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사로 본 한국 사회'라는 소제목을 덧붙인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이광수 지음, 이후 펴냄)는 한국에서 '인도사'라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볼 귀하고 소중한 기회이다. 왜 하필 인도 이야기인가 하고 시큰둥할지도 모르는 가상의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나를 비춰볼 거울이 아니라면 내 모습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겠는가?"
▲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이광주 지음, 이후 펴냄). ⓒ프레시안 |
저자 이광수는 인도 역사 특히 인도 고대사에 관한 한 우리 사회에서 거의 유일한 전문가다. 그의 작업은 뒤늦은 오리엔탈리즘과 관련 깊은 불교사나 인도 철학사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명상과 요가의 인도가 아닌,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역사를 보게 해 준다. 그 동안 발표한 <인도는 무엇으로 사는가>, <카스트 : 지속과 변화>, <인도사에서 종교와 역사 만들기>, <암소와 갠지스>,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 그리고 새롭게 내놓은 <역사는 핵무기보다 무섭다>는 모두 그 땅에 사는 '남'들의 이야기이다. 특히, 이번의 시도는 2008년 3월부터 10월까지 <프레시안>에 연재한 28회에 걸친 '인도사로 한국 사회를 논하다'를 정리한 것으로, 우리에게 '봉쇄당한 역사의식을 깨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덜 박힌 못' 같은 존재, 주도권 없는 '1인'이면서 인도 역사는 반쯤 아는 독자로서 나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비정규직, 빈곤층이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살 가능성은? 개혁 진영이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기득권들과 싸워서 얻게 될 결과는? 한국 사회의 무수한 경계들을 무너뜨리는 통합의 흐름과 대중의 전문화가 야기할 결과는? 한국에서 특정 종교가 우대를 받게 된 까닭은? 지역 감정의 근원과 그것의 실체는? 농민과 세계화가 공존할 방법은? 그리고 한국 사회의 '발전'에 대한 확신은?
이러한 현재 진행형인 문제들을 생각해보기 위해 저자는 불교의 혁명적인 측면과 생존법, 브라만과 크샤트리아의 상호연대, 종교적 융통성이나 간다라 미술과 같은 문화 통합을 통해서 번성하고 안정을 유지했던 마우리야 왕조 이후 인도사(1부)를 '거울'로 사용한다. 그래서 인도에서 카스트가 고착화된 것처럼,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이 고착화되는 것을 슬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급 의식을 키워 새로운 세상을 열기보다 만연한 경쟁과 승리의 이데올로기를 좆는 힘없는 낱개의 주체들을 비판하고, 융통성이 지배한 인도 문화에 비해 소통할 줄 모르는 인문학자들의 폐쇄성을 토로한다.
사실, 나는 인도학 전공자가 극히 소수인 까닭에 비교적 가까이에서 저자를 지켜보아왔는데, 역사를 박물관쯤으로 역사학자를 큐레이터쯤으로 치부하기도 했던 내게 저자는 말로만 역사가 오늘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주었다. 사료가 아닌 서발턴의 연구에 심취하는가 하면, 평화단체인 '아시아평화인권연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의 사람 사는 땅을 밟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인도 역사 또한 현재의 우리와 소통하는 이야기임을 공감케 하고, 그럼으로써 세상의 모든 세상의 역사가 가지는 의미를 새삼 일깨워 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예의 의심스런 그 문제를 떠올렸다. 나는 늘 '역사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관적인 '눈'이 의심스럽다. 수천, 수백 년의 역사를 꿰뚫는 '스토리'라는 게 실체가 있는 것일까? 아쇼카 왕이 칼링가 전쟁 후에 갑자기 불살생을 옹호하고 평화주의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것처럼, 그것을 재구성할 재료들이 충분치 않은 역사일 경우에는 물론이고, 설사 재료들이 충분하다고 할지라도 역사를 스토리로 재구성하는 것은 결국 주관적인 역사관일 것이다. 간단한 사건 하나도 보는 눈에 따라 스토리는 다르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시공간의 수많은 변수에도 불구하고 늘 역사는 쥐고 있는 자의 것으로 기록되고 알려 지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할 때 역사는 결국 해석의 문제가 된다. 실체에 가까운 해석을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인도의 무슬림과 힌두교도가 지금껏 싸우는 것처럼 역사를 왜곡한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전쟁이 일어난다. 그 점을 알고 보아도 최근의 일들조차 사실을 해석한 것인지, 해석에 사실을 맞추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빈번하다. 게다가 역사학자들이 제각기 가진 정보를 가지고 주관적으로 재단하지 않을 방법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왜곡할 뜻이 없다 하더라도 많이 아는 역사학자는 많이 알아서, 모르는 역사학자는 몰라서 제각기 자기 주관으로 최선을 다해 재단할 뿐이라면 어쩌겠는가?
브라만이 크샤트리아를 끌어들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는 역사 기술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주도면밀한 계획을 지속시킨 계급의 실체를 과연 수천 년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역사 기술은 역사적 사실인가, 해석인가? 어쨌든 역사학자는 이미 일어난 일을 다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보니, 이미 일어난 일들을 어떤 사건, 상황, 경향, 방향과 같은 것으로 규정하는 기준은 과연 믿을 만 한 걸일까 하는 의문까지 꼬리를 문다.
예를 들어, 기원전 6세기 고대 인도에서는 유목 시대가 끝나고 농경 시대가 왔고, 서기 2000년대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시대가 왔다는 비교가, 그리고 당시 인도에서는 카스트의 첨예한 대립 구조가 형성되었고, 한국에서는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88만 원 세대의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비교가 가능한 것일까?
2600년을 뛰어넘는 비교는 공상과학영화에서처럼 멋지고 흥미로운 일탈이 될 수도 있지만, 이 둘을 과연 '상황'으로 설정하고 양쪽에 놓아도 되는 것일까? 10년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평가하고, 동시에 이 불안한 민주주의마저 새로운 정부에 의해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이 일종의 상황 파악이라면, 베다후 시대 부처가 브라만을 정점으로 하고 불평등과 차별을 근간으로 하는 카스트 체계를 반대하고, 제사를 기반으로 하는 윤회관에 반대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을 요구한 것도 과연 마찬가지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역사를 볼 때 어떤 것은 상황이고 어떤 것은 맥락이고 또 어떤 것은 방향일까? 여기에 기준은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저자는 역사관의 한계를 절감한 나머지 연구실 밖으로 나가 실천으로 역사가의 길을 가고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고민하는 역사학자의 역사관이 "역사가 그렇게 단일하게 구성되지도 않고, 일목요연하게 진보하지도 않으며, 명쾌한 논리로 해석되거나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역사라는 것이 국가, 역사가, 기득권자, 전위 행동가 등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역사의 주체는 개인이라는 말을 방금 이 역사학자에게 들은 것 같아서 비로소 의심의 끈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역사에 대한 나의 의심은 이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이기성의 발로였나 싶다. 못이 덜 박혔기 때문에 삐딱하게 보길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역사가 결코 단층적인 것이 아니라 중층적임을 그 개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에서 나는 이 책에 담긴 '수천 년의 역사'를 훑어보는 주관적인 '눈'에 대한 의심도 내려놓기로 한다. 한 역사학자의 역사적 주체의식을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누구든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 역사의 행간을 읽는 자유는 원하는 만큼 누려도 될 것이므로. 만약 우리가 그런 눈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때에는 아무리 국가, 역사가, 기득권자가 이끌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인더스 문명에서 2002년 구자라트 사태에 이르기 까지 수천 년의 인도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장점과 그래서 있을 수도 있는 단점을 양면으로 가졌다. 여기에 저자의 '보는 눈'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까지 요구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지금까지 심하게 몰랐던 남의 역사가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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