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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시장을 이긴 정부는 없었다"

정부 환시장 개입, 성공할까?…"불 키워놓을 때는 언제고"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본격화됐다. 한국은행도 정부와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끝 모르게 상승하던 원/달러 환율은 9일 하루 동안에만 30원 가까이 내려갔다.

환시장 전문가들은 그 동안 환율 상승을 부추기던 정부에 냉소를 보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한다. 정부의 반(反)시장적 외환시장 개입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 구두개입+한은 달러 매도=9년래 최대 낙폭
▲기획재정부 강만수 장관은 민생대책 현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9일 오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제7차 고위 당정협의회에 참석했다. ⓒ뉴시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27원80전 급락한 1004.9원에 마감됐다. 지난 9년래 가장 큰 낙폭이다. 지난 1998년 10월 9일 환율은 하루 동안 28.00원 하락한 바 있다.

점심시간에 맞춰 한은이 대규모 달러 매도에 나서면서 환율은 한 때 세자리 수로 떨어졌으나 다시 낙폭을 회복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오후 2시 45분경 기획재정부가 공식 구두개입에 나서면서 환율 하락을 거들고 나서자 더 이상의 회복은 없었다. 이날 하루 동안 외환당국이 시장에 퍼부은 달러 매물은 총 60억 달러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재정부와 한은의 공조가 단단한 모양새다. '실탄'이 풍부한 한은이 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재정부는 구두로 연일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들이 지난 7일 적극적인 환율 방어를 천명한 후 이틀 연속 환시장은 급락세를 보였다. 이번 급락으로 환율은 지난 4월 수준까지 떨어졌다. 4월 30일 원/달러 환율은 1002.6원이었다.

"영국 중앙은행도 조지 소로스에 졌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장기적 전망은 회의적이다.

우리선물 신진호 연구원은 "그 동안 시장 심리는 롱(달러매수)쪽이었는데 정부가 개입의지를 확실히 보여주면서 일단 방향 전환에는 성공한 것 같다"며 "1000원 선을 기준으로 단기적으로는 밑(환율하락)을 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경제연구팀 강지영 연구원도 "정부는 시장에 함부로 개입하지 않는다. 오늘까지는 구두개입으로 일종의 '경고'를 준 것이다. 만약 내일 시장이 반등 기미를 보인다면 더 본격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며 추가 하락에 무게를 뒀다.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한동안 강한 개입은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강 연구원은 적어도 이번 주 내내 정부의 시장개입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장기적으로 정부가 시장을 억누를 수 있느냐는 데 있다. 환시장 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었다는 말이다.
▲코스피 지수는 이날 또 하락해 1519.38까지 떨어졌다. 연중 최저치다. ⓒ뉴시스

키움증권 전지원 연구원은 "영국 중앙은행도 조지 소로스에 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진 다음 FRB(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미국의 중앙은행 격)가 아무리 금리를 낮춘다 해도 시장을 못 이기는 걸 보지 않았나"며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고 단언했다.

신 연구원은 "주식 시장과 유가가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 흐름을 정부가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외국인이 다시 국내 증시로 확연히 돌아왔다는 신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환율 상승 추세를 막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정부 개입이 시장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고 경고했다. 신 연구원은 "정부가 시장에 맞서면서 새로 '쏠림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실탄' 재고 수준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재 우리 외환보유고는 2500억 달러가 넘어 언뜻 보기에 정부의 시장개입 여력이 충분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

관련 지표로 정부가 갚아야 할 외채규모를 들 수 있다. 지난 4월 말 기준 단기외채(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외채)는 1735억 달러에 달한다. 이를 감안하면 정부가 실제 마음 놓고 환율 방어에 쓸 수 있는 돈은 급격하게 줄어든다.

"MB정부가 친시장? 오히려 반시장적이다"

실제 시장 일각에서는 격한 반응도 나온다. 새 정부 출범 초기 고환율 정책을 고집해 '불난 데 부채질'하다 이제 와서 부랴부랴 환율 안정에 나서 피해가 커졌다는 소리다. 시장 일각은 물론 언론과 정치권에서도 강만수 재정부 장관 경질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환시장 전문가는 "정부 역할은 어디까지나 '스무딩 오퍼레이션'이다. 환율 상승 시기에는 상승 압력을 낮춰 반대쪽 피해를 줄이고 하락 시기에는 역시 환율상승으로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처음 대외여건이 상승 지표를 그릴 때 덩달아 같이 움직이지 않았나? 불난 데 부채질한 격이 아니고 뭐냐"고 비판했다.

다른 시장 참여자는 "출범 초기 정부가 '친시장'을 표방했지만 오히려 '반(反)시장적'이다"고 비꼬았다.

재정부는 출범 초기 고환율 정책을 강력하게 추구했다. 수출 기업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부작용이 커지자 뒤늦게 환율 안정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이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이용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 부작용을 키워놓고 이제 와서 이를 고치기 위해 외환을 낭비하는 격이다.

안타까운 점은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정작 수출기업도 손실을 입고 있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Knock-In, Knock, Out)' 가입 기업이다.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작년 이 상품에 가입한 기업은 고환율 여파를 맞고 수천억 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428억 원의 손해를 봤다. 대우조선해양의 피해액도 1391억 원에 달한다.

중소기업 또한 마찬가지다. 모나미, 백산, 우주일렉트로닉스 등은 수백억 원에 달하는 피해액을 공시해 주가 급락의 된서리를 맞았다. 지금까지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에 피해를 접수한 중소기업은 178개에 이른다.

정부의 환시장 개입은 주식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환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져 주식시장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당장 이날 정부가 환율 찍어내리기에 나서자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수출기업 주가는 3%가 넘게 떨어졌다. 처음 얽혀버린 실타래를 풀 방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전 연구원은 "정부의 환시장 개입으로 외환시장 불확실성이 늘어나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며 "정부의 개입은 결국 시장에 왜곡을 불러온다. 정부가 사실상 패를 다 보인 상황에서 외국인 배만 불려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수출기업 목 죄는 키코

키코(KIKO)는 주로 수출업체가 사용하는 환위험 헤지용 옵션거래다. 시장환율이 일정한 범위 안에 머물러 옵션 만기시 행사환율 이하가 되면 행사환율로 수출대금을 싸게 팔아 행사환율과 시장환율의 차액만큼 이익이 발생한다.

반면 계약기간 중 한 번이라도 녹아웃(Knock Out) 환율 아래로 시장환율이 떨어지면 옵션은 무효가 된다. 이 경우 수출대금은 고스란히 환위험에 노출되는 구조다.

최악의 상황은 계약기간 중 시장환율이 녹인(Knock In) 위로 치솟아버릴 경우다. 이때는 옵션 가입자가 계약금액의 두 배를 행사환율로 매도해야 한다.

팔아야 하는 달러가 수출대금의 두 배가 돼 모자라는 금액은 시장환율에 맞춰 비싼 금액으로 사들여 행사환율만큼 싸게 팔아야 한다. 막심한 손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작년 키코 옵션을 이용한 우리나라 수출기업이 처한 경우다.

예를 들어 약정금액 10만 달러로 녹인 환율 950원, 행사환율 930원인 키코에 A기업이 가입했다면, 지금 상황에서 이 기업은 930원에 약정금액의 두 배인 20만 달러를 시장에 팔아야 한다. 현재 환율이 1004원이니 이 기업은 계약 당 70원에 가까운 손해를 보는 셈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환율은 달러당 930원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올해 3월말 990원대까지 치솟더니 4월말에는 1002원, 지난 4일에는 1050원까지 치솟았다. 우리선물 신진호 연구원은 "작년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환율을 900원 대로 예상했다"며 "대부분 기업이 그 수준에 맞춰 키코에 가입했으니 손해가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이 이처럼 오르면서 수출업체의 손실 규모는 시간이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지난 3월말 금융감독원이 계산한 키코의 평가손실은 2조5000억 원이었다. 당시 기준 환율은 991원이다. 현재 환율로는 5조∼6조 원가량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키코 손실을 두고 은행과 기업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지난 7일 공식 해명자료를 통해 "기업이 스스로 판단한 거래 손실의 책임을 은행에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반면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은행이 대출 연장시점에서 키코 가입을 권유하는 일명 '꺾기' 영업 등 권력을 이용한 불공정거래에 나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둘의 공방이 커지면서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키코 가입의 부당약관 여부에 대해 조사 중이다.

공정위 약관제도과 관계자는 "약관심사 자문위원회가 소집됐다. 자문위원회 결과를 토대로 결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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