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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실종자 가족 "미치겠다. 그냥 미칠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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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실종자 가족 "미치겠다. 그냥 미칠 노릇"

[소조기, 3일 간의 기록 ②] "학생이 174명을 구했다…정부는 대체…"

'세월호 침몰' 일주일 만에 유속이 느려진다는 '소조기'가 찾아왔다. 정부 당국은 가용한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수색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실종자 가족들 또한 175번째 생존자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살아만 있어 다오"라는 희망은 "내 새끼 살려 내"라는 원망으로 바뀌었다. 다음은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3일 간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적은 것이다.

진도 실내체육관에 있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23일 동이 트기 전부터 가슴을 수차례 쓸어내렸다.

희생자 신원 정보가 게시될 때마다 곳곳에서 울음과 탄식이 섞여 나왔고, 가족들은 신원확인소로 달려갔다. 일부는 119구급차를 타고 팽목항으로 갔고, 일부는 자리로 돌아와 실신하듯 몸져누웠다. 때론 팽목항 가족지원상황실에서 거꾸로 연락이 왔다.

"밤새 지켜봤는데, 없었어. 분명 없었다고. 근데 연락이 왔어. 인상착의가 우리 애랑 비슷하대. 팽목항으로 가야 해. 빨리 가야 한다고."

어머니는 제대로 걷질 못했다. 자꾸 주저앉았다. "잠깐 진정하고 가세요"라며 주변에서 말렸지만,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는 그렇게 8일 만에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소조기 둘째 날, 세월호 4층 선미에서 다수의 시신이 한꺼번에 수습됐다. 대부분 단원고 학생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부 당국의 희생자 신상확인 정보는 무성의했다. "살려오지 못할 거면, 시신 정보라도 제대로 알려줘야 할 것 아니냐"라는 아우성이 빗발쳤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부랴부랴 팽목항에 임시 시신 안치소를 설치하고 검안사 11명을 추가 배치하는 등 시신 인상착의 확인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 23일 소조기 둘째 날 오전, 진도 실내체육관 모습. ⓒ프레시안(이명선)

오후 1시, 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는 버스에는 실종자 가족과 자원봉사자 등 열댓 명이 자리했다. 버스에 달린 TV는 풍랑과 유속 모두 수색작업을 하기에 최적이라며, 정부 당국이 모든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해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20여 분 뒤 도착한 팽목항은 고요했다. 오전 11시부터 수색작업이 중단된 탓이었다. 사고 현장과 정부 발표·언론 보도는 진도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만큼 실재했다.

체육관에 있던 실종자 가족 김 모 씨(29세)도 외삼촌과 버스를 타고 팽목항으로 이동했다. 149번째로 수습된 희생자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김 씨의 외사촌 동생인 단원고 2학년 6반 김동영 군의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나 동영이네나 안산에서 살고 있지만, 진도가 고향입니다. 4월마다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기네요. 재작년 이맘때, 작은 외삼촌을 진도 앞바다에서 잃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사촌 동생이 같은 바닷속에 있습니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사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마음의 정리를 좀 한 것 같지만,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숙모는 영양주사도 거부한 채 죽 몇 숟가락만 겨우 뜬 상태입니다.

조금 전 시신 확인 결과 동영이는 아니었지만, 안도할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행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고, 미치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그냥 미칠 노릇입니다."

오후 4시 39분 수색작업은 재개됐지만, 세월호 침몰 초기부터 불거졌던 민간잠수사 투입 문제가 표면화됐다.

해경 측은 UDT·SSU 등 베테랑 특수대원의 집중 투입을 이유로 민간잠수부를 수색작업에서 배제했다. 잠수 능력마저 의심받은 민간잠수부들은 수색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장에 더 있을 필요가 있느냐며 일부 철수했다.(☞ 관련기사 : 민간잠수사 "다이빙 못 해 안달난 사람들 아니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의 총력 수색은 말뿐, 추가 생존자는 없었다. 시신이라도 찾겠다는 실종자 가족들의 염원과 달리, 추가로 2~3구만 발견됐을 뿐 소조기는 속절없이 흘러갔다. 아버지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손목에 감은 노란 리본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 세월호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전국민의 염원이 팽목항에도 전달됐다. ⓒ프레시안(이명선)

이날 하루에만 단원고 학생 25명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안산 올림픽기념관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임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관련기사 : 통곡하는 안산…합동분향소엔 온통 '미안하다')

특히 세월호 침몰 사고 최초 신고자인 단원고 최 모 군이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최 군은 지난 16일 오전 8시 52분 전남소방본부에 '배가 침몰한다'고 신고했으며, 이는 세월호가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침몰 소식을 처음 신고한 시각보다 3분이나 빠른 것이다.

검찰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상대로 자택과 기업체, 관련 종교단체 등 2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청해진해운은 지주회사 격인 '아이원아이홀딩스'가 지배하는 여러 계열사 가운데 하나로, 이들은 기독교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라는 종교 단체로 엮여 있다. 실제로 세월호 선장을 포함한 선원 다수가 구원파 신도로 알려졌다.(☞ 관련기사 : '세월호' 선사 실소유주, 어떻게 재산 모았나)

한편, 청와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는 것. 그러나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에 따르면,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은 김장수 실장으로부터 즉각적인 보고를 받았다". 사고 규모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안보실이 사실상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것이다.

정부의 부실 대응 논란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야당에서 처음으로 '내각 총사퇴' 주장이 제기됐으며, 여당에서도 개각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관련기사 : 세월호 참사, "내각 총사퇴" 요구 수면 위로)

[소조기, 3일 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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