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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뉴라이트에게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 뿐인가"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뉴라이트 역사관 따져보기 ①

<프레시안>은 역사학자 김기협 박사의 연재 '김기협의 페리스코프'를 재개한다. '페리스코프(잠망경)'는 지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동서 문명을 꿰뚫는 깊고 넓은 안목으로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다.

재개되는 '페리스코프'는 약 10회에 걸친 '뉴라이트 역사관의 점검'으로 시작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물 만난 듯 목소리를 높이는 뉴라이트 진영에서 학술적 근거 내지 사상의 준거로 내세우는 소위 '뉴라이트 역사관'의 허실을 따져보는 작업이다.

강단에 서본 지 15년에 연구비 지원을 받아본 지 10년, 김 박사는 한국의 주류 역사학계와 거리를 두고 지내왔다. 그런 그가 주류 역사학계를 좌파로 비판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비판하고 나선다. 공정하고 활달한 그의 비판이 독자 여러분의 시각을 넓혀줄 것을 기대한다. <편집자>


뉴라이트에게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 뿐인가?

얼마 전 <밖에서 본 한국사>(돌베개 펴냄)라는 제목으로 한국사를 개관하는 에세이집을 낸 데는 두 가지 뜻이 있었다. 하나는 민족주의에 과도하게 얽매여 온 편협한 관점을 보완하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국사를 국외사와의 관련에서 바라보며 시각을 넓히도록 제안한 것이다.

책을 본 후 "뉴라이트 역사관과 통하는 것 아니냐?" 하는 반응을 보인 독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뉴라이트 역사서들을 찾아보니 얼핏 볼 때, 과연 내가 중시한 두 가지 의미를 뉴라이트 저자들도 표방하고 있고, 그 의미를 살리기 위해 합리성을 중시한 점도 같다.

그런 테크니컬한 기준에서 본다면 나도 뉴라이트에 서고 싶다. 그러나 뉴라이트의 합리성에는 뭔가 석연찮은 것이 있다. 더 세밀히 살펴보니 뉴라이트 저자들이 합리성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인간의 문명이 도그마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는 것, 도그마를 순화시켜나가는 과정이 바로 문명의 발달 과정이며, 순화된 도그마의 조화로운 균형이 바람직한 문명 상태라는 생각 위에 나는 역사를 바라본다. (<밖에서 본 한국사>, 15쪽)

그런데 뉴라이트 저자들은 합리성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합리적 근거가 없는, 자기들이 선택한 전제들 위에서 역사를 논한다. 어떤 궤변과 망설이라도 짜낼 수 있는 담론구조다. 합리성의 한계를 무시하면 상식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현란한 논설 안쪽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역사와 학문, 인간과 사회, 정치와 경제의 의미에 대한 몰상식한 재단이 널려 있다. 그들은 어째서 이토록 상식을 등지는 담론 구조에 몰두하게 된 것일까? 순수한 학문적 동기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의 참된 동기가 정치적인 것일까, 아니면 정략적인 것일까?

나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의 '비정치적' 경향을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역사학 본연의 정치적 성격을 외면함으로써 소위 재야 사학계의 '과(過)정치적' 성향에 균형을 잡아주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뉴라이트가 정치적 목적 의식을 가지고 역사학에 접근한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다만 그 정치 의식이 건전한 수준에 이르지 못해 정략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안병직·이영훈 지음, 기파랑 펴냄). ⓒ프레시안

제일 먼저 검토한 것이 안병직 씨와 이영훈 씨의 대담집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다. '뉴라이트 사관'의 대표 두 사람의 담론 범위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두 사람을 '역사학자'로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이 책을 몇 장 넘기기도 전의 일이었다.

역사란 인간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인간이란 대단히 복잡하고 심오한 존재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인간이란 존재의 한 모퉁이라도 파악하려는 노력에서 만들어진 여러 분야의 학문 가운데 하나가 역사학이다. 역사학자는 인간성을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해온 일들을 살펴 그로부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키워나가려 노력한다.

그런데 안병직 씨와 이영훈 씨는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해 놓고 그 위에서 역사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씨는 "Homo Economicus"라는 기발한 용어까지 스스럼없이 내놓는다. 이 자의적 규정이 우리 사회의 과거, 현재와 미래에 대한 그들의 논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이다.

홉스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하고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설명한 것은 1651년의 일이다. 이기심은 인간성의 엄연한 한 부분인데, 그때까지 통상 인식되어온 것보다 중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홉스의 지적이었다. 당시의 시대 변화 속에서 의미 있는 지적이었다. 이 지적을 절대적 진리처럼 받드는 21세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홉스 자신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홉스에 맞서는 지적으로 눈에 띄는 것이 인류학자들의 미개사회 연구다. 아직도 금속과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수렵-채집 단계에 머물러 있는 미개사회를 관찰함으로써 문명 '오염' 이전의 인간 본성을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인류 발생부터 농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수십만 년의 긴 세월 동안 인간이 살아온 모습을 미개사회의 거울에 비춰보려는 것이다.

'부시맨'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주변의 쿵족은 1963년 이래 인류학자, 고고학자, 언어학자, 영양학자들이 참여하는 연구팀의 체계적 연구대상이 되었다. 이 연구의 결과는 미개를 곧 야만으로 보던 통념을 깨뜨렸다.

쿵족의 먹을거리 중에는 쥐, 뱀, 벌레 등 '몬도가네' 수준이 많다. 그러나 관습의 색안경을 벗고 보면 영양학적으로 훌륭한 것이다. 먹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생존을 위한 먹을거리 확보에 큰 노력이 들지도 않아서 서로 어울려 노는 등 여가시간을 충분히 가진다. 그리고 먹을거리의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기후 변화에도 큰 위협을 받지 않는다.

쿵족 사회의 관찰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구성원들의 연대감이다. 식량을 오래 보관할 수 없으니 사유재산의 관념이 약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남보다 '뛰어난 존재'가 되는 길조차도 이 사회에서는 막혀있었던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이 몇 차례 사냥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듭 올리자 동료들이 슬그머니 왕따를 놓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그 사람은 사냥에서 빠지고 지내다가 며칠 후 다시 나서자 거리낌 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다른 곳의 미개사회에서도 일반 문명인들을 놀라게 할 만한 평화와 평등의 모습이 많이 보고되었다. 투쟁적인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농업문명을 겪지 않은 인간의 모습에서 평화와 평등이 일반적 양상이고 이기심과 투쟁은 더러 특별한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다.

미개인들이 그런 정도로 평화와 평등의 모습을 보인다면 인간의 본성에 '짐승'과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인류가 지구상에서 특출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과정에 비추어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인류는 농업문명 이전에도 이미 '성공'한 종이었다. 농업문명 발생 당시 인류는 남극대륙을 제외한 모든 육지에 서식하고 있었다. 포유류 가운데 가장 적응력 높은 종의 자리를 벌써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적응력은 인간의 사회성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초기 인류의 유리한 점이 도구와 언어였다고 하는데, 나는 언어를 더 중요하게 본다. 초기 인류와 비슷한 수준으로 도구를 구사하는 동물은 여럿 있다. 그러나 인류와 비교할 만한 차원의 언어를 가진 동물은 없다.

초기 인류의 언어는 대립보다 유대를 강화하는 데 역할이 있었다. 대립의 표현은 언어까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어가 있음으로 해서 "주먹으로 해결할 일을 말로 해결"하는 일이 부단히 있었을 것이니, 언어가 통하는 사회는 내부갈등을 최소화함으로써 외부에 대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을 통해 다른 동물들과, 그리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집단들 사이에 경쟁을 계속하는 동안, 언어를 잘 발달시키고 튼튼한 유대감을 키워낸 사회들이 더 뛰어난 적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발생 당시 인류의 속성은 다른 짐승들과 그리 큰 차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십만 년에 걸친 문화적 진화를 통해 인류만의 특성을 키워냈다.

농업이 발달하고 금속과 문자를 쓰게 되면서 인류는 본격적 문명단계에 접어들었다. 도시와 국가가 나타나면서 계급과 직업이 갈라져 나왔다. 그러나 농업사회의 밑바탕에는 채집-수렵 단계에 형성된 공동체의식이 깔려있었다. 자본주의가 유행할 즈음에 와서야 이런 의식을 깨뜨릴 필요가 제기되었고, 그 필요 위에서 홉스의 지적이 나온 것이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이기심을 더 절제하는 사람들이 있고 덜 절제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시대까지 한국사회는 이기심의 절제를 권장하는 편의 사회체제를 지켜왔다. 그 속에서는 "개인의 발전을 억압하는 분위기"라며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체제 덕분에 민족공동체가 살아남고 우수한 문화를 빚어왔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일제 통치가 이 체제를 깨뜨렸다. 근대화를 위해 불가피한 변화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민족의 지배라서 더 난폭한 측면이 있었다. 협조자에게 혜택을 주고 반대자에게 불이익을 줌에 있어서 일본 내부에서만큼도 예의와 염치를 지켜주려는 노력이 없었다. 일본 지도층에 전통의 배경을 가진 명문의 비중이 상당한 데 비해 식민지 한국에서는 도덕적 권위 없이 친일에만 의존한 벼락출세 집단의 비중이 크게 된 것이 그 결과다.

친일 자체는 범죄가 아니다. 오늘날의 친중이나 친미와 마찬가지로 대외관계에 대한 합리적 판단에 따른 정치적 태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친일이든 친미든 친중이든 정치적 태도를 빙자하여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자기가 속한 사회를 배신하는 것은 죄악이다.

뉴라이트에서 일본의 식민통치를 옹호하는 이야기로, 일본의 의도는 착취가 아니라 '영구병합'에 있었다는 말이 있다. '내선일체'의 사탕발림에 당시 넘어간 사람들도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그것을 좋은 뜻으로 받드는 사람들이 있다니….

설령 내선일체, 영구병합이 일본의 진심이었다 치고, 또 좋은 뜻이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들은 싸구려 친일파를 그토록 마구잡이로 키워주지 말아야 했다. 일본 자체가 전통의 무게 위에 발전의 길을 찾아나가는 것과 비교라도 될 만한 수준에서 조선사회의 발전조건을 마련해줘야 했다.

일제 식민통치자들은 일본문화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친일파를 바란 것이 아니라 이기심에 몰려 자기 사회를 배신하는 친일파를 원했다. 그래서 균형도 조화도 아랑곳없이 통치의 능률성에 매몰되어 이기심 하나가 식민지 사회를 휩쓸도록 이끌고 몰아붙였다.

21세기에 들어온 지금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전제 아래 일제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논설은 진지한 역사담론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논설이 나올 수 있는 정치적 상황과 배경이 흥미로울 뿐이다.

인간에게서 인간다운 특성을 제거하고 싶어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뉴라이트 진영이 규제 완화, 민영화, 부유층과 고소득층의 과세 축소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구한다는 사실로 이해된다. 정글 자본주의에 방해되는 인간적-사회적 가치를 배척하는 신자유주의, 그에 복무하는 뉴라이트 멤버들에게서 인간이 살아온 실제 모습을 찾는 진지한 역사담론을 바란다는 것이 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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