, 방아, 비비추, 원추리, 얼레지, 밀나물, 풀솜대, 기름나물, 쑥부쟁이, 고사리, 고비, 느타리버섯, 표고버섯, 무, 가지, 실파, 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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