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책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를 사놓고서도 페이지를 넘기는 게 두려웠다. 한국 최고 기업이라는 삼성이 내 짐작보다 더 실망스런 모습일까봐. 4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읽어갈수록 난 책을 덮고 싶었지만 차마 덮을 수 없었다. 진실과 마주하는 일은 늘 불편함을 동반한다.
원래부터 나는 남들보다 삼성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편이었다. 삼성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부럽지 않았고, 삼성에서 근무하는 남자를 만나는 친구가 절대 부럽지 않았다. 재벌에 혐오감을 갖고 있었고, 수조 원의 비자금 조성과 수백, 수천억 원의 탈세에도 면죄부를 턱턱 받아가는 삼성이 난 정말 싫었다.
이런 나였지만 해외에서 삼성을 대할 때는 좀 달랐다. 홍콩항 한복판에 가장 눈에 띄는 간판을 내건 삼성의 감각이 자랑스러웠고, 삼성이 한국 기업이었냐며 되묻는 외국인에게 기꺼이 그렇다고 답했다. 어쩌면 나는 우리나라에 대한 감정과 마찬가지의 '애증'이 삼성에게도 있었나보다.
삼성의 진실은 그야말로 충격이었고 실망이었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답게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다는 곳에는 모두 돈을 뿌리며 관리를 해온 삼성, 그들의 지나친 관리는 삼성기업 전체나 우리나라를 위해서가 아닌 이건희와 그의 집안을 위해서만 존재했다. 허물을 벗은 삼성의 실체는 흉악스러웠다.
제왕적으로 군림하며 삼성을 통치(?)하는 이건희는 역겨웠고 자신들이 남들과 다른 선택받은 종족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이건희 집안 사람들의 모습은 재수가 없었다. 수없이 많은 어이없는 도전과 실패로 수천, 수조 원을 말아먹기도 한 삼성에 대해 제대로 보도한 언론조차 없었다는 사실은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해외 기업과의 거래에서 삼성의 회계장부는 무용지물이란 사실 또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런 삼성을 용인하고 묵인하는 정권과 검찰, 언론 등은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했다. 제일 견딜 수 없었던 건 그런 역겨움에도 그것이 우리의 사회임을, 내가 두 발로 딛고 서 있는 바로 대한민국 땅임을 인정해야 하는 일이었다.
책을 덮으면서 단 한 방울의 눈물이 또르르 뺨을 타고 흘렀다. 분노의 눈물일 수도 있고 슬픔의 눈물일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지인들에게 이 책을 권하는 것, 그리고 삼성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 등. 실오라기 하나도 들 수 없을 만큼의 작은 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이면 분명 큰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미 트위터에는 삼성 불매운동이 진행 중이고, 입소문을 탄 책은 서점마다 가득 쌓여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비겁하게 성공한 기업보다 정직하게 실패한 기업이 나는 좋다.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미래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기업이 나는 좋다. 경영지침서를 읽는 CEO보다 인문학 서적을 더 열심히 읽는 CEO가 나는 좋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세상에 대한 이해, 자신의 역할을 분명이 아는 기업인이 우리 사회엔 절실히 필요하다. 글로벌 기업이란 국가예산 만큼을 벌어들이는 기업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세계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투명하게 경영하는 기업만이 '글로벌'이라는 수식어를 차지할 수 있다.
▲ ▲ 구글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왼쪽)과 래리 페이지. 미국의 구글은 젊은 대학원생 두 명이 창업하여 세계적인 대기업이 된 사례다. 한국에서는 왜 이런 모델이 불가능할까. 재벌과 기득권층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끔 짜여져 있는 경제, 사회 질서 때문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연합뉴스 |
대학원생 두 명이 설립해 세계적인 기업이 된 구글. 자수성가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빌게이츠. 놀라운 상상력으로 미래를 여는 스티브 잡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몸뚱아리만 있어도 열정과 노력이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다. 그리고 그 희망을 믿고 적극적으로 투자, 지원하는 국가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좀 막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칙보다 원칙이, 비겁함보다 정직함이 더 가치있다는 걸 깨우치면 된다. 그러면 변화는 언젠가 찾아온다. 미 하원이 1세기에 걸친 노력 끝에 건보개혁안을 통과시켰듯, 우리도 할 수 있다. 삼성을 다시 세우는 일,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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