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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구하자고 다 죽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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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구하자고 다 죽일 수는 없다"

[인터뷰] 기륭전자 배영훈 대표이사

열흘이 다 돼 가고 있다. 땡볕과 장마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는 6월에 아줌마들이 곡기를 끊고 버티고 있다. 파견 노동자로 몸담았던 회사 앞에서다. 1000일 넘게 요구해 왔던 '복직'은 될 듯 될 듯 하더니 끝내 원점으로 돌아갔다.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의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은 "회사가 우리 목숨을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불법 파견 논란을 처음으로 국내에서 불러일으키며 지난 2005년 파업을 시작한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은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 단식이 끝나는 길은 어디쯤에 있을까?

이들의 "일터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랜 파업의 한 고리를 쥐고 있는 것은 기륭전자 사 측이기 때문이다. 단식농성 6일째였던 지난 16일, 기륭전자의 배영훈 대표이사를 만나 회사 쪽의 생각을 들어봤다. (☞관련 기사 : 기륭전자 비정규직 '집단 단식' 돌입)

"현재로서는 그들 고용 가능성 제로다"
▲기륭전자 배영훈 대표이사. ⓒ기륭전자

비록 불발로 끝나긴 했지만, 배영훈 대표이사가 부임한 뒤 양 측의 협상이 모처럼 활기를 띠기도 했다는 점에서 특히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하지만 배 대표는 "처음 기륭에 왔을 때 저 분들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어떻게든 해결해보고 싶었지만 직원들이 너무 반대가 심했다"며 "현재로서는 그들을 고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양 측은 지난 5월 11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교섭을 벌였고, 새로 회사를 만들어 일정 기간 교육을 받은 뒤 1년 후 직접 고용안에 막판 잠정 합의를 했었다. 배영훈 대표이사는 "그때는 희망에 부풀었었다. 노사가 어렵게 문제도 해결하고 비정규직 탄압의 대표 사업장처럼 된 불명예도 씻어버리고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엉뚱한 곳에서 틀어졌다. 기륭전자 직원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배영훈 대표이사는 "어쨌든 나중에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인데 현재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며 직원들 의견 수렴의 필요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배 이사는 "직원들이 그렇게까지 반대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차장급 이상 직원의 92%가 반대였다. 24명 중에 22명이 반대한 것이다.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80% 가량이 반대한다고 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현재 농성하는 사람만 해주게 되면 지금은 파업을 그만둔 사람까지 고용을 요구하고 나설 수 있다", "파업 당시 라인을 점거해 제품을 던지고 밟아 불량품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정규직이 된다고 열심히 일하겠냐" 등이었다.

"사태 해결 희망 부풀었었는데, 감정의 골 생각보다 깊었다"

배영훈 대표이사는 "생각보다 감정의 골이 깊었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이 반대하는데 내가 밀어붙일 수는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사실 내가 합의를 해보려고 한 것은 인도적 차원이었다. 기륭전자가 저 사람들을 고용할 어떤 의무도 없다. 법적으로도 대법원에서까지 다 끝난 문제다. 사실 기륭전자의 직원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들 아닌가."

현재 농성 중인 여성 비정규직이 직접고용이 아니라 하도급 업체를 통해 기륭전자에서 일했던 것을 강조하는 말이었다. 기륭전자는 노동부와 검찰로부터 불법 파견 판정을 받았다. 파견 노동자를 사용해서는 안 되는 제조업에서 파견 노동자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불법 파견의 경우 정규직 고용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법적인 것은 이미 다 해결됐다"고 강조했다. "파견법 위반이라고 해서 당시 대표이사가 500만 원, 회사가 500만 원을 내 총 1000만 원의 벌금을 냈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우리만 (불법적으로 파견 노동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이 주변이 다 그렇다"고 덧붙였다.

"정규직화 주장, 틀린 것은 아니지만 꼭 기륭만의 문제 아니다"
▲기륭전자 배영훈 대표이사는 "직원들이 반대하는데 내가 밀어붙일 순 없었다"고 말했다. ⓒ기륭전자

그는 "그들의 정규직화 주장이 꼭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그것은 기륭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솔직히 제조업에서는 파견 안 쓰는 곳이 없다. 은행처럼 돈 많이 벌면서 비정규직을 지나치게 많이 쓰는 것은 문제지만 적자 내면서 다 정규직으로 쓸 수는 없지 않나."

그는 "제3의 안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직접 고용 외의 방법으로 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제3의 안'은 무엇일까?

"어떤 식으로든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향으로 해결하고 싶다. 어쨌든 기륭전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너무 오랫동안 투쟁해 생활의 문제가 있으니 금전적으로 도와달라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는 "이 상황에서 계속 정규직화 주장을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3년 동안 회사 상황도 바뀌었고 여러 사정이 있는데 똑같은 주장을 계속한다면 그건 정치적 구호일 뿐"이라는 것이다.

배영훈 대표이사는 '슈퍼맨' 얘기로 인터뷰를 정리했다.

"슈퍼맨이 하늘을 날다가 기차 길에 묶여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그 여자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기차는 바로 앞까지 달려오고 있었다. 묶인 끈을 풀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 슈퍼맨은 괴력을 발휘해 한 손으로 기차를 세웠다. 여자는 살렸지만 기차는 전복돼 기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은 다 죽고 말았다. (기륭 문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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