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알게 된 사실은 소금이 고기나 물고기와 결합하면 고기의 원래 맛도 좋아지고 짠맛도 그럴듯해진다는 점이다.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면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풍미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짠맛에 다른 풍미를 더하는 데에 가장 좋은 원료가 단백질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간장이 바로 거기서 시작했다.
단백질과 소금의 결혼
간장의 분포 지역은 크게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 동쪽 지역이다. 이 지역은 소금이 풍부하고 다른 음식 재료도 비교적 다양하다. 중국의 중원을 중심으로 동북아 지역에는 광범위한 육장이 존재했다. 단백질이 많이 포함된 재료 중 가장 흔한 것은 고기인데, 사람이 접근하기에는 역시 가축이 제일 쉽다. 이렇게 고기를 소금에 절여 만든 것이 '장(醬)'이다.
이렇게 소금에 절인 장은 그것만으로도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 맛이 좋았다. 지역에 따라 바닷가나 민물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지역은 물고기를 재료로 쓴 어장을 만들었다. 농경 사회가 되면서는 다른 재료가 필요했다. 밭에서 나는 고기인 콩을 이용해 장을 담그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드물게, 콩간장과 어간장이 함께 있던 특이한 곳이다.
식물 가운데 콩은 특이한 작물에 속한다. 다른 작물은 광합성 작용으로 물을 이용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고정시켜 탄수화물을 만들어 비축하기에 단백질의 함량이 아주 적지만, 콩은 뿌리혹박테리아와의 공생을 통해 공중의 질소를 고정시켜 단백질을 만들어내기에 다른 어떤 작물보다도 단백질의 함량이 높다. 그러니 이 콩을 간장 만드는 원료로 삼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 콩 가운데 메주콩인 대두는 고구려가 있었던 만주가 원산지여서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콩을 이용할 수 있었다. 지금 콩의 발효 기술은 중국, 한국, 일본에 걸친 동아시아 삼국의 공통 기술이다. 그렇지만 이 모두는 한국의 콩 발효 기술에서 유래했다. 중국의 중원은 처음에는 육장 지역이었고 전국시대에 이르러서야 콩을 먹기 시작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우리 삼국시대에 건너갔다. 중국의 두판장, 쌀을 섞은 일본 된장이나 나토와 같은 콩 발효 식품도 우리에게서 건너간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비록 현재 우리가 흔히 쓰는 메주는 비교적 단순한 제법으로 만들지만, 우리의 콩 발효 기술은 꽤나 수준 높은 것이어서 고대에는 우리도 일본의 나토 같은 것이나 메주를 만들 때 다른 곡식을 섞는 일이 흔했던 것이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메주의 제법이 단순화되면서, 다른 특수한 장들은 고추장처럼 다른 경로로 발전한 것이다. 대략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간장과 된장을 담그는 것이 정형화되었을 것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문왕 때 왕비를 모셔 오기 위한 납채(納采)에 곡식과 함께 이 메주를 보낸 기록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는 간장의 왕국
ⓒ프레시안(손문상) |
하지만 바다가 가까워 물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는 지역에서는 생선으로 담근 어간장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열대 지역이라 콩이 잘 자라지 않는 베트남, 타이, 미얀마, 캄보디아 등 바다와 가까운 동남아시아 권역은 거의 다 이 어간장을 먹는 지역이다. 어간장은 생선을 내장째로 소금에 절여 반년 이상 자연 발효하여 숙성한 것이다. 콩보다는 단백질의 질이 좋아 어간장의 풍미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간장은 약간 비린내가 나는 것 말고는 콩간장보다 맛이 뛰어난 편이다. 우리나라는 워낙 콩간장이 우세한 지역이라, 어간장이 남해안 일부와 제주도에 있긴 하지만 그리 흔한 편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간장이 보편화되지는 않았지만 젓갈은 무척 다양하고 발달했다. 젓갈의 종류는 새우젓, 조기젓, 멸치젓, 까나리젓, 밴댕이젓, 꼴뚜기젓, 명란젓, 창난젓, 어리굴젓, 조개젓 등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풍부하다. 요즘은 보통 새우젓, 황석어젓, 멸치젓, 까나리젓 등은 보통 간장과 비슷한 농도의 액젓 상태로 김치 담그는 데에 쓰고, 나머지 다른 젓갈들은 다시 양념을 해서 밥반찬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 가장 보편적인 젓갈인 새우젓은 간장과 비슷한 용도이기는 하지만 좀 더 세부화해서 다른 음식에 쓴다. 돼지고기 수육을 먹을 때라든지, 삭힌 홍어와 함께 먹기도 하고, 계란찜에 간을 하기 위해서도 사용한다. 찌개도 보통은 된장이나 고추장으로 간을 맞추지만 호박찌개에는 새우젓으로 간장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
액젓까지 간장의 범위에 넣는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간장의 종류가 가장 다양한 지역일 것이다. 일본도 콩간장 위주고, 중국도 콩간장과 어간장이 다 있지만 콩간장이 훨씬 우세하다. 젓갈에 이르면 중국과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세 나라 모두 곡식으로 지은 밥을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은 비슷하지만, 유독 우리나라가 간장과 젓갈에서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는 나름대로 짠맛에 일가견이 있는 '간장의 왕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장맛이 음식 맛의 절반이다
우리의 간장 종류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전통 간장은 메주를 소금물에 넣어 우려낸 것을 말한다. 콩을 삶아 덩어리로 만들고 새끼줄에 매달아 메주를 만든다. 메주에 피는 곰팡이는 메주를 발효시킨다. 이 메주를 숯, 고추, 대추 등과 함께 소금물에 넣어 침출시키고 메줏덩이를 걸러, 된 것은 된장, 맑은 물은 간장이라고 한다. 간장은 다시 끓여서 변질하지 않게 항아리에 보관한다. 물론 된장만을 얻으려고 만드는 막장도 있고, 간장만을 담그려는 메주도 있으며, 속성으로 열을 가해 담그는 간장도 있다. 간장에 맛을 내려고 도라지나 더덕 같은 것을 쓰기도 한다.
막 담근 간장은 농도가 진하지 않다. 이것을 묽은 간장이라 하여 국에 간을 맞출 때 쓴다. 2, 3년이 지난 간장은 중간장이라 하여 나물이나 찌개에 간을 맞추는 데에 쓰고, 5년이 지난 진한 간장은 진간장이라 하여 약식을 만들 때처럼 다른 용도로 구분해서 쓴다. 한 집의 장독대에는 연차가 다른 여러 간장독이 있게 마련이다. 장맛이 음식 맛을 좌우한다 생각하여 집집이 장의 관리에 보통 정성을 기울인 게 아니다. 맑은 날에는 뚜껑을 열고 햇볕을 쏘이면서 관리했고, 장 담그는 날은 특별히 택일을 하고 여러 벽사가 성행할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장은 찬을 마련하는 데에 꼭 들어가는 기본 재료일 뿐만 아니라 밥상 위에도 빠질 수 없는 것이었다. 비록 장을 반찬으로 치지는 않았지만 모든 밥상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으뜸 핵심이었다. 심지어는 기근이 들어 굶주릴 때에는 나라에서 콩 없이 장을 담그는 대체 간장 제법까지 보급했을 정도다. 기근이 끝나고 이듬해에 곡식이 열리더라도 간장은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기에 그렇게까지 한 것이다.
우리 간장을 조선 간장이라 부르는 시대
이런 우리식 간장이 뒤바뀐 것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였다. 중국과 일본, 한국은 메주를 만드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중국은 보통 밀을 첨가하고 일본은 쌀을 섞는다. 한국도 보리나 쌀을 넣어 메주를 만들기도 했지만 보통은 콩만으로 만든다.
일본의 간장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간장을 담그던 것은 다르지 않았지만 보통 번(蕃)을 중심으로 간장을 만들어 각 가정에 보급했다. 지역에 따라 다시마와 가다랑어 국물을 넣어 더 단맛이 나는 것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 번이 해체되어 간장 공급에 지장이 있자 1917년부터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간장을 생산하게 된다. 그와 함께 콩 발효도 황국균이라는 세균을 쓴 개량 메주로 바뀌었다. 일본에서는 1920년대부터 공장 간장이 대세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콩이 부족해지면서 공장 간장은 개량 메주조차 쓰지 않고 발효 대신 화학적 방법으로 간장을 생산한다. 이른바 산분해간장이라는 것이다. 콩깻묵처럼 기름을 뽑아내고 난 부산물을 활용하여 여기에 염산을 넣어 가수분해하고, 다시 소다로 중화시켜 얻은 아미노산에 소금물을 붓고 색과 맛과 향을 내는 첨가물을 넣어 만든 간장이다. 이렇게 공장에서 화학적 공정을 거쳐 만든 간장을 왜간장이라 불렀다.
해방 이후 궁핍한 시대의 간장은 거의 이 속성 공장 제품으로 채워졌다. 한국전쟁 전란의 어수선함은 간장이 놓일 장독대를 치워버렸으며, 그 뒤로도 아파트와 연립주택의 공간은 장독대를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나갔다. 어느덧 전통 간장은 사라지고 대부분 간장은 공장에서 생산하게 되었다. 생활이 나아지고 먹을 것이 풍부해진 요즘도, 공장 간장의 주류가 화학 간장에서 개량 메주를 쓴 양조 간장으로 이동하긴 했지만, 옛날식 간장을 집에서 담그는 것은 시골을 빼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우리 전통 간장은 '조선 간장'이 되어버렸다.
1930년대만 해도, 달고 약간 비릿한 맛이 나는 공장 간장은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아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지만, 철마다 간장을 담그고 장독대에 묵은 간장들을 따로 보관하는 수고로움이 차츰 이 공장 간장에 입맛을 길들이게 했다. 그러면서 대다수 간장 수요는 왜간장으로 넘어가고 우리 간장은 국에 간을 맞추거나 나물을 무치는 한정된 쓰임새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금은 산분해간장이 많이 사라지고 양조간장이 주류를 이루지만 이 양조간장은 메주곰팡이가 아니라 황국균으로 발효시킨 개량 메주로 만든 것이다. 이제 도시에서는 조선 간장마저도 공장 간장을 쓰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
장맛에 따른 불고기 맛의 변질
이런 간장의 변화가 우리 음식 맛에 준 변화는 과연 무엇일까? 간장이 들어가는 음식의 종류는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것은 불고기일 것이다. 불고기는 육식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가장 선호하는 한국 음식 가운데 하나다. 불고기 양념의 기본이 바로 간장이다. 그것도 조선 간장이 아닌, 왜간장이라 부르는 공장 간장이다. 그렇다면 원래 불고기란 무엇이었을까?
불고기의 옛날 이름은 너비아니구이다. 너비아니구이는 맥적이라 표기하니 맥, 곧 '고구려 사람들'이 먹던 고기구이로, 쇠고기를 넓게 편 것을 양념하여 숯불에 굽는 것을 이른다. 예전에는 꼬치에 끼워 굽는 산적과도 같은 것이었으나, 석쇠가 나온 뒤로는 숯불에 직접 구워 먹었다.
양념이 고구려 때부터 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소금을 뿌려 먹던 것이 간장을 비롯한 양념으로 대체된 것 같다. 여기서 간장이라면 바로 조선 간장이다. 다만 구이를 양념하는 데에는 좀 더 진한 맛이 필요했기에 오래된 진간장을 썼다. 간장만으로는 맛을 내기 어려우니 꿀이나 조청과 같이 단맛을 내는 재료, 냄새를 없애는 술과 파와 마늘 같은 재료, 참기름 등을 섞어 양념을 만들어 고기에 맛이 배도록 했다. 예전에도 꿀과 조청 같은 재료를 넣은 것을 보면 고기에 단맛과 짠맛을 고루 배게 하는 것이 불고기 양념의 특색이었던 것이다. 간장의 아미노산은 고기의 아미노산 맛이 터지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해서 그냥 소금만 뿌려 구운 고기보다 더 좋은 맛이 난다.
그런데 달짝지근한 일본식 공장 간장이 나온 뒤로는, 보관하기 어려운 진간장을 공장 간장이 대신하고 꿀과 조청보다 훨씬 손쉬운 설탕이 주재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일종의 효과적인 대체 양념들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의 변화는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간장을 묵히기도 쉽지 않고, 덜 비싸고 같은 효용을 주는 재료를 쓰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요즈음에 와서는 단맛이 점점 강해지면서 불고기는 제 맛을 잃어버린다.
소박하고 깊은 조선 간장의 맛
불고기가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것은 고기의 맛을 간장으로 북돋운 데에 있다. 대부분 고기를 먹는 지역에서는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하거나 스테이크처럼 다른 소스를 만들어 함께 먹는다. 불고기는 그냥 아미노산의 구수한 맛이 든 간장에 오래 재워 맛을 돋우고 단맛은 감칠맛을 더했기에 고기의 본래 맛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었다.
조선 간장은 단순하고 소박한 맛이다. 그래서 고기와 잘 어울릴 수 있다. 이제 와서 간장을 집에서 담그라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지만, 공장 간장이 전통의 조선 간장 맛을 재현할 수는 없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재현한 간장에다 설탕을 줄인 불고기는 짧은 단맛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간장과 젓갈처럼 소금을 이용한 발효에서는 선진국이라 할 입맛들이 싸구려 맛에 물들어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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