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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비가 김예슬 씨를 보면서…

[김종배의 it] 정해진 몇 개의 직업만이 꿈이 된 사회

1.

가끔 농담처럼 내뱉습니다. '일찍 학교에 다니게 해 준 부모님께 감사드린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내뱉곤 합니다.

저는 '학력고사' 세대입니다. 그 덕에 용케 대학에 갔습니다. 과외는 고사하고 학원 문턱 한 번 넘은 적 없지만 '성문종합영어'와 '해법수학'에 기대어 용케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제 세대는 취직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데모를 하다가 '별'을 다는 경우가 아니면 '웬만한' 대학을 나온 사람은 '웬만한'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반영이었을까요? 제 또래는 '일자리'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기득권'을 고민하던 세대입니다.

그래서 남다르게 바라봅니다. '해법수학'이 아니라 학원에서 대입 해법을 찾는 후배 세대, 기득권은 고사하고 제도권에 진입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후배 세대를 남다르게 바라봅니다. 그 후배 세대에 제 자식도 포함돼 있기에 정말 남다르게 바라봅니다.

2.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제 자식 또한 남다르지 않을 거라고. 보아 하니 수재도 영재도 아닌 것 같기에 남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짐 삼아 읊조립니다. "굳이 대학에 목 매달 이유가 없다"고 떠듭니다.

'공부의 신'이 보우하지 않는 한 굳이 대학 입학을 위해, 그리고 대학 수학을 위해 억만금을 쏟아 부을 이유가 없다고 떠듭니다.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기술습득비와 창업자금으로 지원하는 게 낫다고 떠듭니다.

나름대로 살펴보고 떠드는 겁니다. 직장이 '등용문'이 아니라 '스카이'의 '낙하장'이 된 현실, 용케 직장에 들어가 봤자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현실을 보면서 떠드는 겁니다. 제 자식이 사회에 진출하는 10년 여 후가 되면 인구구조가 변하고 노동시장이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전문직 시장은 1%의 소수가 독점하고 막노동 시장은 이주 노동자가 점유하는 반면 중간지대의 기술노동 시장은 선진국처럼 인력 공급이 달려 '공임'이 올라가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떠드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생각도 다짐도 더 이상 나아가지 않습니다.

3.

그렇게 기술을 습득해봤자 '자립'할 여지가 얼마나 있느냐는 반문에 말문이 막혀서만은 아닙니다. 돈이 된다 싶은 분야는 예외없이 대기업이 치고 들어오는 판에 '독립'할 여지가 얼마나 있느냐는 지적에 말문이 막혀서만은 아닙니다.

한 곳만 응시할 수가 없습니다. 눈이 '객관 영역'을 응시하는 동안 자식의 눈초리가 뒤통수에 와 꽂힙니다. '왜 아빠의 판단과 가치관을 나에게 강요했느냐'고 항변할 것 같습니다. '왜 나에게 공부할 최소한의 기회를 주지 않았느냐'고 대들 것 같습니다. 나중에 커서 이렇게 대들까봐 지레 겁을 먹습니다.

그러면서 대학 교수 한 분을 떠올립니다. 본인은 물론 부인 또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 교수는 당신의 자식들에게 세례를 받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아주 당연하다는 투로 답했습니다. "내가 믿는 종교는 나의 것"이라고, "나의 믿음을 자식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내 자식이 커서 크리스천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식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한 희망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제 자식의 눈초리에 찍히고 대학 교수의 말에 눌려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제 판단과 자식의 기회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눈치만 살핍니다. 의식화(?)를 감행해 볼까 생각하다가도 '아직은 어리니까'라고 변명하면서 또 다시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몹니다.

4.

고려대 자퇴생 김예슬 씨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대학을 거부한 그가 20대 청년들에게 "정해진 몇 개의 직업이 꿈이 되어버린 것들에 대해 분노하면서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기사 보기>

죄스런 마음으로 경청합니다. 후배 세대에게 모노톤의 꿈만 강요하는 사회를 만든 선배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죄스런 마음으로 김예슬 씨의 충고를 경청합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정해진 몇 개의 직업" 만이 꿈은 아니라고 말할 용의가 있으면서도 "다른 길"을 언제 제시하고 "상상력"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트랙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제 자신을 답답한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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