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으면 6.4 지방선거가 열립니다. 길거리엔 후보들의 현수막이 나부끼고, 출퇴근길 후보들이 나눠준 명함이 길가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습니다. 거리 외관이 어지럽혀진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하지만 4년 동안 우리 지역을 위해 일할 후보에 대해 알 방법이 현수막과 명함 외에는 없어 불평하기가 어렵습니다. 4년 임기의 공직자를 선출하는데 공식 선거 운동 기간은 13일 뿐이기 때문입니다.이뿐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든 선거 운동 기간 전엔 여러 사람이 모인 집회에서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당부할 수도 없습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정당이 자신의 정책을 가지고 시민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정치발전소와 정치외교학부 연합동아리 '여정'으로 구성된 <이상한 나라의 선거 기자단>은 직접 선거 현장을 찾아다니기로 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지난 기사 보기1편 : 선관위는 정말 정치적 중립일까?
제한된 선거운동원, 제한된 선거 운동 방법
"억울하면 결혼하라는 걸까요?"
목소영(34) 새정치민주연합 성북구의원 후보는 미혼인 후보자의 경우 선거운동을 절반 밖에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공직선거법은 예비후보자 기간 동안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후보자 본인과 선거사무장, 후보가 지정한 1인으로 제한하고 있다. 다만 후보자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은 후보자처럼 명함을 돌리고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공직선거법 60조의3)
자녀나 배우자가 없는 경우 선거운동을 적게는 1/4, 많게는 1/2 정도 밖에 할 수 없는 셈이다. 목 후보는 "결혼하지 않은 청년 정치인은 선거운동 할 때 불리하죠. 저희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일을 하셔서 선거운동을 도와줄 직계존비속이 없어요. 예비후보자 기간에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목 후보는 제한된 선거운동 방법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구의원 후보는 차량 부착용 확성기를 사용할 수 없어요. 구의원을 제외하고 모든 후보는 되는데, 구의원 후보는 못하게 합니다. 이건 구의원을 좀 무시하는 것 아닐까요?"
대다수의 구의원 후보들에게는 차량용 확성기 사용 등 선거운동의 방법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기초지방자치의원 선거에서 정책보다는 '조직 동원'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구의원 후보들이 연설 유세를 거의 안했다고 하더라고요. 2010년 선거 때 저희 지역에서는 제가 처음으로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고 주민들이 말씀하셨어요. 이전까지는 아는 사람을 통해 하는 조직선거 중심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무리 작은 단위의 구의원 선거라도 주민들이 후보의 정책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휴대용 확성장치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제대로 정책을 홍보할 기회를 뺏는 겁니다. 법이 사실상 정책 선거보다 조직 선거를 하라고 조장하는 것이죠."
목 후보는 차량 부착용 확성기로 주민들에게 정책에 대해 이야기 하고, 로고송도 틀고 싶다고 했다. 공직선거법 79조, 216조는 기초지방자치의원 후보가 이러한 것을 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실제로는 과도하게 제한하는 선거법이 유명무실한 경우도 있다. 정작 선거법으로 잡아내야 할 것들을 못 잡는 경우도 허다하다.
"선거법을 위반해도 돈과 관련된 것이 아니면 경고 정도만 받아요. 그런데 선관위는 돈 선거는 제대로 못 막고 선거운동 자체를 위축시키는 소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죠. 동네를 다니다보면 후보들이 유권자들과 술 먹고 밥 먹고 하는 것이 다 보이는데 정작 선관위만 몰라요. 대신에 경고 수준에 그칠 '예비후보자 기간 때 누구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면 안 되네, 후보자가 지정한 1인이 너무 멀리서 명함을 나눠 줬네'하며 후보자를 움츠려들게 합니다."
일본 군국주의와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내려온 선거법
이렇듯 선거운동을 옥죄는 공직선거법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서복경 서강대 교수(정치학)는 선거운동을 제한하는 공직선거법의 기원을 1958년 제정된 「민의원 의원선거법」에서 찾는다. 이승만 정권 때 만들어진 1958년 법에서부터 등장한 '제한적인 선거운동'이라는 원리가 제2∼5공화국을 거쳐 민주화된 이후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뿌리를 거슬러 가보면, 1958년의 법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맞닿아있다. 송석윤 서울대 교수(법학)에 따르면 1958년 민의원 선거법은 1934년에 제정된 일본 「중의원 선거법」 제 95조2항을 받아들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의 천황제를 뒷받침하는 보수적인 관료세력은 정치적 자유가 확대되면 질서에 혼란이 올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졌다. 따라서 기존의 선거법에는 존재하지 않던 선거운동에 대한 각종 규제 장치를 도입한 것이다.
송 교수에 따르면, 1956년 대선에서 조봉암이 선전하면서 위기를 느낀 보수세력들이 반(反)진보당 연합의 결과로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인 1934년 법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서복경 교수는 "1930년대 일본 군국주의의 흔적이 한국에서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라며 일본은 패전 후인 1945년에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법정 선거운동원 제도를 폐지하고 제3자의 선거 운동을 허용했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그 잔재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제한적인 선거운동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1994년 판결에서 전 국민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신고된 극소수의 선거 관계인들만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참정권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재 1994.7.29. 93헌가4등)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이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자'에 대한 포괄적인 제한이 1994년 공직선거법 제정을 통해 개별적인 제한으로 전환됐다. 공직선거법 58조2항('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금지 또는 제한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이 이를 반영한다.
공직선거법은 원칙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든 자유로운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뒤에 단서를 달아서 여러 가지 예외 조항을 만들어놓았다. 결국 자유로운 선거운동은 명목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1930년대 일본 군국주의와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을 거쳐서 만들어진 '제한적인 선거운동'이라는 원칙이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상상력을 제한하는 보수적인 선관위
지난 20일,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이틀 앞두고 이태영(28) 녹색당 서대문구의원 후보 사무소는 선거운동원들로 북적였다. 예비후보자 기간 동안에는 선거운동원들이 밖으로 나가 유세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범일(25) 씨는 "2주 전에 선거를 도와주러 왔지만 밖에서 선거운동을 해본 적은 없다"며 "주로 사무실 안에서 돕는 일을 한다. 선거운동 기간이 아니라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이틀 후부터 어떤 식으로 선거운동을 할지에 대한 회의를 몇 번 가지는 정도"라고 했다.
송하나(25) 씨도 2주 전에 선거 캠프에 합류했다. 선거운동을 많이 했느냐는 물음에 "오늘 처음 나가서 해보았다. 예비후보자 기간에는 후보가 아니면 어깨띠나 소품을 쓰지 못하니 일부러 연두색옷(녹색당 색깔)을 맞춰 입고 나왔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은 예비후보자의 경우 후보자만 어깨띠 등을 착용할 수 있으며 선거운동 기간에는 후보자를 포함해 등록된 유급 선거사무원만 어깨띠와 소품을 사용하도록 정해놓았다.
조준희(27) 선거사무장은 앙케이트로 시민의 참여를 이끄는 선거운동을 계획했다.
"구의원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번 선거에서 몇 표나 행사할 수 있는지 시민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서대문구 선관위에 문의하자 '스티커 붙이는 게 여론조사의 성격을 띤다'고 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게 지역별로 유권 해석을 하기 때문에 규제가 지역마다 달라요. 교육감 후보는 스티커 붙이기를 하고 있더군요."
조 사무장은 법이 복잡하고 애매하기 때문에 선거운동에 대해 선관위에 일일이 문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선관위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입니다. 새로운 선거운동 방식이거나 자신들이 잘 모르는 경우 무조건 '안 된다'하고 보는 거죠"라고 했다. 선관위의 규제가 새롭고 참신한 선거운동을 막고 있고, 선거 캠프는 획일적인 선거운동만 해야 했다는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에도 등록된 선거사무원(서대문구의원 후보의 경우 8명)만 제대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선거사무원을 선임하거나 교체한 경우 지역 선관위에 문서를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 조 사무장은 "서대문구 선관위는 북가좌동에 있는데 서류 제출을 하려면 번거로울 때가 많습니다. 후보 사무실에서 버스를 타면 길이 막히지 않았을 때 30분이 걸려요. 저희 캠프는 자동차가 없는데 곧장 가는 버스가 없기 때문이죠"라고 했다. 이태영(28) 후보는 "유급 선거 사무원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는 것은 '돈 선거'를 막기 위함이라 해도, 자원봉사자의 선거운동 방법이 제한되어 있는 것은 아쉽다"고 했다.
자유와 합의를 원칙으로 하는 독일의 선거 운동
이름은 같은 녹색당이지만 독일 녹색당(Bündnis 90/Die Grünen)의 선거운동은 한국과 달랐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유재현 씨는 한국 녹색당과 독일 녹색당의 당원이다. 유 씨는 지난 16일에 독일 녹색당의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유럽의회 선거가 5월25일에 치러지기 때문이다.
유 씨는 "독일에서는 선거 운동원 등록 절차가 없다"며 "시간이 되는대로 선거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거운동이 가능한 숫자에 대해 유 씨는 "선거운동 할 때 인원은 정말 다양하다. 베를린에서 녹색당 선거 운동을 할 때 적게는 한두 명, 많을 때는 수천 명이 되기도 한다. 집회 신고만 하면 숫자는 상관없다"고 했다. 선거운동 방법에 대해서도 "선거운동은 길거리에 부스를 하나 만들고 선거 홍보 자료와 정당 신문 등을 나누어 주는 방식을 선호한다. 작은 부스를 만드는 것에 경찰이 따로 제재를 하지 않아 일반적으로 신고 없이 선거 운동을 한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공보물의 직접 배포를 금지해놓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독일에는 선거법도, 선관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에서 선거운동의 자유는 기본권의 일부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법이 보장하는 언론, 출판의 자유에 선거운동이 포함돼 선거 벽보, 현수막 등은 도로법에 따라 일반 광고와 동일하게 규제받는다. 선거운동은 일반적인 집회법의 적용을 받아 48시간 전에 신고만 하면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 정부나 법이 선거에 관련된 내용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 간의 협의를 통해 각 주별로 편의에 맞게 제한을 둔다.
독일의 선거운동에 대한 전체적인 방향은 한국과는 달리 규제보다는 국민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보호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규제하지 않아도 질서 있는 선거운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선거의 공정성 논란도 우리처럼 많이 제기되지 않는다. 또 후보자보다 정당 중심의 선거운동을 진행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러한 운동 방식은 독일의 정당명부 식 비례대표제와 그로 인한 합의제 정치 시스템에서 비롯됐다. 독일의 정치문화는 선거운동에서도 법적 규제보다는 정당 간의 합의에 따른 규제를 선호한다. 한국 또한 선거운동에 있어서 규제보다 자유를 원칙으로 하도록 변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치 제도와 선거법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문헌>서복경(2012). 공직선거법과 민주주의. 제5회 대안담론포럼.송석윤(2005). 선거운동 규제입법의 연원.『서울대학교 法學』제46권 제4호.김문배 외 6인(2010년). 독일의 선거운동의 자유와 규제에 관한 연구.『選擧硏究』창간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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