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이제 정말 죽었어."
26일 새벽 1시 30분경, 광화문 사거리에서 물대포를 살수하며 몰려오는 전경을 보던 한 여성은 울부짖으며 이렇게 외쳤다.
이날 경찰은 촛불 집회가 끝나고 거리에 모여있던 1만 여명의 시민에 전경을 대거 투입해 진압에 나섰다. 3대의 전경 버스를 밧줄로 끌어내며 꽉 막혀있던 경복궁역 방향 골목으로 행진을 시도하며 환호했던 이들은 금세 "전경들이 몰려온다"고 외치며 뛰어오는 이들의 경고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간 촛불 집회가 끝난 뒤 시민들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경찰버스로 봉쇄된 거리에서 별다른 사고없이 다음날 새벽까지 시위를 벌여 왔었다. 경찰은 유독 이날 병력을 대거 투입해 도로를 모두 봉쇄하며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이전과 다른 이유를 찾자면, 이날은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장관 고시 관보 게재를 강행하기로 예고한 날. 시위대로 인해 부상을 입은 전경도 없었다. 시민들이 '공격'한 것은 오로지 버스였다. 경찰이 보호하려는 건 질서도 아니고, 시민도 아니고, 주민도 아니고, 전경도 아니었다. 그들이 보호하려던 건 단지 '권력'이었다.
이런 경찰을 두려워하는 이는 없었다. 차 위에 올라가 핸드마이크를 붙잡고 "대열을 맞춰서 밀어버려"라며 전경에 선동적인 지시를 연달아 내리는 서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의 목소리에 시민들은 "오늘 밤에 모두 구치소로 갑시다"라며 받아넘겼다. 이날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에게서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들을 수 있던 단어는 '분노'였다.
"불법주차된 경찰버스를 의식있는 시민이 견인하려는 것"
"생각이 아니고 분노에 의해 몸이 움직인다. 지금까지 시민들은 화를 참으며 계속 정부에 말해왔다. '말하면 듣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런데 이제 말로 해선 안 되는 정부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만약 길을 막지 않고 내버려뒀으면 말로 끝났을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 정부, 정말 말 안 듣는다.'"
경찰의 진압이 있기 전, 목장갑을 끼고 경찰버스를 끌어내던 임 모씨(34)는 사람들이 버스를 끌어내며 청와대로 행진하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나는 그전까지 '촛불 집회가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온라인에서도 전개했던 사람"이라며 "지금 이 시민들의 행동은 폭력이 아니라 불법주차된 경찰버스를 의식있는 시민으로써 견인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안 하니 우리가 해야하지 않나"라며 "더 이상 시민이 바보같은 시민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촛불 집회는 시민의 자주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4.19 민주화 운동이 아닌 3.1 독립운동에 비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매번 촛불 집회에서 '버스 끌어내기'가 나올 때마다 외쳐졌던 "비폭력"이라는 반대 구호는 이날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한 대씩 버스가 끌려나올 때마다 시민들은 큰 박수를 보냈고, '으쌰' 소리를 함께 내줬다. 장갑 없이 밧줄을 끌어내는 사람들을 위한 종이가 필요하다는 소리에 너도나도 가방에 있던 신문지 등을 꺼내 모았다.
'으쌰' 구호에 맞춰 호루라기를 불며 응원하던 이미란(32) 씨는 "시민들이 50일 동안 밤샘 촛불 시위를 했다. 그동안 우리는 비폭력을 외쳤다. 우리 의사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비폭력을 유지했다. 그런데 지금 결과를 보라"고 말했다.
그는 "경복궁역까지는 가지도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흉물같은 버스를 끌어냄으로써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참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심지어 버스 안에 있던 전경이 나올 때도 시민은 비폭력을 연호하며 그를 보호한다. 지금 시민들이 과연 폭력적인가"라고 되물었다.
홍모 씨(36)는 "50일이 지난 촛불 집회인데도 정부가 귀를 막고 있는데에 다들 분노한 것 아닌가"라며 "이게 바로 국민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고시 강행? 분명한 건 촛불의 숫자가 2~3배 늘 거라는 점"
이날 촛불 집회는 밤이 깊어지면서 참가자가 오히려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대부분 고시 강행 소식을 듣고 도저히 참지 못해 나왔다고 했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대전에 있는 회사 일을 마치자마자 달려왔다는 최원혁(35) 씨는 "재협상과 마찬가지라고?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정아 씨(42)는 "최근 KBS 앞 촛불 집회에 자주 갔는데, 고시 때문에 오늘은 여기로 왔다"며 "말도 안 되는 고시를 강행하는 정부는 마치 국민이 깨어있는 걸 모르는 옛날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워낙 정부가 무식하긴 하지만, 국민이 반항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시민들이 경찰버스를 끌어내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홍의택(38) 씨는 "인터넷에서 소식을 보고 왔다. 이번 주에는 정말 못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참지 못하고 나왔다. 계속 고시를 강행하겠다는데 국민과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논의를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계속 길을 막고, 말을 바꾸는 게 반복될 수록 시민의 분노가 누적되어서 항쟁으로 변할 것"이라며 "극단적 상황에 가지 않으려면 정부가 이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나온 대부분의 시민들은 26일 정부가 예고한 대로 고시를 강행한다면 더 많은 시민이 촛불 집회에 참가할 것이라는 데 한목소리로 동의했다. 70만 명이 모였던 6월 10일만큼 많은 이들이 집회에 나올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임 모씨는 "고시를 강행한다면, 분명한 건 이 숫자가 2~3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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