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10억 원 수수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를 벌이는 것을 두고 '별건수사' 지적이 일고 '흠집내기' 비난이 일지만 이 또한 마찬가지다. 검찰이 잡고 있는 혐의가 법정에서 확정되면 지적과 비난은 허공으로 사라진다.
검찰은 아마도 이 같은 이치에 몸을 맡기는 것 같다. 오늘 오후 2시에 내려지는 '5만 달러 수수의혹 사건'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지더라도 '10억 원'만 사실로 확정하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헌데 문제가 있다. 이 같은 이치는 하나의 사실과 하나의 논리가 겨루는 단선구조에서만 작동하는 것이라는 게 문제이고, 한명숙 전 총리와 관련된 사건처럼 '복선 구조'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들어서는 한명숙 전 총리 ⓒ연합뉴스 |
사실이 위력을 발휘하는 건 공인될 때다. 그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할 정도로 객관적인 것으로 인정될 때다. 더 풀어 말하면 법정에서 혐의가 사실로 확정될 때다.
하지만 의혹이다. 검찰이 포착한 '10억 원'은 혐의다. 언제 확정될지 모르는 혐의다. 반면에 '5만 달러'는 오늘을 기점으로 사실 여부가 판명난다. 원칙적으론 상급심의 확정판결이 나야 하지만 여론상으로는 1심 선고가 사실 여부를 1차로 가른다. 두 개의 '사건'이 사실과 의혹의 위치에서 각축을 벌이는 것이다.
의혹이 신빙성을 확보하는 건 권위가 인정될 때다. 대다수 국민이 의혹을 제기하는 주체에 신뢰를 보내고, 의혹을 제기하는 배경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을 때다.
하지만 떨어진다. '5만 달러'를 제기한 검찰의 신뢰는 재판과정에서 상당부분 손상됐다. 반면에 한명숙 전 총리의 신뢰는 일정부분 만회했다. 만에 하나 오늘 '5만 달러'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지면 이 같은 권위 교차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한명숙 전 총리는 '신뢰 갑옷'을 입고 싸우는 반면 검찰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돼 싸우는 것이다.
검찰은 서둘거나 늦췄어야 한다. '10억 원'의 구체성을 정말 확신했다면 '5만 달러'와의 병합심리를 요청하든지, 아니면 '5만 달러' 판결 '약발'이 가실 때쯤 꺼내든지 했어야 한다. 그렇게 의혹에 의혹을 맞세우든지, 아니면 사실과 의혹을 '별건'으로 처리하든지 했어야 한다.
검찰은 자충수를 둔 것이다. '5만 달러'가 사실(=허위)로 막 등극해 기세등등할 때에 의혹을 어설프게 꺼내드는 바람에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하는 결과를 자초한 것이다. '5만 달러'의 김을 빼기는커녕 '10억 원'의 김만 빼는 자해수를 둔 것이다.
여기까지다. 검찰의 '10억 원' 수사에 대한 분석은 여기까지다. 정반대의 상황, 즉 법원이 '5만 달러'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를 따로 살펴야 하지만 생략한다. 그런 경우는 진단하고 전망할 필요가 전혀 없는, 누가 봐도 명백한 '판 정리'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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