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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의 편지…"나의 미래도 자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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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학생의 편지…"나의 미래도 자살인가"

[벼랑 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 ⑦]

불안, 근심, 걱정, 초조…. 정확히 지금 저의 심정입니다. 때문에 이 글은 매우 '주관적'이며 '감정적'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저의 이야기는 개인적이고 정치적입니다. 때문에 이 글은 매우 '시시'하고 '편파적'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정직하게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읽는 분들의 몫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무게를 잡은 게 아닌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부체질'

여기는, 영국입니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글을 시작하기까지 참으로 긴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컴퓨터를 전원에 연결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보통 핀이 두 개 달린 플러그를 씁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핀이 세 개 달린 플러그를 씁니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제 컴퓨터 플러그에는 16암페어라는 단위가 써져 있지만, 이곳에서 산 플러그에는 13암페어라는 단위가 써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릅니다. 혹시나 제 컴퓨터에 문제가 생겨 글을 쓰지 못할까봐 말입니다. 원고 마감일은 다가오고 정신은 없는데, 컴퓨터마저 사용할 수 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컸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안, 어쩌면 이 글을 관통하고 있는 말일지 모릅니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부족한 상태. 그리고 여기에서 오는 근심, 걱정, 초조.

유학을 앞두고, 저는 한 가지 모험을 했습니다. 우연히 제가 공부하게 될 분야의 발제를 간략히 하게 되었는데, 저는 좀 무리를 했습니다. 누가 점수를 매기는 것도 아니고, 누가 못한다고 손가락질 할 일도 아닌데, 저는 그만 최선을 다하고 말았습니다. 짐을 챙기고 물건 사는 일을 제쳐두고, 오로지 발제준비에만 몰입했습니다. 아침과 낮에는 발제준비를 하고, 저녁에는 피곤한 몸으로 환송회 나가는 일을 되풀이했습니다. 출국일은 점점 다가오는데 발제준비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고. 그렇다고 출국준비를 하자니, 왠지 발제준비에 소홀해질 것만 같고….

그럼 여기에서 어떤 분들은 궁금해하실 겁니다. 아니, 그 발제준비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출국을 앞두고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그렇게 책상 앞에만 앉아있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네, 바로 이 지점입니다. 제가 다른 분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부가 좋습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뭔가 편안해집니다(내가 '나의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공부하는 게 좋습니다. 공부하는 게 저의 '체질'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저는 그렇게 무리해서 하지 않아도 될 그 발제를, 조금 무리를 하며 준비했습니다. 출국을 앞두고 시간이 없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평소라면 한 달 정도의 여유를 두고 준비했을 여러 가지 것들을, 일주일 정도 만에 급하게 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 전원플러그도 미리 준비하지 못해 전전긍긍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오기 전에 미리 쓸 수 있었던 이 글도, 이제야 시작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말씀하실 겁니다. '와, 여기 이상한 사람도 다 있네. 공부하는 게 좋다니. 공부하는 게 체질이라니. 좀 이상한 사람 아니야?' 네, 저 역시 제가 좀 이상합니다. 아니, 남들은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공부를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요. 글쎄요. 저도 궁금합니다. 세상에 '공부체질'이라는 것도 있는 걸까요. 물론 저는 평소에 공부란 말을 매우 넓은 의미로 쓰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아주 좁은 의미에서의 '공부'라는 말을 쓰려고 합니다(예컨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런 공부 말이지요). 또한 여기에서 제가 '체질'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그것은 누군가만의 무엇이다, 본래 그렇다 등등의 뭔가 미리 정해져있는 본질주의를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제가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때, 이런 점은 뭔가 다른 것 같다,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제가 장애와 젠더에서 지금과는 '다른' 위치에 있었다면, 공부하는 것 자체 또는 유학가는 것 자체에서 달라졌을 부분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읽고 대체로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공부하는 것을 '진로'로 선택한, 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유학생입니다.

자살을 기억하는 방식

제가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을 무렵, 어느 시간강사가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그 기사에는 관련 홈페이지 주소도 있었는데,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조심스럽게 그 홈페이지를 찾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그곳은 시간강사들과 대학원생들이 주로 회원으로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시간강사들의 생활과 학문에 대한 고민 등이 진솔한 목소리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정신없이 그 홈페이지를 살펴보던 저는, 그만 후회를 하고 말았습니다. 아, 괜히 찾아왔구나….

그랬습니다. 저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되는 건가?'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는 다시는 이곳을 찾지 말자. 왜냐하면, 마음이 너무 심란해져서 공부가 안 될 것 같으니까.

시간강사의 비극에 대한 첫 기억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학부생활을 하며 가끔씩 느껴왔던 강사선생님들의 어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나의 미래도, 자살로 이어지는 건가? 이렇게 미래가 불투명한데 공부를 계속 해야 하는 건가?' 그리고 저는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 뒤에 그곳을 찾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어느 시간강사의 죽음을 멀리 떠나보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정이 있어 연기했던 유학을 결심하고 입학이 결정됐을 무렵, 신문에서 기사를 봤습니다. 어느 시간강사가 자살을 했다는. '또, 자살이구나….' 그런데 이번에는 제 자신이 여러 가지 면에서 달라져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공부하는 이로서의 본격적인 훈련을 위해 유학을 가기로 되어 있었고, 게다가 학자의 삶은 어떤지를 알고 싶어 조금은 뜬금없이 <교수신문>을 구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신문을 통해, 시간강사의 자살소식을 접했습니다. 신문에는 시간강사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었습니다. 유서도 얼핏 보였습니다. 저는 이 신문을 보고 그날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심란한 마음에 도저히 책을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전 후회했습니다. '아, 괜히 봤구나….'

그러다 어느 순간,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바로 몇 년 전, 시간강사의 자살소식에 어느 홈페이지를 찾았던 기억이 났던 것입니다. 그때와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 느낌이었는지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느낌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시간강사들의 자살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공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혼란스럽고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또 결심했습니다. 지금은 앞으로 공부하게 될 전공책을 읽어야 할 시점이야. 언어(영어)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그러니, 너무 관심을 갖진 말자. 내 자신이 어느 정도 안정될 때까지는 관련기사를 보지 말자(그러면서도 저는 그 신문기사를 조심스럽게 오려서 보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의 두 기억은 저에겐 잊고 싶은 그 무엇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어찌나 심란하게 하던지, 몹시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요약하면 이런 것이었습니다. '나의 미래도… 자살인가.'

부끄러운 나를 돌아보며
▲ 국회 앞 천막 시위가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해가 바뀌면서 400일이 지났다. ⓒ김영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났습니다. 어느 날, 비정규교수노조 선생님들이 천막시위와 1인시위를 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사실 시위 소식은 이전부터 들어왔었지만, 이번에는 너무나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할 일을 그분들이 해주고 계시구나. 나의 미래를 위해 저렇게 애쓰고 계시구나.' 그랬습니다. 왠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절박한, 그리고 절실한 그 무언가가 바닥을 치고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움직였습니다. 국회 앞 천막을 찾게 된 것입니다. 저는 약간은 쑥스럽고 어색한 마음으로 음료수 한 상자를 사들고 천막을 찾았습니다. 그곳에는 김동애 선생님이 천막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저는 쑥스러운 마음으로 음료수를 전해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김영곤 선생님도 뵐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김동애/김영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일인시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사실 마음의 빚이랄까, 이런 게 있었기 때문에 일인시위에 참여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비정규선생님들의 싸움에 조금이나마 함께하기 시작한 순간이.

하지만 고백하건대, 저는 매우 이기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천막을 찾아간 것으로 저의 할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 이렇게 찾아뵈었으니 이제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자. 이제는 '나의 할 일'을 하자. 사실 그래서였습니다. 제가 1인시위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던 것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던 셈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어느 대학신문사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대학원생으로 일인시위를 하게 되었는데 그와 관련해 잠깐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망설였습니다. 겨우 일인시위 한 번 한 것 가지고 이렇게 인터뷰까지 해야 할까. 난 그저 다른 선생님들이 해온 싸움에 간신히 한 번 동참한 것뿐인데.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함께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 내가 어떤 자격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겨우 한 번 시위를 한 것뿐인데.

그랬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우려했습니다. 저는 겨우 시위 한 번 한 것으로 대학신문에 제 이야기가 실리게 되었을 때 괜히 우쭐해지진 않을까, 그게 걱정되었습니다. '그래, 이렇게 대학신문에도 나오고. 난 정말 훌륭한 사람이야.' (사실 <프레시안> 연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이런 고민을 했었습니다. 물론 원고를 쓰느라 지금 이렇게 고생하고 있지만요) 그래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기자분께 말씀드렸고, 그리고 고민 끝에 짤막하게 전자우편으로 의견을 말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말 그대로 아주 짤막한 분량이었지만, 저는 제 나름대로 비정규교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고민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왜 학문에 대한 열정이 자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왜 그것이 자살로 귀결되는가. 혹은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었더라도 왜 그것이 자살로 이어져야 하는가. 그렇다면 나도, 자살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대학원생은 무엇으로 사는가

1인시위를 하고 난 뒤, 저는 한 가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1인시위에 참여했던 대학원생은 제가 처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대학원생이 자신의 일이 될지도 모를 이 문제에 이렇게도 관심이 없단 말인가.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저 역시 여기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습니다. 저도 그동안 거의 무관심했다가 계속되는 자살소식을 듣고, 또 유학을 앞둔 상황에서 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그나마 함께하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동안 대학원생들이 한 명도 함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저는 잠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충분히 이해될 만한 일이었습니다. 바로 한국사회에서의 교수-대학원생 관계를 생각해보면 말이지요. 대부분의 지도교수는 바로 정규직교수, 즉 전임교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단적으로 말해, 비정규교수 문제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는 대학원생이 있다면, 그 학생을 정규직교수가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물론 모든 정규직교수가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가 봤을 때, 지식노동시장의 권력관계에서 비정규교수와 정규직교수는 불가피하게 긴장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지도교수 챙기랴, 논문 쓰랴, 프로젝트 하랴 바쁜 대학원생이 쉽게 자신의 시간을 내어 비정규교수 문제에 관심을 갖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야 유학을 앞둔 상황에서 비교적 시간관리가 자유로운 입장이었기에 그나마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보통의 대학원생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함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한국에서의) 대학원 생활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공부했던 학교, 그리고 함께 생활했던 분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될 수도 있어 솔직히 망설이게 됩니다. 그래도 잠시나마 몇 가지 기억을 더듬어볼까 합니다.

먼저 기억나는 것은, 교수-학생의 복종관계입니다. 선생님들 앞에만 서면 저는 왜 그리도 작아졌던 것일까요. 몇몇 선생님들의 개인적인 심부름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일들을 교수-학생의 관계에서 처리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만약 부탁을 거절하면, 나쁜 학생으로 찍히지 않을까, 학교생활이 불편해지지 않을까, 논문심사에서 불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적지 않게 했던 것 같습니다(참고로 저는 제가 공부했던 학교가 그나마 다른 대학원에 비해서는 여러 가지로 괜찮은 공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기억은 바로 학술지 심사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어느 학술지의 편집간사를 맡은 적이 있는데 이른바 '학진등재지'가 되기 위한 심사율이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편집회의에서 어떤 선생님이 대학원생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의 논문투고를 독려하고 그래서 그 논문들을 일부러 탈락시켜서 심사율 문제를 해결하면 어떻겠냐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바로 그것은 정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또 다른 선생님이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한참 뒤에야 저는 그 문제가 학진등재지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방식은 매우 일반화된 것으로 여러 차례 문제제기됐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교수사회 내지 학문세계가 상당히 공고한 학연/인맥 관계로 얽혀져 있다는 건 누구나 알만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특정 학연/인맥 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여러 가지 차원의 소외감과 박탈감에 시달려야 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아도 무슨 의미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한국 대학원 생활이 이렇다 보니, 그래서 외국으로 나가는가 보군요.' 글쎄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 관심분야가 한국에서는 공부하기 어려운 쪽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또한 말이 나와서 말인데, 외국이라고 해서 한국에서와 같은 대학원의 관행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문제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풀어나가냐는 것인데, 이 비정규교수 문제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곧, 학문세계에서의 권력관계가 비정규교수 문제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적인 부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어떤 힘에 의해 끊임없이 통제되는 구조.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검열하며 체념하는 방식. 그리하여 결국 그러한 목소리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는 그 무엇. 바로 이 지점이 비정규교수 문제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다가 죽고 싶은 소망
▲ 공부하다가 죽고 싶은 소망 ⓒ이광수

불안한 마음으로 글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이렇게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불안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극복하기보단 공존해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글쓰기의 자원, 사유의 힘으로 전환시키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어차피 불안 없이 살 수 없다면 말이지요(하지만 이 말도 사실은 배부른 소리인 것 같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처음 글을 시작하기 전까진 불안한 마음에 이런 생각을 할 여유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당장 절박한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불안은, 그저 불안일 뿐입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 어쩌면 비정규교수의 삶이 바로 이런 게 아닐지).

그럼 이제 저의 소박한 꿈을 말씀드리면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저는 책을 읽다가 혹은 글을 쓰다가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공부하는 게 좋습니다. 어쩌면 스스로 '공부체질'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전 공부하다가 죽고 싶습니다. 다만, 저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이와 같은 글을 쓰게 하는 슬픈 죽음은 아니기를 빕니다.

자살보다는 좀더 다른 방식의 삶을 바라는
어느 유학생 드림.

○ 2008년 2월 자신의 삶을 마감하신 (그리하여 이 글을 쓰게 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고 한경선 님, 그리고 비슷한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많은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김동애/김영곤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분들의 싸움을 지지한다는 말씀 덧붙입니다. 관련법을 다루게 될 18대 국회의 책임있는 답변을 촉구합니다.

* 이 연재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의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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