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4 지방선거가 끝이 났다. 선거라는 전장에서 누군가는 생환했고, 누군가는 전사했다. 여기서 낙선자를 굳이 '전사했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다음 선거가 열리기 전까지 '정치인으로서' 그는 일시적 사망 상태 혹은 식물인간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낙선자의 운명
낙선자가 정치인으로 유권자와 만날 수 있는 것은 4년 뒤 있을 14일 동안의 공식 선거 운동 기간에나 가능하다.(☞관련 기사 : 선거운동 기간은 왜 14일 밖에 안될까?)
예비후보자 등록을 했을 경우에는 공직선거법 제60조3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시도의원 및 시장에 출마하고자 하는 후보는 선거기간 개시일 90일 전, 구의원 및 구청장의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후보는 선거기간 개시일 60일 전부터 지역 주민과 예비 정치인으로 대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유권자와 예비 후보자로 만나선 안 된다. 자신의 낙선을 못내 아쉬워하는 지역 주민을 만났을 때도, "다음 선거 때도 꼭 저를 뽑아주십시오. 잘 준비해서 4년 뒤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당부의 말을 해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전선거운동법 위반으로 사법 처리를 받기 때문이다.
그가 지역 활동을 계속하려면 'OOO지역발전연구소' 등의 사무실을 차리거나, 동네 조그만 카페 등을 열어 활동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이것을 차릴 경제적 여유나 다른 사회적 기반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이전 기사에서도 설명한 바 있듯이(☞관련 기사 : 땅 파서 의정활동? 지방의원은 명예직인가) 광역의원, 기초의원, 지방의원들은 후원회를 결성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현직 의원들이 후원회를 결성할 수 없으니 예비 후보자들은 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낙선자가 다음을 도모하기 위해 지역에 작은 연구소나 작은 카페라도 열기 위해서는 그 비용을 전액 자가 부담해야 한다. 행여 '엄마론', 은행 대출 등을 빌어 사무소나 까페 등을 열었다 치자. 이제는 이것을 유지할 비용을 만들기 위해서 예비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이 아닌, 유지비를 만들기 위해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연구소는 연구소 후원회원 모집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하다못해 지방정부의 작은 프로젝트라도 따기 위해 동서분주해야 할 테고, 까페는 지역유권자를 만나는 공간이 아닌, 고객에게 커피 한잔이라도 더 팔아야 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쉽지 않기에 보통은 다음 선거 전까지 활동할 일터를 찾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것과 다음 선거 준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란 보통의 의지를 가지지 않고서는 힘들다. 이런 이유들로 낙선자가 다음 선거까지 지금과 같은 정치적 열정을 유지하고 있기란, 또 절반의 낙선의 가능성을 안고 다시 선거에 출마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6.4 지방선거 당선자 다섯에 한 명(21.6%)은 10억 원 이상 자산가
이런 이유 때문일까. 6월 17일자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6.4 지방선거 당선자 3930명 전체의 재산을 분석한 결과, 당선자 다섯에 한 명(21.6%)은 10억 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3년 일반 국민 기준으로 상위 4%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한다. 새누리당은 당선자 중 총 27.7%가,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에는 15.8%가, 무소속은 16.6%가 10억원 넘는 자산가라고 한다. 반면,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 군소정당은 당선자가 거의 없어 비율 자체가 나오지 않았지만, 출마자의 재산 분포를 살펴보았을 때 일반 국민의 평균 자산 보유액과 거의 흡사했다고 한다. 군소정당 후보들은 정당 지지도가 약해서 떨어진 것일까, 거대 정당의 부유한 후보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했기 때문에 낙선할 것일까.
사실은 위 두 가지 질문이 별개의 질문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만한 사실이다. 무엇이 더 앞선 원인이든지 간에, 위의 결과는 '1인 1표'의 원리로 작동해야 할 민주주의 시스템이 점점 더 '1원 1표'라는 경제적 원리로 작동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6.4 지방선거 2030 당선자 비율 전체의 3.2%
그래서일까. 지난 6.4 지방선거 총 3930명의 당선자 중 2030 연령층에 속한 이는 127명으로 전체의 3.2%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40대 이상에 비해 사회적 자산 또한 적을 수밖엔 없기에 단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젊은 정치 신인의 도전이 상대적으로 용의하고 또 장려되어야 할 지방선거에서마저 2030 당선자 비율이 3.2%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는 점은 주목해서 볼 부분이다. 2010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2030 연령층은 전체 인구 중 30%를 차지했다. 인구 비중이 바로 당선자 비중으로 연결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도, 3.2%라는 수치는 2030 세대가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정치·경제·사회적 비중에 비해 매우 낮은 비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4월부터 근 석 달 동안 정치발전소와 노동당, 녹색당, 새정치민주연합, 정의당의 청년 활동가들, 서울 지역 정치외교학과 연합 동아리 여정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은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만나 현 정치관계법의 문제와 대안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토론의 결과물들을 <프레시안> 독자들과 함께 나누었다.
정치관계법을 공부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정치를 축소하고, 유권자와 정치인들 간의 거리를 점점 멀게 하도록 설계돼 있는 현 정치관계법들이 근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승만 정권 때 만들어진 1958년 법에서부터 등장한 '제한적인 선거운동'이라는 원리가 제2∼5공화국을 거쳐 민주화된 이후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이에 더해 1958년 법은 천황 중심의 일본의 보수적 관료세력이 선거운동에 각종 규제장치를 도입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1934년 일본 「중의원 선거법」 제 95조2항을 근간을 두고 만들어졌다고 한다.
2014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1934년 일본 군국주의 시절에 만들어졌던 정치관계법의 틀 속에서 선거를 치르고 있다니. 근 백년 묵은 이무기가 우리 사회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우리의 목을 죄고 있는 것 마냥 속이 참 답답해져왔다. (☞관련 기사 : 미혼 후보자는 선거운동 절반만 하라?)
밭 가는 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여느 사회운동이 다 그렇듯이 정치관계법 개정 운동 역시 당사자 운동이 되어야 가장 크게 힘을 발휘 할 텐데,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낙선한 이들은 낙선 뒤 상실감 혹은 생계와 향후를 도모하기에도 벅차 제도 개선운동에 나설 여유가 없고, 당선자들은 상대적으로 현직에게 유리하게 짜여진 현 정치관계법을 개선할 필요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당 차원에서 적극 추진해야 할 터인데, 위와 마찬가지 이유로 군소정당은 자기 정당 추스르기에도 여력이 없는 현실이어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거대 양당은 현 정치관계법의 수혜자이기에 이를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학계와 언론, 시민사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6.4 지방선거 결과가 나오자 이것이 누구에게 더 유리하게 나왔나를 살피고는 이내 곧 있을 7월 재보궐 선거로 눈길을 돌려버렸다. 그 눈길은 곧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으로 또 옮겨갈 테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돌밭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군가는 부지런히 돌과 가시를 제거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 일을 누가 할 거냐고 묻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내가 혹은 우리가 할께'라고 대답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이 돌밭을 옥토로 만드는 일이 단번에 될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우선은 우리 밭이 돌밭, 가시밭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이 돌, 가시가 어디서부터 기인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손과 발이 부르트는 것을 각오하고, 이것을 제거할 결심이 서야 한다. 그것은 생각보다 긴 여정일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 활동이 '우리 정치밭이 돌밭, 가시밭이에요. 아무리 좋은 씨앗도 들어가면 탱자가 되어서 나오게 되요!'라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조금이라도 담당했다면 무척 감사한 노릇이다. 그간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과 '이상한 나라 기자단'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