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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향한 MB의 위험한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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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향한 MB의 위험한 짝사랑

[기고] "친재벌 정책은 스태그플레이션 심화시켜"

지난 16일 삼성특검에 의해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에 대해 법원이 조세포탈 혐의만 일부 유죄로 인정하고 경영권 승계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형량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 선고에 그쳤다. 너무나 관대한 판결이다.

특히 에버랜드 전환사채(CB)의 편법증여에 의한 경영권 승계 과정에 대해 이번 재판부가 CB 발행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면서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은 1, 2심에서 모두 배임죄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건희 회장도 이에 사죄한다면서 8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기까지 했다.

한편 한국경제는 현재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처해 있다. 2001년경부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어온 데다가 국제 원자재가격의 상승과 정부의 무리한 고환율정책 때문에 물가까지 급상승한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의 향후 전망과 극복에 이번 판결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를 따져본다. 결론부터 먼저 말한다면 이번의 친재벌적 판결은 스태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 이미 조락기에 접어든 재벌을 감싸는 친재벌적 판결은 스태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뉴시스

경제사적으로 볼 때 한국의 재벌은 이제 조락기(凋落期)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특정 개인과 가족이 대규모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재벌체제는 경제발전 초기에는 번창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자금 동원의 필요성에 따른 지배주주 지분율의 하락, 2, 3세 후손들의 경영능력 부족, 정부정책 변화에 의한 상속세 중과, 금산분리, 금융규제 강화 등으로 인해 재벌은 해체되어 가족적 지배에서 벗어난 기업으로 전환되었다. 재벌체제는 경제가 원활할 때는 그런대로 기능했지만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재벌대기업 자신이 경영난에 직면하고 또 그 파급효과로 인해 전체 경제위기를 야기한 책임을 묻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위기에 빠진다.

미국 : '강도귀족'과 대공황, 글래스 스티걸법

미국의 예를 보자. 미국에서는 1870년대와 1920년대 사이에 모건, 록펠러, 벤더빌트, 카네기 등 소수의 재벌이 경제를 지배하는, 이른바 '금도금 시대'(gilded age)가 있었다. 매튜 조셉슨은 1934년에 산업계의 거물들을 비판하는 '강도귀족'(Robber Barons)이란 제목의 책을 썼다. 대표적 재벌이었던 모건은 상업은행업무와 투자은행업무를 겸영하고 의결권 신탁, 피라미드 기업조직 구축, 이사 파견 등을 통하여 수백개의 대기업을 지배했다. 1929년 모건 측 인사 202명이 1984명의 경영진으로 겸임 파견되어 있었다. 불황기에는 기업과 금융기관을 살리고 죽이는 힘을 금융자본가인 모건이 장악하고 있었고, 대통령이 모건에게 호소할 정도였다.

1929년에 대공황이 터졌는데 그 원인은 독점자본의 과잉투자 누적, 규제받지 않는 금융자본의 투기, 그리고 소득분배의 불평등 심화였다. 이에 루즈벨트 정부는 1935년 경제대공황을 초래한 피라미드식 재벌 구조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지분율 80% 미만의 기업간 배당에 대해 7%의 추가 배당소득세를 물리는 고강도 조치를 내렸다. 지분 80% 미만으로 출자단계가 늘어날 경우 배당소득세가 누진적으로 늘어나도록 만든 것이다. 조세를 통한 재벌해체 정책은 큰 효과를 거두었다. 미국 재벌들은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계열사 지분을 80% 이상 확보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 지분을 모두 처분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분산된 주주를 대리해 경영자가 지배하는 기업지배구조가 확립되었다.

그리고 금융업종간의 융합을 개혁하기 위해 1933년 6월 '글래스 스티걸(Glass Steagle)법'을 제정했다. 공황 이전 대규모 은행들의 관례였던 증권업 보험업 겸무가 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은행 신뢰도를 높여 은행 공황을 방지하고 금융안정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모건의 금융제국도 상업은행 모건과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로 분리되었다. 상업은행과 또 노조 탄압에 의한 빈부격차도 대공황을 초래한 원인이었으므로 1933년의 NIRA(전국산업부흥법)와 1935년 와그너법 제정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보호했다. 또한 실업자, 농민 등의 구제를 위해 정부지출을 늘린 결과 GNP 대비 정부지출 비율이 1927년 11.7%에서 1932년 21.4%로 급증했다.

일본 : 2차대전과 독점금지법

일본에서는 1929년의 공황을 계기로 정부가 일본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해 금본위제로 복귀하기 위해 엔화의 평가수준을 일정하게 높이기 위해 긴축정책을 제창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재벌계 은행들이 달러 매입에 주력하는 등 협력하지 않자, 정부는 '달러 투기를 하는 것은 국적(國賊)'이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를 계기로 군부와 우익 주도의 재벌 비판이 본격화되었다. 3월에는 미쓰이 합명회사의 이사장이 극우 군인에 의해 암살되었다. 이러한 반재벌감정의 격화에 대응하여 재벌들은 1932-34년에 걸쳐서 조직개혁, 제도개혁을 통한 '재벌전향'을 했다. 재벌의 중추회사에서 재벌 일족이 사장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자를 명목상 사장에 앉혔다. 사회사업 기부를 목적으로 거액을 기금으로 하여 재단법인을 설립했다. 그리고 주식공개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것은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2차대전 직후 일본 재벌은 전쟁 책임을 이유로 해체되었다. 해체할 지주회사로 1946년 9월부터 1947년 9월까지 총 83개 회사를 지정했다. 지정된 지주회사들은 소유주식을 지주회사정리위원회에 이양하고 위원회는 이것을 일반입찰, 인수매각, 종업원 매각 등의 방식으로 매각하고 원소유자에게 10년 기한의 비유통 정부채권으로 보상했다. 또한 재벌가족들이 직접 소유하고 있는 주식을 처분하기 위해 1947년 3월에 10대 재벌의 가족 중 53명을 지정하여 지정지주회사와 같은 방법으로 주식을 이양시켰다. 아울러 10대 재벌의 1200여개 자회사도 타 회사 주식을 처분토록 했다. 재벌해체와 병행하여 재벌 관계회사 245개사의 주요 임원 중 심사를 거쳐 총 1535명을 해당 지위에서 추방하는 한편, 1948년 "재벌동족지배력배제법"을 제정하여 자회사에 대한 재벌가족의 인사권 지배를 봉쇄했다.

또한 1947년에 "독점금지법"을 제정하여 비금융회사의 타 회사 주식 보유 금지, 금융기관의 타회사 주식 5%의 한도내 보유 허용 등을 규정했다. 그러나 그 뒤 독점금지법의 완화로 금융기관과 법인들은 타회사 주식을 매입했고, 이러한 법인간 상호주식 보유 등을 통해 기업집단이 새롭게 형성되었다. 미쓰비시은행 등 6개 은행을 중심으로 "계열"(Keiretsu)이라고 불리는 기업집단이 형성되었다. 계열 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은행과 종합상사가 있고, 계열 소속기업 간에 주식 상호보유를 통해 다수의 기업들을 하나의 계열로 묶어주고 있다. 또한 계열내 주요회사 사장단 모임이 결성됨으로서 각종 회합을 통해 기업간 협조체제 유지 및 정보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특정한 가족이 지배하는 체제는 해소되었으므로 재벌은 해체된 것이다.

무리한 M&A로 두산, 금호아시아나, STX 위험

한국에서 재벌개혁의 호기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였다. 금융기관이 과다 해외차입으로 재벌기업에 대출을 해주고, 재벌기업들은 과잉투자로 과잉생산을 유발했고 그 결과 일부 재벌이 도산하고 결국 경제위기까지 치달았기 때문이다. 재벌은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렸고, 재벌총수들도 경영일선에서 후퇴하는 일본 재벌의 전향과 같은 대응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양극화 문제는 심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재벌들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크지 않았고, 과다차입에 의한 과잉투자는 재벌의 일시적인 실수 정도로 양해되었다. 결국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재벌개혁은 재벌대기업의 부채비율 인하 정도로 끝났다. 사외이사의 도입 등이 있었지만 총수가 계열사의 순환출자를 기반으로 모든 산하기업의 경영을 전횡하는 기업지배구조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의 스태그플레이션은 과거의 외환위기와 다른 측면이 있다. 장기 경제침체를 야기한 원인은 우선 과거 외환위기 이전과 유사한 재벌의 과다차입에 의한 과잉투자와 금융기관의 과다 대출 행태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는 기아자동차와 한보그룹의 도산, 외환위기 중에는 대우그룹의 도산 등이 있었다. 이번의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무리한 차입으로 인수 합병에 나선 두산, 금호아시아나, STX그룹 등이 경영난에 빠질 위험이 크다. M&A 붐 속에서 30대 그룹의 계열사는 최근 843개로, 지난 3년 사이에 179개나 불어났다. 대기업들의 대형 M&A는 대부분 빚을 내서 기업을 인수하는 LBO(Leveraged Buy Out) 방식이다. 30대 그룹 계열사의 부채총액은 2005년 3월 말 403조4420억 원에서 올해 3월 말 556조7360억 원으로 38% 급증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 초대형 M&A를 성사시킨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우 이 기간에 부채총액이 22조1740억 원으로, 96.4%나 늘었다. 그러나 두산·STX·금호아시아나 등 무리하게 빚을 내 대형 기업을 인수한 그룹마다 주가가 폭락하고 신용등급이 깎이는 등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조계완, "재벌과 은행, 죽음으로 가는 몸집불리기", <한겨레21>, 718호, 2008. 7. 10).

은행들도 무리한 대출로 수익성이 악화되어 부실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은행마다 대출 경쟁에 나서면서 예대금리차는 2005년 1.97%포인트에서 올 1분기 1.44%포인트로 크게 낮아졌다. 고유가, 경기침체와 물가·금리 상승으로 경영난에 봉착하는 기업들의 연체율이 점점 증가하고 가계의 이자상환 능력이 훼손되면서 부실채권이 급증할 소지가 있다.

재벌, 소득분배 불평등을 야기한 주범
▲ 이미 실패한 신자유주의적 처방에 집착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명박 정부. 친재벌정책은 경기침체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뉴시스

그런데 이번 경기침체의 요인에는 여기에 외환위기 이후의 소득분배 불평등 심화 문제가 추가되었다. 소득분배 불평등이 심화되면 민간소비가 위축되어 경기 침체가 장기화된다. 문제는 재벌이 소득분배 불평등 문제를 야기한 주범이라는 사실이다. 비정규직의 확대와 정규직과의 차별 확대는 외국자본과 결합한 대기업의 단기 수익성 위주 경영과 이를 위한 부당하도급 등 중소기업 경영 압박에 주로 기인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다수 국민들은 외환위기 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10년을 거치면서 인식이 변화되었다. 처음에는 비정규직으로 떨어지는 불운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래서 더 많은 사교육비를 들여 자녀들을 모두 대학에 들어가도록 했다. 학생들은 대학졸업 후 공무원이나 공기업, 대기업 등 안정된 직장을 얻기 위해 수년간 시험준비를 했다.

그러나 실업과 불안정고용 사태가 장기화되고 비정규직이 더 많아지고 차별이 심해지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서서히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하고 있다. 재벌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영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장기간 쟁의는 현대미포조선과의 싸움이었고, 포스코 하청업체 건설노동자의 투쟁은 민영화된 기업 포스코와의 싸움이었으며, 화물연대의 투쟁도 주요 화주들인 재벌대기업과의 싸움이었다. 광우병 우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는 0교시 수업을 해도 출구가 없는 현실에 절망한 초중고 학생들이 많이 참여했다.

감세와 규제완화…친재벌정책은 경기침체 심화

이번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대책은 국제원자재 가격의 상승에서 비롯된 인플레이션 억제보다는 장기화된 경기침체의 극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공황 당시의 경험을 참고하여 증세로 소득재분배를 확대하여 민간소비를 진작시키면서, 자산 거품과 부실채권 확대를 막기 위한 금융기관 규제 강화와 함께 재벌개혁을 진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 등으로 재벌들을 지원해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현행 25%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2%로 내리는 등 감세를 추진해 조세부담률을 2012년까지 20%대로 낮추겠다고 한다. 그러나 감세는 경제 활성화에 적절한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투자를 꺼리는 이유는 국내외 경제여건 악화 때문이지 법인세율이 높기 때문이 아니다. 4월 9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상장 제조업체 546곳의 2007년 말 현재 잉여금은 358조1501억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11.75% 늘어났지만 대기업일수록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 4월 29일 상장사협의회가 12월 결산법인의 2007년 설비투자 규모를 집계한 결과, 전체 투자 규모가 1.95% 감소했다. 또한 감세 혜택은 고소득층에 주로 돌아가는데 부유층은 감세해준 만큼 소비를 늘릴 수 없으므로 내수진작 효과가 없다. 오히려 감세는 소득분배 불평등을 악화시켜 민간 소비를 더욱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출자총액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등 재벌과 금융에 대한 규제 완화는 과잉투자와 투기적 행동을 격화시켜 경기순환을 심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빚어진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는 빅뱅 등 금융규제를 푼 결과 발생한 것이다. 예금조차 주식시장으로 빨려들어가면 주식시장의 거품 팽창과 붕괴는 피할 수 없다. 이에 국제금융계에서는 금융빅뱅이 잘못되었고, 1999년 폐지된 글래스 스티걸법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등 자본·금융 규제정책의 강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미 실패한 신자유주의적 처방에 집착하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법원이 아무리 재벌에 우호적인 정책을 펴고 판결을 내려도 국민들의 근본적인 인식이 변화되면 재벌은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삼성재벌 이건희가 회장직에서 물러난 것은 1930년대 일본의 재벌전향과 유사한 것으로 재벌이 조락기에 이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와 네티즌의 요구를 수용해 농심이 극단적 친재벌 편향을 보이는 <조선일보>에 광고하기를 거부한 것은 최종적 경제주권을 가진 일반 국민들의 힘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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