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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실종자 가족 "익사 있겠지만, 질식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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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실종자 가족 "익사 있겠지만, 질식사도…"

[소조기, 3일 간의 기록 ①] DNA 확인 후에도 '가족관계증명서' 내놓으라는 정부

'세월호 침몰' 일주일 만에 유속이 느려진다는 '소조기'가 찾아왔다. 정부 당국은 가용한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 수색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실종자 가족들 또한 175번째 생존자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살아만 있어 다오"라는 희망은 "내 새끼 살려 내"라는 원망으로 바뀌었다. 다음은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3일 간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적은 것이다.

21일 밤 9시 진도 실내체육관 행 버스가 안산 올림픽기념관을 출발했다. 밤은 캄캄했으며, 승객들의 얼굴은 어두웠다.

"회사에 휴가 냈어. 오늘은 근무한 것으로 치고, 내일부터 3일. 새벽에 도착하니까 기다리지 말고 자. 잠 안 와도 자. 누워 있어."

버스는 22일 새벽 1시 30분께 진도에 도착했다. 체육관 입구 게시판에는 '신원 미확인자' 명단이 붙어 있었다. '성별, 여성. 키, 152센티미터.' 누군가의 가족이었을 희생자는 '84번째 시신'으로 명시돼 있었다.

체육관 바닥에는 실종자 가족들이 얇은 스티로폼과 모포에 의지한 채 자리해 있었고, 앞쪽에는 '세월호 침몰' 관련 24시간 뉴스와 수색작업이 진행 중인 사고 현장이 영상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고요하던 체육관에 순간, '아' 하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뉴스가 방송되던 스크린에 85번째 희생자의 인상착의가 공지된 것. 실종자 가족 몇몇이 체육관 3번 게이트 밖에 설치된 '신원확인소'로 이동했다. 가족들의 목에는 실종된 아이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 22일 오전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 ⓒ프레시안(손문상)

오전 9시 30분 팽목항.

소조기 첫날, 첫 정조 시간이었던 8시 10분께 시신 5구가 추가로 수습되면서 희생자는 104명으로 늘었다. 실종자 가족들이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가족대책본부 천막으로 모여들었다. 바로 불만이 쏟아졌다.

"우리 아이도 왼쪽 귓불에 점이 있는데, 좀 더 자세하게 알려주세요."
"검은색 운동복입니까, 감색 운동복입니까. 그렇게 써 놓으면 어떡해요!"

오전 10시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희생자들이 주로 발견된 장소는 편의시설이 집중된 3층의 라운지와 학생들이 머물던 4층 선미 객실"이라며 "금일도 표류 사망자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한 해상수색과 함께 3층과 4층 객실들을 중심으로 수색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시각, "어제 저녁 11시 30분부터 오늘 아침 5시 50분까지 배 안에 3층, 4층 수색을 중단했다"며 "언론에서 말하는 밤샘 작업은 거짓"이라는 종이가 가족대책본부 게시판에 나붙었다.

5분 뒤,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이 수행원들과 함께 팽목항 가족지원상황실을 나왔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 장관의 방문을 본체만체했다. 언론만 따라 붙었다.

오후 12시 10분께 전날까지 단원고 학부모 대표를 맡던 김병권(故 김빛나라 부) 씨를 대신해 유경근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20일부터 시신이 상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들렸지만, 어젯밤 딸 시신을 인계받은 김병권 씨가 '빛나라는 피부색도 안 변했다. 손만 불어 있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배 속에서) 오랜 시간 살아 있었다는 얘기인데요. 왜 죽었는지 정확한 사인을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익사도 있겠지만, 질식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제 해수부 장관과 면담에서도 부검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가슴 아프지만, (부검은)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결정을 못 내렸는데요. 머리로는 (부검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으로는 아닙니다. 그래도 다들 한 번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오후 1시 30분께 '사망자 가족 중에서 사망원인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부검을 원하는 가족은 관할 담당 검사관에게 부검신청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시신부검 관련 안내문이 게시됐다.

오후 내내 가족들은 세월호 실종자의 생존 소식이 전해지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들리는 소식 하나하나는 가족들의 가슴을 할퀴기만 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전날 시신 인계 절차를 간소화해 '선(先) 인계 후(後) DNA 확인'이라는 '조건부 시신 인도'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병원으로 이송된 시신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방치되는가 하면, 신원이 밝혀진 시신이 다시 '미상'으로 처리되는 일도 발생했다.(☞ 관련기사 : 단원고 A군, 시신 인계 하루만에 '신원 미상'으로)

또 시신과 가족의 DNA 확인 작업이 끝났어도 '가족관계증명서'가 없으면 시신을 인계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면서 대책본부의 탁상 행정이 다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오후 5시가 돼서야 팽목항 진도군청 지원 사무실에 '가족관계증명서 발급 가능'이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시각, 세월호 사망자는 110명을 훌쩍 넘었다. 이중 신원미상인 시신은 17구에 달했으며, 탑승자 명단에 없는 중국인 시신이 발견되면서 476명이라던 탑승자 수에도 의혹이 제기됐다.

▲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2주째, 실종자 가족들은 여전히 기적 같은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탑승객을 버리고 '나 홀로' 탈출한 세월호 선장 이준석 씨에게 형법상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유죄로 인정될 경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선고될 수도 있다. 이 씨를 비롯한 승무원 10여 명은 지난 16일 사고 발생 한 시간 뒤 해경123정을 타고 제일 먼저 탈출했다.

한편, 외신은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선장의 행위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부적절했다고 비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박 대통령이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위해 선장과 승무원들을 공개석상에서 규탄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고 전했으며, 영국 <가디언>은 "서방에서는 이러한 국가적 비극에 뒤늦은 대처를 할 경우 지지율은 물론이고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지도자가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관련기사 : 가디언 "박근혜, 서방이라면 자리 보전도 확신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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