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신문 중앙일보 칼럼 중 일부다. '자주 짖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의 침묵이 너무도 길다. 인권위도 한나라당의 모 의원처럼 '묵언수행' 중인가?
인권위가 제안한 <이명박 정부 주요 인권과제>는 무얼까?
인권위는 2008년 1월 <차기정부 주요 인권과제>를 제안했다. "현재 우리나라 인권상황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여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고, 국제인권기준에 부합되도록 하도록 하기 위해서 차기정부가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주요 인권과제를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안"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당시 인권위는 8번째 목표로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자유권 분야 인권개선>을 제안했다. 주요 내용은 '사형제폐지법의 조속한 제정을 통한 사형제 폐지, 집회·시회의 장소와 시간, 방법의 규제 조항 정비, 과도한 집회신고 범위 등 집회·시위에 대한 과도한 행정절차 규제 완화' 등이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난 3월 8일, 인권위는 '야간시위 위헌여부에 대한 의견표명' 안건을 논의했다. 차기 정부 주요 인권과제 중 하나로 제안했던 사항임에도 11명 중 4명만이 찬성, 재적의원의 과반을 넘지 못해 부결됐다. "헌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게 좋겠다"는 한태식 비상임위원의 변명이 가관이다.
미네르바 사건 의견표명은 법원의 자율성을 침해했을까?
헌재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하기 위해 '야간시위'에 대한 의견표명을 부결했다고? 지난 3년간 인권위원회가 헌법재판소에 의견을 제출한 건수는 총 7건이다. 2009년의 경우만 하더라도 미네르바 사건, 사형제 폐지, 국방부 불온서적 지정 등 인권위의 의견은 '표현의 자유', '생명권', '정보의 자유' 등 기본권의 근간을 지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간 인권위원회가 헌법재판소에 의견을 표명한 것은 '좌파정부'에서 비롯된 월권이요, 불법이었을까? 아니다. 인권위의 존재이유요, 법에 의한 의견표명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8조에서는 '인권의 보호와 향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나 인권위가 조사 또는 처리한 내용에 관한 재판'의 경우 법원 또는 헌법재판소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 역시 제74조에서 "헌법소원의 심판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기관 또는 공공단체와 법무부장관은 헌법재판소에 그 심판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중요 인권사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제출은 결코 헌재나 법원의 자율성이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 '법에 의한' 인권위의 존재목적 중 하나요, 최고재판소인 헌재의 심리과정을 돕는 것이다.
1년에 한번꼴로 제시된 사형제 폐지의견, 이젠 새로울 게 없다고?
그럼에도 침묵은 이어진다. 최근 김길태 사건 이후 정부여당이 사형집행, 보호감호제 부활, 피의자 얼굴 공개를 함에도 불구하고 인권위원회는 여전히 소리내지 않는다. 이유는 '인권위가 줄곧 반대의견을 표명해왔던 사안이므로, 새롭게 의견 표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권위 홈페이지가 인권위의 존재이유를 새삼 강조해준다. 차기정부 주요 인권과제(사형제 폐지 포함)(08.1.), 사형제도에대한인권위의견(06.1.), 사형제 폐지 의견표명(05.4.), 국가보안법 폐지권고(사형제폐지 포함)(04.8.) 등 거의 1년에 한번꼴로 '사형제 폐지'에 대한 의견을 제출했다.
하지만 유독 이명박 정부 이후 인권위에서는 사형제와 관련해 새롭게 의견을 표명할 이유가 없다.
'사회의 등대' 인권위의 불빛이 약해졌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의 인권침해로 인하여 인권상황에 관하여 국제적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남아 있는 바 이제 질서와 인권이 함께 살아 숨쉬는 사회를 구현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사회, 즉 인권침해와 차별이 없는 선진민주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
지난 2001년 5월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정법률안의 제안이유다. 당시 법률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가까스로 통과됐다. 재석 273, 찬성 137, 반대 133, 기권 3. 팽팽한 표결결과에서 보듯이 인권위원회는 출범 당시부터 험난한 여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10년간 국가인권위원회는 그간 '사회의 등대'였다. 춥고 고통받는 배고픈 사람들, 억눌리고 짓밟혀도 신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인권위가 제시한 의견이나 결정들은 '하나의 지표'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인권위를 '대통령 산하'로 바꾼다는 등 인수위 시절부터의 예상대로, 인권위의 불빛은 차츰 약해졌다. 인권과는 거리가 멀고 평생 권력기관과 각을 세운 적이 없는 인물이 인권위원장에 임명됐다.
신임위원장은 의기에 바람을 빼고, 행안부발(發) 조직축소 지시를 다소곳이 받들고, 정부와의 불편한 의제를 유보하고, 조금 나대는 전문가들을 내쳤다. 더 나아가 작년 7월 30일에는 70개 인권선진국 회의체인 국제조정위원회 의장국 선임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송호근 칼럼). 그리곤 침묵, 침묵, 침묵이다.
'세계의 걱정거리'가 되어버린 인권위
이제 한국의 인권위는 '세계의 모범'이 아니라, '세계의 걱정거리'가 되어버렸다. 2004년 가입 때부터 A등급을 유지했던 한국 인권위는 2010년 예정된 등급 심사에서는 B등급으로 강등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엠네스티도 지난 7월 영국 런던에서 한국의 언론자유가 침해 받는 등 인권 상황이 후퇴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야간시위 의견표명' 부결을 바라보는 인권위 유남영 상임위원의 걱정스런 말이다. "헌재에서도 야간집회와 관련해 이미 결론을 내린 바 있고, 어찌보면 부담이 적은 의견제출 건인데, 이것마저 침묵하면 과연 어떤 사건에 의견을 낼 수 있겠느냐"
요즘 때아닌 '설화'가 문제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옛말이 전혀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침묵은 때론 '독'이 될 수 있다. '좌파 주지' 운운하던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침묵은 물론, 인권을 지키기 위해 '자주 짖어야 할' 인권위의 침묵은 '독'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목소리가 자주 들리기를, 인권위의 등불이 다시 활활 타오르기를, 그리하여 낮고 춥고 어두운 곳에 희망의 소리와 밝은 빛을 비춰주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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