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자신감이 넘친다. 쇠고기 협상의 족쇄에 질질 끌려 다니던 시기는 끝났다고 보는 것 같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승전보와 독도 문제와 관련한 미국발 낭보가 자신감의 계기가 됐다.
곧바로 '공격 모드'로 돌입했다. 휴가 복귀 후 일성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교육감 선거에 대해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이를 계기로 규제완화와 공기업 개혁 등 개혁정책에 한층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청와대 참모진들을 독려했다.
상식적으로 교육감 선거와 규제 완화, 공기업 정책은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맥락은 그렇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이걸 연관시킨 데 대해 "교육정책과 규제개혁, 공기업 개혁은 하나의 '패키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교육감 선거의 '정치적 의미'에 주목해 'MB식 개혁'을 밀어붙일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다는 얘기다.
역공은 전방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PD수첩>을 뒤지고, 촛불 집회에 참가한 시민 900여 명에게 벌금형을 때리는 공안당국의 앙갚음이 당장 눈에 보인다. 하지만 진짜 역공은 조용하고 치밀하게 진행된다. 교육감 선거와 직결되는 교육정책은 물론이고 이 대통령이 예로 든 규제완화와 공기업 정책, 미디어 정책, 부동산 정책 등이 '촛불 족쇄'를 벗고 'MB 본색'을 드러낼 채비를 갖췄다.
전진기지는 한나라당이다. 현재 172석의 한나라당은 아직 복당이 완료되지 않은 친박 인사들까지 결합하면 180석 이상으로 몸집이 불어나게 된다. 지난 5개월간 '밀어붙이기'에 앞장선 이 대통령이 잠시 뒤로 물러나고, 의회권력을 장악한 한나라당이 '이명박 시대의 국가개조 사업'을 도맡을 것으로 보인다. 9월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가 융단폭격의 장이다.
다만 교섭단체간의 원구성 협상을 막판에 뒤집어버린 청와대의 기세를 보면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대기업-부자' 법안 봇물…언론-인터넷 '재갈물리기'도 장전 완료
이 대통령이 0순위로 꼽은 공기업 정책과 규제완화는 당·정·청이 한마음이다. 정부는 촛불 민심의 눈치를 보며 미뤄뒀던 공기업 관련 프로그램을 8월에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꼬투리로 잡고 있으나 언론과 금융공기업에 속속 투하되는 '낙하산 인사'가 공기업 구조개혁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은 한 귀로 흘린다.
국회에선 공기업특위가 가동되고 있지만 맥이 풀려 있다. 한나라당이 낙하산 인사 문제를 포함한 청문회 개최에 강하게 반대해 파행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관련자료 제출을 미루고 있어 야당은 속수무책이다. 민주당 주승용 의원은 "8월 중순 이후 공기업 민영화안을 제출한다는 것은 특위를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했다.
기업 규제완화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1일 금산분리 완화 내용을 담은 은행업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금융공기업 민영화를 담은 산업은행법, 중소기업은행법 등을 포함해 보험업법, 자본시장통합법, 여신전문금융업법, 대부업법 등 무려 24개 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16일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를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곧바로 개정안을 이달 중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나라당도 작심하고 밀어붙일 태세다. 최경환 한나라당 수석정조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9월 정기국회에서는 법인세 등 종합적인 감세안과 함께 적대적 M&A 방어장치 도입, 출총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등 계획했던 친기업적 입법들이 가시화돼 기업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작심하고 밀어붙이는 미디어 분야는 공격의 그물망이 가장 촘촘하다. 이미 미디어 관련법이 줄줄이 발의됐거나 대기 중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9일 대기업의 방송진출 문턱을 크게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자산총액 3조원을 넘는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사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한 기준을 자산총액 10조원 미만으로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CJ, 동부, LS, 현대, 현대건설, 효성, 동양 등에 방송사 소유의 문호가 개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터넷과 포털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은 특히 집요하다. 진성호 의원 등은 지난 24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불법이나 명예훼손 게시물을 올린 사이트에 대해 폐쇄권을 갖게 된다.
이에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8일 전송망 차단까지 가능한 '저작권법 개정안'을 내놓았고, 행정안전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명예훼손 관련 댓글을 임시조치하지 않을 경우 포털에 대한 처벌조항 등 50개 세부대책을 담은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에 김경한 법무부장관이 '사이버 모욕죄'를 검토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또한 김영선 의원이 대표 발의한 신문법 개정안은 포털의 초기화면 중 뉴스 비율이 50% 이상이면 언론사로 규정해 의무와 책임을 지우도록 했다. 이에 따르면 초기화면이 50%를 넘지 않을 경우에는 뉴스 제공은 물론 뉴스 검색조차 할 수 없다. 예컨대 네이버와 다음 등 국내 포털들이 지금처럼 뉴스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기 위해선 초기화면에 뉴스 비중을 5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심재철 의원이 별도로 낸 신문법 개정안도 포털을 언론기능을 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로 규정하고 포털이 기사의 조회수를 조작했을 때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등 규제를 강화토록 했다.
이밖에 신지호 등 한나라당 의원 53명은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개정안'을 내고 시민단체 회원이 집시법을 위반해 벌금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그 단체의 정부보조금을 환수토록 했다.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도 지난 17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불법시위 참여 단체에는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했다.
과세 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크게 완화하는 방향으로 종합부동산세법 개정도 미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신중론을 견지하고 있으나 박희태 대표가 "종부세 완화는 확실한 당론"이라고 못을 박아 놨다. 정기국회를 통해 부동산 정책 전반을 손보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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