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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 '아베겟돈'으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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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본 경제, '아베겟돈'으로 가나

[주간 프레시안 뷰] "부채 줄이기는 뻥, 스태그플레이션 예고"

일본인들 하면, 어떤 악재가 발생해도 차분하게 행동한다고 알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게 옛날이야기인 모양입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정작 우리는 방사능에 대해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데, 일본 사람들은 방사능에 대해 걱정하는 얘기를 별로 하지 않아서 "참 대단하다"라고 감탄하기도 한다죠.

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정말 걱정스러운 상황에 대해 함부로 표현을 하지 않는 문화 때문이지, 속으로는 굉장히 불안해한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뭐라도 떨어지면, 일제히 말없이 우산을 편답니다. 방사능 낙진에 대한 공포가 뿌리 깊은 것이죠.

최근 일본에서 사재기 열풍도 조용하게 벌어졌습니다. 가전제품에서 고기 같은 식재료, 심지어 전철 정기권을 비롯한 한 달짜리 이용권 같은 것까지 미리 사두려는 사람들이 대거 시장에 나섰다고 합니다. 일부 품목들은 싹쓸이가 됐다죠. 무슨 전쟁 같은 천재지변이 났나 했더니,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이렇게 사재기에 나선 것은 소비세 인상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물품이나 서비스를 거래할 때 부가가치세라는 간접세 10%가 붙지 않습니까. 일본에서는 이것을 소비세라고 부릅니다. 이 소비세율이 4월 1일 자로 5%에서 8%로 인상됐습니다. 소비자 가격이 3%포인트 일제히 인상된다고 일본 사람들이 시행일을 앞두고 이렇게 사재기에 나설 정도의 심리상태라는 게 놀랍습니다.

소비세를 인상했다는 것은 정부가 간접세를 통해서라도 세수를 더 많이 확보하겠다는 정책을 쓴 것이죠.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세수 확보입니다. 세금 인상은 누구나 싫어하죠. 그래서 조세 저항을 의식한 일본 정부는 소비세 인상으로 늘어나는 세수는 사회보장 비용으로 쓰겠다고 미리 약속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은 고령사회여서 사회보장 비용이 한 해 예산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들어갑니다. 이 비용이라도 소비세를 인상해서 보전하고, 재정 적자라든가 국가 부채에 대한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죠.

일본 정부는 국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가 넘은 지 오래일 정도로 천문학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조세 저항을 무릅쓰고 세수를 올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할 정도로 장기 침체에 빠져 있습니다. 디플레이션 기조가 자리 잡아 소비심리도 바닥입니다.

그런데 소비세 인상은 소비 위축을 부를 것이 뻔합니다. 소비심리를 부추기는 정책을 써도 시원치 않을 텐데 일본 정부는 왜 소비세 인상을 강행했을까요?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가 총리가 된 2012년 말 이후, 일본 경제를 되살리겠다면서 이른바 '아베노믹스'라는 경기부양 정책을 써왔는데 말입니다. 소비세 인상도 '아베노믹스'에 포함되는 것일까요?

경제사를 보면, 어떤 경제정책이 시기를 잘못 택하면 부작용만 초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생겨서 부작용이 컸다면 이해해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작용이 뻔한 상황에서도 정권이 어떤 경제정책을 밀어붙일 때는 다른 속사정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조장, 나쁜 방법으로?

국제경제학계에서 신뢰받는 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가 '아베겟돈'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베겟돈'이라는 것은 아베노믹스가 '아마겟돈'이라는 파국을 초래할 것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신조어죠.

이들이 아베에게 저주를 퍼붓는 원한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베노믹스'가 이미 예상할 수 있는 부작용을 무릅쓰고 추진되고 있는 정책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죠.

'아베노믹스'가 실제로 노리는 것이 어떤 효과는 무엇일까요? 우선 왜 '아베노믹스'가 '아베겟돈'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아베겟돈'은 지난해 6월 UBS자산운용의 글로벌 수석투자책임자(CIO) 알렉스 프리드먼이 만든 신조어입니다. 프리드먼이 말한 '아베겟돈'의 결과는 간단히 말해서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성장 없는 물가 상승'이 고착화되는 것입니다. 아베노믹스가 디플레이션 극복에 초점을 맞춘 정책인데,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되기는 해도 성장은 없는 양상으로 바뀔 뿐이라니 암울한 전망입니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국가 부채 줄이기는 뻥, 스태그플레이션 예고" 경고

프리드먼은 소비세 인상 전부터 아베노믹스가 디플레이션을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바꾸는 것일 뿐이라고 경고했는데, 소비세 인상까지 겹친 지금은 더욱 부정적인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소비세 인상으로 한계에 다다른 국가 부채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라도 있어야 할 텐데, 스태그플레이션이 되면 결코 국가 부채가 줄어들 수 없다는 것이죠.

소비세 인상은 분명히 소비 위축을 초래하는 정책입니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으로 시작된 아베노믹스는 성장을 위한 개혁이라는 세 번째 정책까지 내걸었지만, 1년도 안 돼 시들해지고 있습니다. 경기 재팽창을 의도한 아베노믹스의 약발이 벌써 떨어지고 있다고 하는 상황에서 소비세 인상은 손발이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

사실 아베노믹스에 처음부터 회의적인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일본의 해묵은 '경제병'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혹독한 개혁밖에 없다는 지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은 책임 회피로 일관해서 계속 시기를 미뤄왔습니다. 써야만 할 정책을 계속 미루면 개혁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갈수록 정치적으로 결단하고 시행하기 어려워집니다.

소비세 인상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일본 정치권은 개혁을 위한 진정성 있는 모색을 하기보다는 소비세 인상에 따르는 조세 저항을 피하기 위한 방법만 논의를 해왔습니다. 이미 아베 총리는 소비세율 인상을 강행하면서 '제2의 하시모토'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1997년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인상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하시모토는 소비세 인상에 따른 유권자의 반발로 결국 이듬해 총리에서 물러났을 뿐 아니라, 일본 경제가 모처럼 맞은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하시모토를 '일본의 허버트 후버'라고 조롱했습니다. 허버트 후버는 대공황 직전 증시 과열 국면에서는 금리 인하, 그리고 증시 폭락기에 금리 인상이라는 정반대의 긴축정책을 써서 미국의 경제를 더욱 침체에 빠트린 대통령입니다. 후버는 미국인들이 대공황에 시달린 기억 때문에 지금도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는 비극의 인물이 되었죠.

그런데 후버 정부가 이렇게 '거꾸로 정책'을 쓴 속사정이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국제통화이론의 석학으로 꼽히는 배리 아이켄그린 UC버클리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국제통화체제였던 금본위제에서 프랑스와 독일의 금 사재기로 통화 패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영국과 함께 공조정책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정책은 미국 국민에게 대공황 국면에서 당시의 정권이 더 참담한 실패를 초래한 엇박자 정책으로 기억됐습니다.

이렇게 정권이 어떤 정책을 택했다면 그 진짜 이유는 겉으로 표방하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진짜 의도한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부작용만 초래하는 경우입니다.

아베노믹스가 노리는 본질적인 효과는 인플레이션 유도입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는 방법이 나쁜 것이라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즉, 투자와 내수를 활성화하면서 물가 상승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통화량만 늘어나고 물가만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라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통화 팽창으로 엔저를 유도한 정책이 일본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비중이 절반이 넘어가는 일본 제조업체들에게 환율 효과는 예전과 다릅니다. 실제로 수출 전선에서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은 지난해 25%나 가치가 하락한 엔저 공세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의 무역흑자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일본은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아베의 엔저 정책을 수출 증대가 아니라 수출기업에 '환차익 안겨주기'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아베노믹스 효과인지 몰라도 일본의 물가는 오를 모양입니다. 4월부터 소비세 인상을 시작으로 의료비, 국민연금보험료, 요양보험료 등 각종 준조세가 줄줄이 인상될 예정입니다. 반면 재정 적자로 각종 복지 혜택이 감소하는 등 올해부터 가계 부담이 대폭 늘어날 전망입니다. 물가 상승에 가계 부담은 늘어나면 내수는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투자도 늘어나기 어렵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내수가 위축되면 인플레이션 목표치로 잡은 2%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 탈출 실패거나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베노믹스'의 결과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입니다.

<마이니치> 신문이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에서 "1년 전에 비해 경기가 좋아졌는가"라는 질문에 71%가 "실감하지 못한다"고 답을 했습니다. 앞으로 일본 국민들이 "아베노믹스 덕에 경기가 좋아진 것을 실감한다"는 응답이 과반수가 될 날이 올까요?

일본 증시에서 외국인의 자금이 3월 들어 한 주에만 거의 1조 엔 가까이 빠져나가 1987년 '검은 월요일' 이후 최대 규모의 자금이 이탈한 반면 한국의 증시는 외국인 매수세가 6거래일 연속 이어지면서 4월 2일 코스피가 2000선을 장중 돌파,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입니다. 일본 증시와 한국 증시의 대조적인 모습이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년 10월 일본의 소비세율은 10%로 다시 올라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정부가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에 따라 올해 내에 실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하는데, 소비세율을 다시 올릴 수 있을 정도로 경제가 회복될지 주목됩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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