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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이지 않은, 그러나 상식적인"

[화재의 책]〈진실을 외쳐라-세상을 바꾸어가는 인권운동가들〉

"내가 자란 유대-기독교의 전통에서는, 교회마다 천정에는 예언자들이,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성인들이 그려져 있다. 그 예언자들과 성인들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초인이었으므로, 우리는 그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 소개하는 사람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권운동가들은 지금 이 땅에, 바로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이들이다." (케리 케네디)

5월 4일 현재, 평택 대추리에는 '안보'의 이름으로 농민들의 땅을 접수하려는 공권력에 온힘을 다해 대항하고 있는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있다. 인권운동가는 결코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 성인이 아니다. 그들은 바로 지금 여기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그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가끔 망각하곤 한다.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그들, 전 세계 인권운동가 51명의 삶과 생각 그리고 얼굴을 담은 사진집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케리 케네디(Kerry Kennedy)와 에디 애덤스(Eddie Adams)가 2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활동 중인 인권운동가들을 찾아다니며 모은 이야기〈진실을 외쳐라〉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케리 케네디는 그 자신이 인권운동을 지속해 온 변호사이며, 에디 애덤스는 1969년 퓰리처상을 비롯해 500개 이상의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사진작가다.

'평화'와 '인권'은 결코 안전하지 않다.
▲ 〈진실을 외쳐라-세상을 바꾸어가는 인권운동가들〉(케리 케네디 지음, 에디 애덤스 사진, 이순희 옮김. 뿌리와 이파리, 2006) ⓒ 뿌리와 이파리

현재 국제사회의 화두는 '평화'와 '인권'이다. 이 두 개의 단어는 흔히 안전한 장소에서 유쾌한 토론으로 다룰 수 있을 법한 주제로 인식된다. 그러나 실제로 인권운동을 하는 많은 이들은 투옥, 고문, 죽음의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 예로 이 책에 등장하는 멕시코의 수녀이자 인권 변호사 디그나 오초아는 2001년 10월 19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여러 발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많은 이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인간으로서 누려야 마땅한 권리를 찾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할 곳이다.

케네디는 이런 현실을 염두에 두고 딸 셋을 둔 어머니로서 당연한 질문을 던진다. "인권운동가들은 도덕적 용기를 타고 나는 특별한 사람들인가? 이들과 비슷한 태도를 지니도록 딸들을 격려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능력을 적게 타고 난 사람이라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죄인이라는 딱지를 달고서 성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누구나 품어봄직한 이런 의문을 케네디는 전 세계의 인권운동가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그들의 삶의 여정을 들으면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케네디를 감동시킨 '불굴의 자신감'과 '사심 없는 겸손함'을 완비한 인권운동가 중 몇 명의 얘기를 들어보자. 개인이 어떤 결심을 하고 어떤 삶을 선택하는 과정은 대단히 복잡했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몇 가지 이야기

"내 삶을 바꾸어놓은 것은 납치된 일곱 살짜리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세상과의 소통을 끊어버린 상태였는데, 마침내 아이가 입을 열었다. 어느 날 밤에 반군 병사들이 아이를 깨우더니 매질을 하면서 부모가 살고 있는 오두막에 불을 지르라고 강요했다. 병사들은 오두막에서 빠져나오는 가족들을 아이의 눈앞에서 총으로 쏜 다음 칼로 난자했다. 아이는 자기 인생의 최악의 순간을 나에게 털어놓았고, 나는 아이와 한마음이 되었다."

아부바카르 술탄(Abubacar Sultan)은 그 뒤 모잠비크 내전(1895~1992)에 동원된 소년 병사들을 구조하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전장을 뛰어다니며 구조 작업을 벌였다. "우리는 2만 명의 아이들을 가족들과 함께 살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25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전쟁 중에 부모를 잃거나 실종된 것에 비하면 우리의 노력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현재도 그는 공동체 교육과 어린이 권리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 가보르 곰보스, 헝가리 인권운동가. 그는 현재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 뿌리와 이파리

"나는 심각한 정신지체 증상을 보이는 굉장히 젊은 남자가 철창에 갇혀 있는 것을 보았다. 직원에게 그가 철창에 갇혀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일을 하는 30분 정도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갇혀 있다고 했다. 나는 사람을 철창에 가둬두는 이유를 물었다. 직원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수용시설에 들어가려면, 평균 3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사람들은 그곳에 가고 싶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후견인이 억지로 보내기 때문에 아무런 선택의 여지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가보르 곰보스(Gabor Gombos)는 헝가리에서 1993년 이후부터 정신과 치료에 대한 조사와 정신질환자들에게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곰보스 스스로 1977년에서 1990년까지 네 차례나 헝가리 병원의 정신과 병동에 갇혀 있었다. 그는 의지할 곳 없는 이들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993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헝가리의 정신질환자 인권 신장을 위한 광범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누군가가 사람들을 끌고 가서는 어떤 집에 가두고 '너를 처형하겠다. 화요일 저녁 9시에, 네 머리에 총알을 먹여주지'라고 말한다. 저녁 7시쯤 되면, 그를 데려다놓고 '오늘 저녁은 말고, 다른 날 밤에 보자'고 말한다. 그들은 그를 다시 그 집에 가둬놓고 기다렸다가 데려와서 총을 겨누고는 '오늘밤은 아니야'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들이 지켜보도록 해보자. 고문이나 다름없는 이것이 바로 사형이다."

헬렌 프리진(Helen Prejean) 수녀는 사형 선고를 받은 패트릭과 2년 동안 편지 상대로 친구가 됐다. 그는 이 특별한 경험을 계기로 미국 사형제도 폐지 운동에 평생을 바쳤다. 그녀의 경험을 글로 기록한 〈데드맨워킹(Dead Man Walking)〉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1995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전 세계인이 사형 제도에 대해서 성찰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그들의 상식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었다.

51명의 인권운동가들은 결코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이 겪은 경험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특별했지만, 그들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경험한 후, '같은 상처가 남들에게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상식에 기반을 두고 행동했다. 그들은 단지 '용감'했고 또 이 영악한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는 '바보' 같았다.

이 책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데스먼드 투투(1984), 엘리 비젤(1986),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1987), 달라이라마(1989), 리고베르타 멘추 툼(1992), 호세 라모스 오르타(1996), 바비 멀러(1997), 왕가리 마타이(2004)와 같은 국제적인 명사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활동가들은 자신의 나라 밖에서 칭송받기는커녕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앞서 말한 '상식'을 각기 다른 경험을 통해 공유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 상식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이 아닌,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 그리고 불의에 대한 분노였다. 2006년 5월 4일, 대한민국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의 고통은 또 얼마나 많은 잠재적인 인권운동가들의 마음에 깊은 연민과 사랑 그리고 불의에 대한 분노를 지필까?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묵묵히 지켜보는 것은 갈수록 견디기 어려워지고, 자신의 행동이 결코 해악을 야기하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하는 일은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티베트어로는 이런 태도를 '닝레'라고 하는데, 이 말은 대개 '연민'으로 번역되고 있다." (달라이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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