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화증이 뿌리 내린 지 이미 오래고 나이도 쇠해 날이 갈수록 깊은 고질이 되어 간다. 무릇 사람의 일시적 질환은 고치기 쉽지만 가장 치료하기 어려운 것은 화증이다. (…) 오랜 시간 동안 일을 하면 화염이 위로 올라 비록 한겨울이라도 손에서 부채를 놓을 수가 없다."
이렇게 화병을 달고 살았던 숙종은 눈병으로도 고생했다. 1717년(숙종 43년)에는 글을 보기 어려워 장지에 간략하게 보고하도록 하였으며, 왕세자의 결혼식 후 인사를 왔을 때는 왕세자빈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어 "내가 눈병이 이와 같으니 왕세자빈의 얼굴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구나" 이렇게 탄식했다.
한의학의 시각에 보면, 눈은 본래 불의 통로다. 사물을 포착하는 시력은 모두 불의 작용에 의한 것이며, 두 눈은 불이 들락거리는 통로다. 화병은 이런 불의 통로인 눈에 불의 기운을 더해서 균형을 깨뜨린다. 그 결과 눈의 신경을 위축시키고, 결국에는 시력에 심각한 손상을 준다.
▲ 드라마 <동이>의 숙종은 '카리스마의 화신'으로 나온다. 하지만 그 크리스마를 유지하고자 숙종은 평생을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그 스트레스는 결국 시력을 앗아갔다. ⓒMBC |
"간에 화가 있으면 피가 뜨겁고 기가 위로 치솟아 오르므로 혈맥이 통하지 않게 된다. 간의 열을 내리면 오장이 안정되어 눈의 여러 가지 증상이 회복되는데 공청의 찬 맛은 쌓인 열을 없애준다."
옛날부터 눈이 나쁘면 소간을 먹는 것처럼 간과 눈은 서로 이어진다. 공청은 <신농본초경>에 청맹과니를 치료한다고 기록한다. 청맹과니는 현대적으로 말하면 녹내장의 증상과 유사하다. 그러나 실제로 녹내장에 공청은 큰 효과가 없다. 숙종도 공청을 써서 효과를 본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바로 봄철에 가장 흔한 냉이야말로 답이다.
냉이는 음력 8월 중추에 싹을 틔운다. 가을은 여름 내내 왕성하게 흐르던 물도 마르고, 풀과 나무도 물기를 버리며 시들어 간다. 시들고 죽어가는 곳에서 씨앗을 틔우는 냉이는 가장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이렇게 생기가 강한 식물로 여겨졌던 냉이는 간의 기운(생기)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런 시각은 그리스 신화에서도 볼 수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주고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다. 쇠사슬에 묶인 채로 산에 매달리는데 날마다 낮이 되면 독수리가 날아와서 간을 쪼아 먹는 고통을 당한다. 신기하게도 밤이 되면 간은 다시 재생된다. 그래서 간의 이름은 영어로도 'liver'이다.
냉이의 이름인 석명자(菥蓂子)는 냉이의 효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석'은 나무를 깨서 나눈다는 뜻이고, '명'은 어둡다는 뜻이다. 눈이 캄캄하고 어두운 것을 깨어서 없앤다는 의미이니, 냉이가 눈 질환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냉이 씨의 효능은 좀 더 구체적이다. <동의보감>은 "사물을 볼 수 없는 질환을 치료한다"고 기록한다.
눈 속 수정체와 각막 사이에도 눈물인 방수가 흐른다. 방수는 혈액에서 걸러져 나온 것인데, 이 액체의 흐름이 나빠지면 눈의 압력이 높아져서 시신경에 손상을 준다. 안구 속에 고이면서 눈 속의 압력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시세포가 눌려 장애를 일으키고 시력이 저하된다. 또 각막이 부어오르고 안개가 낀 것처럼 눈이 흐려지면서 눈이나 머리까지 아파진다. 냉이는 방수를 배출하는 작용이 있어서 이런 녹내장에 효과적이다.
50세 이상에서 안내압이 높은 사람은 약 3퍼센트다. 실제로 높은 안압으로 발생하는 녹내장은 50세 이상의 여성에 많다. 갑자기 안압이 높아지면 망막의 혈관이 파괴되기 때문에 눈이 충혈된다. 이런 녹내장에도 냉이는 효과를 발휘한다. <현대 실용중의약>을 보면, 냉이는 "지혈, 자궁 출혈, 유산 출혈, 월경 과다, 두통, 안통, 망막 출혈 치료"에 효과가 있다.
냉이를 '호생(護生)초'라고도 부른다. 냉이를 이불 밑에 두면 벼룩이 사라지고 마루 밑에 넣으면 좀이 슬지 않는다. 또 냉이의 줄기를 호롱불의 심지로 쓰면 나방이나 발벌레가 덤벼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살생을 금하는 불가의 입장에서 냉이의 줄기로 호롱불의 심지를 돋았다.
냉이는 강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갖고 있어서 자라는 곳이 다양하고 종류도 많다. 습기가 없는 곳에는 다닥냉이가 자라는데 강심 작용이 커서 호흡 곤란에 쓴다. 산속 냇가에는 구슬 갓냉이가 자라는데 기침과 기관지염에 사용한다. 들판에 자라는 것은 말냉이인데 자궁 내막염으로 오는 냉대하에 쓴다.
동네 어귀 냇가에 많은 것은 큰황새냉이인데 녹내장이나 눈을 밝히는데 사용한다. 눈에 효험이 큰 석명자의 석은 큰황새냉이를 말한다. 냉이의 싹, 잎은 뿌리와 더불어 이른 봄을 장식하는 나물이다. 냉이국은 뿌리도 함께 넣어야 참맛이 난다. 또 냉이를 데워서 우려낸 것을 잘게 썰어 나물죽을 끓여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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