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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22]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고발, 연극 '코펜하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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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Factory.22]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고발, 연극 '코펜하겐'

[공연리뷰&프리뷰] "왜, 1941년 하이젠베르그는 보어를 찾아왔는가?"

문이 열린다. 역사의 문이 열리고 진실의 문이 열리고 고독한 인간 내면의 문이 열린다. 열린 문으로 찬란한 햇빛이 드리우고, 해가 낸 길을 따라 세 사람이 서 있다. 마주보고 있는 닐스 보어와 베르너 하이젠베르그, 그리고 같은 길 위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마그리트. 문이 열리고 그 속에서는 명징한 해답 대신 또 다른 질문이 나온다. "왜, 1941년 하이젠베르그는 보어를 찾아왔는가?"

▲ ⓒ프레시안

아버지와 아들 같은 사제지간이자 오랜 연구 동료인 보어와 하이젠베르그는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적국으로 갈라서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젠베르그의 방문은 많은 논란과 다양한 추측을 야기했다. 세상은 이 위험하면서도 비밀스러운 방문에 대해 지난 50년간 토론을 벌여왔으나 결론을 얻지 못했다. 연극 '코펜하겐'은 다시 한 번 묻는다. "그런데,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는 명확한 해답을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인간'을 들여다보기 위한 두드림이다.

- 과학을 통해 과학이 아닌 인간을 말하다

▲ ⓒ프레시안
무대 위에는 거대한 역삼각형의 한 꼭짓점이 종이뭉치를 누르고 있다. 이들이 쌓아온 업적을 짓누르는 듯한 삼각형을 배경으로 세 사람이 앉아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삼각형을 이루며 앉아있는 이들은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들여다보며, 대화하며, 혹은 무대 장치인 역삼각형 위에 다양한 수식 및 이론을 펼치며 답을 얻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세 명이 이룬 삼각형 안에는 그 과정만이 새겨질 뿐 정답은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불확실한 존재가 확실한 답을 찾기 위해 온 힘을 쏟는 아이러니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연극 '코펜하겐'은 이들의 만남과 핵무기 개발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과학자의 삶과 윤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품 속에는 핵분열, 원자탄의 제조과정과 불확정성의 원리, 상보성원리, 입자, 파동, 플루토늄 등 어려운 과학 용어와 이론, 이름들이 난무한다. 감탄을 자아낼 만큼 술술 읊어대는 배우들의 언어와 문장은 치밀하고 정교하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의 연극 '코펜하겐'은 여러 수식과 이론들이 충돌하는 동시에 보어와 하이젠베르그, 결국 인간과 인간의 충돌을 보여주며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로의 대화 속에서 생활의 예를 들고, 그것은 인간의 삶을 관통한다. 관객은 이들의 대화 속으로 빠져들며 그 속에서 불확실한 인간, 그 삶을 목격하게 된다.

- 확실한 것은 불확실하다는 것뿐

▲ ⓒ프레시안
하이젠베르그는 핵폭탄 연구에 관해 끊임없이 자신을 변호하지만 스스로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들수록 오히려 혼란스러워진다. 인류는 이와 같은 혼란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지켜져 왔다. 인간은 자신의 입장과 시선으로만 과거를 기억하기에 인간의 기억은 불확실하다. 그 누구도 제 삼자가 될 수 없다. 연극이 말하는 것처럼 '나'는 '그들'을 관찰하지만 그 순간 '나'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윤리라는 것 역시 연구를 하는 당시 스스로를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윤리적 행동에 대해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연구의 순간 이미 그 윤리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지구의 기나긴 시간은 그 단편적 오류와 오해들로 메워져있다.

연극 '코펜하겐'은 '보어의 방문'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두고 여러 가정을 펼친다. 이미 극 자체가 추측이고 가정이며 그러므로 불확실하다. 우리는 이 연극의 행위자체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결국 판단은 더 불확실한 인간의 몫이다. 전쟁과 과학, 그 사이에 껴 있는 윤리에 대한 두 과학자들의 고민은 그들을 과학이 아닌 인간으로 바라보게끔 한다. 연극 '코펜하겐'은 세 번이나 반복된 질문 '왜 하이젠베르그는 보어를 찾아왔는가'의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너무나 인간다운 인간, 과학자의 수식을 달고 고뇌하는 나약한 인간만을 보여준다. 어려운 이론들과 용어들을 노련하게 읊어낸 배우들은 극의 몰입을 도왔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대화에 동참하도록 유도했다. 100여분 동안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한 그들의 노력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소통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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