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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들은 '이게 다 친일파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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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들은 '이게 다 친일파 때문'이라고 말한다"

[토론회] 다시 과거 청산을 주목해야 하는 까닭

지난 9일 생방송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막바지에 강조했던 말이 있다. "과거와 싸우다보면 미래가 피해를 입는다. 미래만 보고 힘을 합쳐 나아가자"라는 주장이었다.

이 말은 현 정부, 그리고 뉴라이트 등 정부 지지세력이 갖고 있는 역사관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무엇보다도 최근 발표되고 있는 일련의 정책에서 나타난다.

전국 16개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8일 뉴라이트 세력의 '지적'에 따라 '좌편향'된 근현대사교과서를 일선 학교에서 사용하지 않도록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8월에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 한다는 움직임에 대한 논란이 들끓었다.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통폐합 얘기는 이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과거, 또는 역사를 철저하게 외면해야 할 대상, 또는 자신들의 입맛에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인상을 또렷이 준다. 더군다나 일련의 논의를 주도하는 이들의 과거 행적은 "미래와 경제를 위해서"라고 자신들이 내세운 명분을 무색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최근 시민들 사이에서는 정반대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과거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학자나 운동가의 주도가 아니다. 몇 달간 이어진 촛불 집회에서는 "이게 다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이 자연스레 도출됐다.

이런 사회적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시민사회에서도 나왔다. 정부가 주도하는 과거 청산 작업을 기대하기 힘든 가운데, 다시 시민사회에서 이를 꾸준하게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9일 창립한 포럼 '진실과 정의'(공동대표 김효순·서중석·이석태)는 전문가들이 중심이 된 단체이지만 촛불 집회 이후 과거 청산 문제를 모색해보는 본격적인 시도라는 점에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이날 창립총회가 열린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유예된 과거청산'이라는 주제로 과거 청산 작업의 활성화 방안이 논의됐다.

"과거청산이 대중과 멀어진 건 상식과 멀었기 때문"
▲ 지난해 11월 뉴라이트전국연합 2주년 총회에 참석한 당시 이명박 후보. ⓒ뉴시스

발제를 맡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의 맥락에서 과거청산에 대한 공격은 수구세력의 입장에서는 자기정체성의 확인과도 같은 중요한 의미를 띤다"며 "이명박 정권이 위원회 통폐합 방안을 구체적으로 내놓지는 않고 있지만, 이런 정부가 들어섰다는 사실만으로도 각종 위원회의 동요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한홍구 교수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의 위기 원인을 단순히 정권 교체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 노무현 정권 시절 과거 청산 작업을 진행하면서 과거사 관련 전문가, 활동가 사이에는 묘한 패배주의가 번져가고 있었다"며 "나름대로 상당한 수준의 진실규명 작업을 수행해왔는데, 진실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대중들의 관심은 멀어져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광주 문제를 예로 들며 "광주는 전 국민의 광주에서 호남 사람들의 광주로, 관련자들의 광주로, 관련자들 중에서도 돈 받은 사람들의 광주로 자꾸 축소되어 갔다"며 "그런데 사실 광주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2006년 강풀의 만화 <26년>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2007년 영화 <화려한 휴가>는 730만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광주를 대중문화의 중심이슈로 불러냈다."

그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라고 되물은 뒤 <26년>을 예로 들며 "작가는 '보복'이라는, 한국적 맥락에서 볼 때 매우 과격할 수 있는 이야기를 독자들의 상식에 호소했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에서 조사권한이 미약했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천황을 기소하는 국제법정을 열면서, 한국 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이나 군사독재 정권 시절의 용공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라는 장벽 앞에 다소곳해져 버렸다. (…) 많은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1000여 명의 인원이 과거사 정리 작업에 투입됐지만, 단 한 명의 가해자도 감옥에 보내지 못했다. 감옥에 보낼 힘이 없더라도 가해자들은 제대로 된 고백도 사죄도 하지 않았다."

"촛불 집회, 과거 청산 작업의 새로운 빛"
▲ <26년>을 그린 작가 강풀은 '보복'이라는, 한국적 맥락에서 볼 때 매우 과격할 수 있는 이야기를 독자들의 상식에 호소했다. ⓒ프레시안

한 교수는 "처벌 없는 진상규명이란 애당초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며 "그러나 처벌을 죽인 진상규명이 기댈 곳이라고는 우연히 남아있는 몇 장의 문서나 가해자들의 '선의' 밖에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제 이명박 정부가 하려는 것은 이 '얌전한 과거 청산'마저 덮어버리자는 것"이라며 "또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뉴라이트들은 역사 문제와 관련해 대단히 공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과거청산 작업을 둘러싼 지형은 매우 우울해 보인다"며 "그러나 지난 5~6월의 촛불 집회는 과거 처산 작업에 새로운 빛을 비춰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 광주의 충격이 해방전후의 현대사 연구라는 금기의 땅을 새롭게 열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촛불을 들 수밖에 없게 만든 상황은 시민들에게 과거사의 영역을 돌아보게 만들었다"며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가졌고, 나름의 답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그 답의 하나로 '친일 청산'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과거사 진실규명 작업을 통해 밝혀낸 역사적 사실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교육되어야 한다"며 "과거 청산 작업의 목적은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국가폭력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고자 함에 있다"고 강조했다.

"진실과 정의는 더 쉽게, 감성적으로 대중과 만나야 한다"

한편, 이날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한 문화·미디어산업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과거 청산 운동이 더 쉽게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촛불 집회 생중계로 '아프리카TV'가 유명해진 뒤 구속돼 '촛불 집회 탄압용 수사'라는 여론을 일으켰던 나우콤 문용식 대표는 "정부 주도 과거청산 작업은 이젠 과거사만 청산하면된다는 오만함의 방증이 아니었나 싶다"라며 "과거사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과거사라는 말을 붙여선 안될 것 같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과거사 운동이 잘 되려면 실현되어야 할 몇 가지가 있다"며 "당장은 대중들이 주목하지 않을 테지만 일관성있게 활동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대중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온라인 상으로 소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고, 공분을 일으키는 테마를 잡고, 실현가능한 목표를 제시하면 훨씬 더 참여하기 쉽다"고 말했다.
▲ 김지훈 감독은 "<화려한 휴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신파, 멜로 형식이라는 점에서 불쾌해 하고,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은 상업영화 형식을 갖고 관객을 만난 것을 비판했다"며 "그러나 쉽게, 감성적으로, 더 많은 젊은 세대와 만나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화려한 휴가 홈페이지

<화려한 휴가>를 만든 김지훈 감독은 "2008년의 진보는 이념이 아닌 경제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시대에서 진실이나 정의가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운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촛불 집회나 <화려한 휴가>의 인기 등 문화적 움직임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진실과 정의가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감독은 "대학에서 특강, 강의해보면 젊은 세대들이 부모로부터 진실과 정의가 밥먹여주냐는 교육을 철저히 받는다"며 "삶이 영어와 취직으로 대변되는 대학생들의 마음 속에 파고들어갈 방법은 결국 감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화려한 휴가>에 대해 많은 이들이 신파, 멜로 형식이라는 점에서 불쾌해 하고,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은 상업영화 형식을 갖고 관객을 만난 것을 비판했다"며 "그러나 쉽게, 감성적으로, 더 많은 젊은 세대와 만나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해성 작가는 "지금도 서대문형무소 현장에는 일제강점기 역사만 기록되어 있을 뿐 민주화운동에 관한건 단 한줄도 없다"며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민주화에 대해 어떤 기록도 없는 걸 보고 아직도 1945년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뒤 100년 뒤에 명예를 회복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며 "당대에 기록하고 싸우는 것이야말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억에서 패배한 자는 미래에서 패배한다"며 과거청산 운동이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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