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도 당연히 유산을 거론하고 있다.
"해산은 밤이 다 익으면 밤송이가 저절로 벌어져서 밤송이나 밤톨이 아무런 손상도 없는 것과 같다. 유산은 아직 채 익지 않은 밤을 따서 그 밤송이를 비벼서 껍질을 손상시킨 뒤에 밤톨을 발라내는 것과 같다. 자궁이 손상되고 탯줄이 끊어진 뒤에 태아가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산했을 때는 열 배나 더 잘 조리하고 치료해야 한다."
이런 비유를 염두에 두면, <동의보감>에 나오는 옛사람의 난산 처방도 이해가 된다. 난산에는 '삼퇴산'이라는 처방을 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것에는 뱀의 허물, 매미의 허물 등이 들어간다. 이 처방에는 뱀이나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자궁에서 태아가 떨어져 나오도록 해 난산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동의보감>의 비유는 그럴 듯하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하고, 그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는 것이 임신이다. 태아를 감싸는 태반과 자궁은 10개월 동안 영양과 노폐물을 주고받는다. 출산은 태반이 나오는 것으로 끝나는데, <동의보감>의 비유대로 밤톨이 발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 낙태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은 여성의 건강이다. ⓒ프레시안(자료) |
누룩은 날것인 밀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뚜껑을 덮어 발효시킨 것이다. 이것은 원기를 돕는 작용보다는 스스로 변하게 하는 힘이 세다고 본다. 옛사람은 누룩이 변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누룩이 태아의 변화시켜 유산을 하게 한다고 본 것이다.
느릅나무 껍질도 있다. <재기(載記)>라는 고서는 느릅나무 껍질의 약효를 이렇게 설명했다. "진흙탕 느릅나무에서 죽은 토끼를 찾았더니 흐물흐물하고 미끄러웠다." 태반도 흐믈흐물하게 하고 종기가 뜬뜬해진 것도 흐물흐물하게 연화시켜 치료하는 효능을 나타낸다는 원리다.
<동의보감>에는 우슬(牛膝)을 넣은 처방도 기록돼 있다. 우슬은 본래 무릎이 아픈데 쓰는 최고의 약이다. 이름 그대로 소 무릎처럼 강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하체는 살이 많고 혈액이 전신의 60퍼센트나 저장돼 있어서 한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물에 해당한다. 무릎이 병들어 굳는 것은 물의 찬 기운이 너무 심해진 것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불의 기운을 이용해서 치료를 도모한다. 우슬은 하얀 즙이 있어서 기본적으로는 물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쓴 맛 때문에 불의 기운도 포함된 것으로 간주된다. 태아는 자궁이라는 양수 속에서 기르는 생명의 불꽃으로 물속의 불이라 할 수 있다. 우슬로 불을 이끌어 아래로 향하면 생명의 불씨가 흘러내릴 것으로 보았다.
허준은 친절하다.<동의보감>은 부부 생활에서 삼가야 할 것도 상세히 적고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많이 오고 번개와 벼락이 치는 날, 지진이 있는 날을 피하고 부부 관계를 피하라고 당부한다. 해, 달, 별, 불빛 아래나 사당, 절간, 우물, 부엌, 뒷간, 무덤 옆도 부부 관계를 해서는 안 될 곳이다. 이런 금기를 피하면 복덕이 있는 인물이 태어나 집안이 융성해진다고 한다.
유산은 당연히 자궁에 부담을 준다. 기구를 이용해 자궁 내부 점막을 긁어내는 것은 혈관의 손상을 불러온다. 자궁의 내막은 연약한 피부 점막이다. 내부 점막이 상처가 나면서 상처 후유증의 나쁜 혈액들이 정체되어 병적인 상태가 된다. 이것을 정의해 한방에서는 어혈이라 한다.
낙태를 둘러싼 논란에서 정작 여성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빠져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여성이 더욱더 건강한 삶을 누리를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건강한 여성이 늘어난다면, 굳이 정부에서 낙태를 하느니, 마느니 보채지 않아도 출산율은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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