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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섬겨야 할 국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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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섬겨야 할 국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문] 시국법회 여는말씀

사부대중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함께 하시는 시민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서울 도심 한가운데를 정진의 마당으로 삼고 있습니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수호를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온 생명의 무리가 바로 보살의 정토"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중생을 떠나서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것은 소리를 없애고 메아리를 구하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두 달이 넘도록 생명과 평화를 갈구하는 촛불이 타올랐던 곳인 동시에, 물리력으로 그것을 끄려는 국가의 폭력이 저질러졌던 곳입니다.
  
  촛불과 물대포! 이 둘의 관계는 지금 한반도에 사는 우리네 삶의 실상을 비극적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국가 권력의 원천인 국민을 향해 국가가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국가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민주 국가에서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국민의 정당한 주권행사가 국가 권력의 폭력에 의한 공포 때문에 주저앉고 말면, 앞으로 우리 국민의 삶은 생존 자체가 굴욕이 됩니다. 인간적 자존이 무너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용납되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불제자로서 이러한 상황을 그냥 지켜본다는 것은 여러 부처님과 조사님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기도 합니다.
  
  경전에 이르기를 "번뇌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능히 지혜의 보배를 얻을 수 없다"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이 법회는 단순히 정부의 폭력과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을 성토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리네 삶을 성찰하는 지혜와 자비의 마당이어야 합니다. 국가가 국민을 적으로 만드는 비극적 상황을 공업(共業)의 소산으로 인식하는 대승 보살의 마음으로 참회와 구세(救世)의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옛 선사께서 이르시기를 "어디에서나 주인으로 살고, 지금 이곳을 진리의 땅이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해탈의 삶입니다. 해탈의 삶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조건들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뛰어넘어 자유롭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10대 소녀들이 처음 밝히고 나선 2008년 오늘의 '촛불'은 인간 존엄의 몸짓이자 자유로운 삶을 희구하는 본능적 자각이었습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2008년의 100만 촛불은 이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사실을 뜨겁게 확인시켰습니다. 국가 권력의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촛불이 이룬 국민 승리의 핵심은 바로 그것입니다. 유모차를 탄 아기와 교복을 입은 소녀는 비폭력과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싸움을 전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승리했습니다. 이러한 촛불의 힘을 세계가 주목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나라에서 세대를 초월한 거대한 촛불 대중을 한국 사회의 역동성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표피적 해석입니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따라 한없이 초라해지는 개인의 실존적 비애를 위로하는 인간 존엄의 메시지였습니다. 촛불은 인간 존엄과 생명에 대한 경외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마음의 언어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 정부와 보수 언론은 촛불 대중을 '폭도'로 몰아가려 했습니다. 옹색하게도 집시법을 들먹이며 범죄의 낙인을 찍으려 했습니다. 쇠고기 졸속 협상으로 비롯된 정당한 국민 저항에 따른 난국의 책임을 이른바 '촛불 세력'에 전가하려 했습니다. 참으로 초라한 발상입니다. 만일 정부가 앞으로도 집시법을 들먹인다면 그것은 현 정부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현 정부를 떠받치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둥인 3·1운동과 4·19, 그리고 6·10항쟁을 허물어 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1운동과 4·19와 6·10항쟁이 일제와 이승만 정부 그리고 5공 정부의 보호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까?
  
  간곡히 바라건대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물리적 공권력과 보수 언론의 방패에 숨지 마시고 진솔한 인간의 모습으로 국민과 진정한 소통을 해야 합니다. 지금 국민이 절실히 바라는 소통의 형태는,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항복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진심으로 국민에게 사과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국민들은 '감동'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두 번이나 사과를 했는데 또 사과냐고 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강경 진압으로 의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감히 저는 이렇게 말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권력의 정점에 섰는데 더 이상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나로서는 신념을 가지고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심(下心)만이 천심을 얻는 길인 것 같습니다.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려고 최대한 노력을 했습니다. 앞으로의 문제는 함께 풀어 가십시다." 하고 말입니다. 물론 촛불 시위 과정에서 구속된 사람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고 수배 해제를 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부디 창조적 발상으로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뛰어넘을 화합의 촛불을 들고 나오십시오. 물로 불을 끄려 들면 모두가 패배자가 되고 맙니다. 더 큰 불로 세상을 밝히자고 제안하십시오. 그러면 국민들은 믿음으로써 기회를 줄 것입니다. 세계 그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열정적으로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이 국가의 파탄을 바랄 리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국민의 대통령이라는 것을 행운으로 받아들이십시오. IMF 때 금모으기에 나서고 얼마 전 태안 기름 유출 사건 때 자발적으로 현장에 달려가던 국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책임의 소재와 관계없이 먼저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하던 그 국민과 현재의 촛불 대중이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이 섬겨야 할 국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세상을 있게 한 공업 중생으로서, 모든 허물을 나에게로 돌려 비추는 참회의 기도를 통해 하늘과 자연이 감응하여 우리 모두를 돕도록 하십시다. 마치 빗물이 온갖 초목을 가리지 않고 적셔서 자라게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주인 노릇하는 삶이자 해탈의 삶일 것입니다.
  
  정녕 오늘 우리들의 기도는 촛불의 정신을 생명 평화의 기운으로 승화시켜 우리네 삶의 터전을 진리의 땅이 되게 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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