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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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 9일에 있을 일본의 도쿄도지사 선거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탈원전'을 표방한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가 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베 신조 현 총리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리는 자민당 소속 고이즈미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을 약속받고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76세의 노인입니다. 그는 일본 정치의 풍운아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1992년 자민당의 부패와 파벌주의를 비판하며 탈당해 '일본신당'이라는 정당을 창당했습니다. 그리고 1993년 중의원 선거에서 일본신당이 55석을 차지하고, 자민당은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면서 1955년 이후 최초의 비(非) 자민당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른바 '55년 체제'로 불리는 자민당의 일당 지배를 처음으로 붕괴시킨 주역입니다.
그러나 호소카와 전 총리는 정치 자금 관련 스캔들로 9개월 만에 총리직을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1998년에는 정계를 은퇴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번에 '탈원전'을 기치로 일본정치의 전면에 복귀한 것입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원자력이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신화는 붕괴했다. 우리는 핵폐기물을 저장할 장소도 없다. 그런데도 원전을 재가동한다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범죄"라고 말합니다. 반핵운동가의 발언을 연상하게 하는 발언입니다.
물론 도쿄도지사가 원전을 멈출 법적 권한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로 치면 서울시장 같은 정치적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베 정권은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호소카와 전 총리와 그를 지지하는 고이즈미 전 총리는 탈원전에 선거의 승부를 걸었습니다. 호소카와 전 총리는 2020년까지 도쿄 전체의 에너지 공급량 가운데 2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이번 선거가 원전 찬성 세력과 원전 반대 세력의 싸움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탈원전만 아니라면, 호소카와 전 총리와 고이즈미 전 총리가 손을 잡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과거사 문제에 대해 두 전직 총리의 입장을 달랐습니다. 호소카와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어느 정도 성찰하는 태도를 갖고 있지만, 고이즈미는 총리 재임 시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전직 총리가 탈원전으로 손을 잡은 것입니다.
호소카와 전 총리가 출마를 선언하면서, 일본의 탈핵 운동에서도 혼란이 있었습니다. 본래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을 지냈던 우쓰노미야 겐지 변호사가 탈원전을 표방하며 출마를 선언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탈핵운동그룹이 호소카와 전 총리와 우쓰노미야 변호사의 단일화를 시도했던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원전에 찬성하는 아베 정권 쪽의 후보는 마스조에 요이치(65) 전 후생노동상입니다. 마스조에는 친기업 입장에 서 있고, "즉시 탈핵 주장은 무책임한 것"이라며 호소카와 전 총리와 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마스조에는 자민당에 비전이 없다며 탈당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만, 집권여당인 자민당은 마스조에 지지에 총력을 기울일 태세입니다. 만약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진다면 아베 정권은 치명상을 입고, 원전 재가동 역시 어려워질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국내 관련 기사를 아래에 붙입니다.
(☞ '성장' 마스조에 vs. '탈원전' 호소카와...아베에 닥친 전환점)
한편 <블룸버그>는 도쿄도지사 선거가 일본의 경제, 정치에 미칠 영향에 대해 다뤘습니다. 벌써 겁을 주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린치'는 호소카와 전 총리가 당선되어 원전 재가동이 어려워질 경우에 일본 경제의 경제성장률이 0.5~1%포인트 떨어질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보고서에서는 주가도 7~10%포인트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 Hosokawa Targets Tokyo’s Clout in Japan Nuclear Debate)
아마도 선거 과정에서 이런 식의 얘기들이 계속 나올 것입니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얘기를 퍼뜨리겠죠. 그러나 사실 이런 보고서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는 독일의 경험을 보면, 탈원전의 과정에서 재생가능에너지 관련 일자리가 늘어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탈원전 때문에 독일 경제가 어려워진 것도 아닙니다.
또한 경제성장률이나 기업의 주가를 올리는 것이 국가정책의 최우선적인 목표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민의 생존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현 세대의 이익을 위해 미래세대를 희생시킨다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일본의 도쿄도지사 선거는 일본의 탈핵을 좌우하는 분수령이 될 모양입니다. 현재까지 선거의 판세는 찬핵 쪽에 서 있는 마스조에 후보의 우세입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호소카와 전 총리를 크게 앞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고이즈미 전 총리가 선거 유세에 나서면 선거판세가 요동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재임시절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고이즈미 전 총리가 선거의 최대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형식적으로 지지선언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선거운동에 뛰어들 모양입니다. 결기를 밝히고 있는 셈입니다.
경향신문 서의동 도쿄특파원이 쓴 칼럼을 읽어보면, 고이즈미 총리가 어느 정도 적극적인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핵폐기물과 원전의 문제점에 대해 진지하게 인식하고, 탈원전을 본인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듯합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 임하는 본인의 자세를 일본 도쿠가와 시대의 추신구라(忠臣藏) 사건에 비유했다고 합니다. 주군에 대한 복수를 하고 전원 할복자살한 무사들의 얘기를 인용할 정도로 단단한 각오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쿄도지사 선거의 판세는 선거 당일까지도 출렁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일본의 상황을 보며, 마음이 착잡해 집니다.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과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서의동 특파원은 위 칼럼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썼습니다.
"원전 비중을 2035년까지 29%로 늘리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에너지 역주행'에도 별 문제를 삼지 않는 한국 야당들에도 고이즈미의 ‘출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한국의 야당이라고 뭉뚱그리면 억울한 곳들도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녹색당은 힘이 약한 원외 정당이어서 그렇지, 탈원전과 밀양 송전탑 문제에 역량을 쏟고 있습니다. 진보정당들도 탈원전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힘이 약한 것은 분명합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이 탈원전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민주당의 상당수 정치인들은 탈원전을 표방하고 이를 정치의 핵심이슈로 만드는 것이 득표에 유리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탈원전을 진정성 있게 주장하는 몇몇 의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도 탈원전을 분명하게 표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전을 확대하는 박근혜 정권의 정책에도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두 전직 총리를 보며, 느끼는 바가 큽니다. 나이 70이 넘은 호소카와, 고이즈미 두 전직총리가, 그것도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두 정치인이 얄팍한 정치적 계산만으로 도쿄도지사 선거에 뛰어들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탈원전에 대한 두 전직 총리의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원전 재가동은 미래세대에 대한 범죄"라고 얘기하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이들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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