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군이 일소 먹쇠와 감자밭을 갈고 있다. 해는 눈이 아프도록 선명하게 붉고 배경은 숲의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나무는 아기자기하며 그 사이로 얼룩말과 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감춘다. 연극 '오장군의 발톱'의 도입부분은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다. 농부 오장군은 일소 먹쇠와도 교감을 하며 먹쇠를 비롯해 강아지, 고양이 등의 동물은 실제 사람이 연기한다. 나무 옆에도 역시 사람들이 앉아있다. 순박한 오장군이 바라보는 자연과 생물에는 이렇듯 영혼이 깃들어있고 생명력이 있으며 이는 연극의 우화적 이미지에 힘을 실어준다. 자연과 생활, 동물과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이들은 하나의 소통체계를 이룬다. 오장군이 부르는 구수한 노랫가락에는 오장군의 삶과 농부의 하루가 담겨있다. 무대 위에는 어머니가 들고 온 점심을 먹고 천오백을 셀 때까지 낮잠을 자려는 오장군의 그림 같은 시간들이 펼쳐진다.
이때, 풍경을 가로지르는 위협적인 비행기 소리가 들리고 우체부가 찾아온다. 곧 오장군에게 징집영장이 떨어진다. 조금 모자란 듯한 오장군은 사랑하는 꽃분이를 찾아가 말한다. "난 아마 대포에 맞아 죽으려나봐." 오장군은 절망하지 않는다. 아마도 절망하는 법을 모르는 듯하다. 이 평화로운 낮잠 같은 시간들을 뒤로하고 오장군은 어리둥절하게 죽을 것이다. 전장에서.
- 대립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의 진실자신의 자녀가 시대의 영웅이 되길 바라는 부모들의 염원. Five Star(오성장군)를 떠오르게 하는 이름 오장군에는 영웅 출현을 고대하는 시대의 바람이자,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모든 어머니의 희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주인공 오장군은 이 모든 이미지와 한참 떨어져있다. 그는 그저 성이 오요, 이름이 장군일 뿐이다. 더군다나 선량하고 소박하며 우둔하고 어리석은 농부다. 단어와 실상의 거대한 간극. 이는 연극의 제목 '오장군의 발톱'과 일맥상통한다. '오장군'과 '발톱'의 조화는 어울리지 않으며 통속적 추리조차 불가능케 한다. 발톱은 인간의 신체에서 가장 효용성이 떨어지며 쉴 새 없이 깎아줘야 하는 '귀찮은' 부분이기도 하다. 이 발톱은 전쟁에서 효용 가치를 지니지 못한 주인공 오장군과 비슷하다. 전쟁에 나간 오장군은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며 혼란을 겪는다. 이처럼 연극 '오장군의 발톱'에는 강렬한 대립의 이미지가 반복해 제시된다. 전원생활의 평화와 전쟁의 공포, 동쪽나라와 서쪽나라 등은 교차적으로 충돌하며 위기의 절정 상황으로 연결된다.
이 작품은 비극이다. 그러나 동화적 이미지와 우화적 표현방법을 버리지 않는다. 이는 비극의 과정을 미화시키는 동시에 폐단의 상황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인물들의 현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피부로 겪은 참담함과 모순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역설적 효과를 얻는다. 이 작품은 타인의 실수로 전쟁터에 던져진 '착한' 오장군을 통해 전쟁의 희생자 순진한 민중을 애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 삶의 모순과 아이러니적에게 거짓정보를 퍼뜨릴 포로가 될 만한 병사를 찾던 사령관은 어리석고 겁 많은 오장군을 적임자로 생각, 거짓정보를 주입시킨다. 시나리오대로 오장군은 수색 지역에 홀로 남게 되고 결국 적의 포로가 된다. 적의 사령관은 오장군의 발설 내용을 믿고 작전을 변경한다. 그러나 얼마 후 오장군의 발설 내용이 가짜임을 확인하고 총살 집행을 명령한다. 총살 집행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오장군의 군인 정신에 적들은 경의를 표한다. 죽는 순간까지 고향의 꽃분이와 어머니, 먹쇠를 부르는 오장군을 연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진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 아이러니는 오장군의 발톱에서도 힘을 얻는다. 전장에 나가는 군인들은 머리카락과 손톱을 깎아 유물로 남겨두게 되지만 우둔한 오장군은 발톱까지 깎아 유품으로 남긴다. 오장군이 죽은 후 유물을 받게 된 어머니와 꽃분이에게 군인들은 오장군의 죽음을 미화시켜 보고한다. 군인들은 오장군의 유품을 그의 머리카락과 손톱이라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는 오장군의 발톱이 들어있다.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발톱이 마지막 유품들 중 하나가 됐으며 군인들은 그 발톱을 영웅적 행위의 상징으로 표현한다.
연극 '오장군의 발톱'은 모순과 역설로 또 하나의 연극미학을 이뤄냈다. 반복되는 대조의 이지미와 아이러니는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전쟁이 아닌, 그 속에서 슬퍼하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화처럼 묘사되는 이 연극에는 날카로운 애환이 있다. 그것은 수시로 관객의 명치끝을 찌르며 아릿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연극이 가진 유머 역시 역설적이다. 관객은 우는 대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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