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지인들과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시리즈를 구하려고 외국 구매 사이트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론리 플래닛> 시리즈는 매년 100여개국에서 600만 권 이상 팔리는 세계적 여행 안내서이다. 이 시리즈는 전 세계 배낭 여행자와 저예산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책으로, 2004년부터 한국어판도 출간되기 시작했다.
부끄럽게도 얼마 전 <론리 플래닛> 측은 서울을 세계 최악의 도시 3위로 평가했다. 특히 "감성과 혼이 없는(with no heart or spirit to it)", "소비에트식 콘크리트 아파트(Soviet-style concrete apartments)"를 서울의 가장 특징적이고 부정적인 인상으로 꼽았다.
또 하나의 이야기. 지난 2월 서울시는 세계 34개 도시의 시장 및 대표단을 초청하여 이른바 '세계 디자인 도시 서미트'를 개최했다. 대회 일정 중에는 외국 유수의 도시 디자이너들과 전문가 그룹을 데리고 서울시를 둘러보는 시간이 있었다. 다음날 보도된 기사를 보니 한 참석자가 "서울은 어딜 가나 공사 중인데, 그렇다면 전에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 또 다른 참석자는 "서울의 디자인 도시 정책이 매우 급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은 인상인데, 시민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때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충고했다던가. 이는 결국 시민의 삶으로부터 유리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개발정책과 가시적 성과에만 매달린 천박한 관료들이 급조해서 진행하고 있는 정책을 두고 한 말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서울시는 무얼 믿고 저러나. 서울시가 자기논리와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바로 디자인 도시 슬로건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2007년 '세계 디자인 수도(World Design Capital·WDC) 선정 과정부터 말이 많았다. WDC는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Icsid)가 WDC 유치를 원하는 도시들을 대상으로 격년제로 선정 발표한다.
서울이 그 첫 번째 선정 도시가 되었는데, 아직 국제적인 권위는 물론이고 선정에 따른 실익도 확인된 바 없다. 또 도시 디자인과 도시 재생 사례로 세계 유수의 도시들은 거의 신청을 하지 않은 채 심사가 이루어져 서울시가 단독 후보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이 같은 사실을 묻어둔 채 WDC 선정이 마치 서울시 디자인 정책이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받은 쾌거인양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서울 시민을 우롱하고 자기최면에 빠트리고 있다. 급기야 예산의 우선순위도 무시해버렸다. 2010년 올해 서울시 디자인총괄본부 예산은 자그마치 1040억에 달한다.
철학도 비전도 없는 서울시의 급조된 디자인 정책의 피해자는 결국 재개발이란 이름으로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시민들이다. 뉴타운 개발 지역 아파트에 원주민 입주율이 15퍼센트 정도라면 나머지 원주민들은 결국 도시 빈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결국 서울시가 추구하는 디자인 문화 정책은 도시 원주민을 빈민으로 전락시키고 생업에 종사하는 중산층마저 도심 재개발 정책으로 내쫓는 야만과 폭력의 악순환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용산 업무 지구 개발 계획과 맞물려 생업에 종사하는 원주민들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폭력적으로 추진된 용산 재개발 계획의 과정에서 일어난 용산 참사는 서울시 도시 디자인 정책의 본질과 허구를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한 사례이며, 홍대 앞 '두리반 사태'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전 세계 수도 가운데 6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드물다. 하지만 그 시간의 무게와 역사만큼 정신적 유산과 문화를 우리의 서울은 가지고 있는가. 무미건조한 표지판의 흔적으로 박제된 기억만을 강요하는 정부와 관청과 개발 업자들의 야만과 아둔함을 언제까지 두고만 보아야 하는가.
▲ 진정한 문화는 기억과 함께 존재한다. 탐욕에 눈먼 개발 업자와 관료와 대기업이 자행하는 강제 철거 위기에 내몰린 홍대 앞 '두리반.' ⓒ프레시안(최형락) |
진정한 문화는 기억과 함께 존재한다. 멀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일제하 서대문구 북아현동엔 도시형 한옥이 들어서면서 당시 연희전문학교 학생들의 하숙촌이 형성되었다. 시인 윤동주도 학교와 하숙집 사이 언덕길을 오가던 학생이었다.
왕십리는 1970년대 금형(金型) 공장 밀집 지역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에게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는 흔한 일이었는데, 박노해의 시 '손무덤'을 떠올리게 하는 이 공간도,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이 있던 북아현동도 여지없이 서울시 뉴타운 개발 대상지이다.
종로 피맛골은 그 옛날 양반들의 종로 '대로행'을 피해 가난한 상인들이 뒷골목에서 고단한 삶을 빈대떡과 막걸리로 위안 삼으며 상권을 형성해온 유명한 골목이다. 그후 주머니가 가벼운 예술가들과 서민들이 한잔 술로 목을 축이던,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 또한 개발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수도 서울의 경쟁력과 가치를 높여 세계적인 유수의 문화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야망은 전시용 행정과 박제된 슬로건으로 남게 될 공산이 크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길의 흔적을 쓸어버리는 천박한 개발지상주의자들이 도시의 실핏줄이나 다름없는 유구한 길과 골목 문화를 낙후와 미개함의 상징으로 보는 한, 감성과 혼이 담긴 도시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탐욕에 눈먼 개발 업자와 관료와 대기업이 자행하는 강제 철거 위기에 내몰린 홍대 앞 '두리반'에 어느새 '두리반 문화'가 생겼다. 요일마다 작은 음악회와 기도회와 영화 상영이 진행되고 있다. 토요일 밤에는 인디밴드들의 근사한 록 콘서트도 열린다. 한쪽에는 후원자가 기증한 조그만 책방(?)도 있어 질 높은 인문서를 읽을 수도 있다.
그런 두리반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날은 언제일까. 하루빨리 정겨운 사람들과 칼국수를 앞에 두고 담소하는 주인 안종녀 씨와 남편 유채림 소설가의 얼굴을 보고 싶다. 언제까지 이 땅의 도시화와 재개발은 억압과 배타와 차별과 소외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려야 하는가. 차가운 콘크리트 구조물과 삽질로 대변되는 야만과 폭력의 시간은 이제 끝나야 한다. 천박한 삽질 문화와 맞서는 두리반이 새삼 소중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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