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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동맹'을 고발한다"

[광우병 사태 5년의 기록] 광우병 미국소 발견부터 6·10촛불항쟁까지

퇴근 직전에 걸려온 전화는 대개 반갑지 않다. 수습기자들과 회식을 앞둔 어느 저녁, <프레시안> 편집국 전화가 울렸다. MBC <PD수첩> 팀이 건 전화다.

수화기 너머에서 이날 <프레시안>에 게재된 기사에 관한 질문이 넘어왔다. 기사 내용은 인간 광우병 증세를 보이던 22세 미국 여성이 사망했다는 것. 외신에 보도된 내용인데, <프레시안>을 제외한 국내 언론은 모두 무시했다. 외신에 소개된 내용을 수습기자가 간추려 짧은 기사로 보도했다.


<PD수첩> 팀은 기사를 쓴 수습기자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당시 <PD수첩> 팀은 방송 아이템을 찾던 중이었다. 막 자리를 뜨려다 엉거주춤 전화를 받은 수습기자도, 다른 기자들도 그날 저녁 웃고 떠들며 회식을 했다.

통화 내용을 잊어버렸을 즈음, MBC PD수첩이 광우병을 다뤘다. 반가웠다. 지난 5년 동안, <프레시안>은 광우병의 위험에 대해 꾸준히 보도해 왔다. 하지만 다른 매체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프레시안>의 광우병 관련 기사는 대부분 단독 보도이거나, 최초 보도인 경우가 많았다. <프레시안>의 취재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다른 언론이 무관심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영 씁쓸했다. 그런데 광우병의 위험을 다룬 내용이 공중파에 소개된다니, 반가울 수밖에.

모두가 알고 있듯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온라인 게시판에는 온갖 종류의 '광우병 괴담'이 떠돌았다. 진짜 '괴담'도 있었지만, '괴담'이라는 누명을 쓴 진실이 더 많았다.

'이런 반응이 과연 오래 갈까?' 반신반의했다. 2003년 말, 미국에서 광우병 감염 소가 발견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금지됐다. 하지만 미국 축산업계와 이들의 로비를 받은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 끊임없이 수입 재개 압력을 넣었다. 이런 과정을 줄기차게 보도했지만, 언론 대부분과 정치권은 별 반응이 없었다. 언론과 정치권이 시큰둥하니까, 시민들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지난 5년 동안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소수 활동가만의 관심사였다.

이런 경험 탓에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폭발적인 반응을 접하면서도 '곧 시들해지겠거니' 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10대 청소년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촛불 소녀들이 머문 자리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어떤 이는 '1968년 5월'의 프랑스를 입에 올렸다. 다른 더 많은 이들은 '1987년 6월'의 한국을 이야기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전개였다.

대부분의 언론은 뒷북을 쳤다.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은 그나마도 시기를 놓쳤다. 하긴, 기득권에 가까운 집단일수록 통념에서 벗어나는 게 어려운 법이다. 오랫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던 개혁 성향 매체들은 모처럼 성가를 날렸다.

지난 5년 동안, <프레시안>을 통해 발언했던 '의인 삼총사'가 있다. 송기호 변호사, 박상표·'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정책국장,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등이다. 이들은 광우병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가 매우 드물었던 시절부터 <프레시안> 기고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을 경고해 왔다.

그리고 촛불 정국이 열린 뒤, 이들이 그동안 <프레시안>을 통해 발표한 글들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에 비판적인 개혁 성향 매체들에 논리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개혁 성향 매체에서 송기호 변호사나 박상표 수의사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내용을 요약하다시피 한 기사를 접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서울 한복판에서 출렁이는 촛불의 물결은 <프레시안>을 통해 꾸준히 광우병 위험을 경고해 왔던 외부 필자와 기자들에게 그 자체로 뿌듯한 감동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씁쓸함이 남는다.

<프레시안>에서 광우병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면, 도무지 끝을 찾기 힘들 정도로 쏟아진다. 광우병 문제가 간단한 것이었다면, 이처럼 많은 기사를 써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게다. 광우병 문제는 특정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이번 정권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결정이 이토록 갑작스럽게 내려진 것은 한미FTA 비준을 위한 포석이었다. 현 정부가 인정했듯,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한미FTA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한미FTA는 지난 정권과 현 정권이 모두 기를 쓰고 추진한 사안이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여러 면에서 몹시 대조적이다. 그런데 이 두 정권은 한미FTA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을 취했다. 한미FTA와 쌍을 이루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가 간단한 게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인 한미FTA에 대해 정교하게 해부하는 글을 꾸준히 발표해 왔던 송기호 변호사는 지난 9일 <프레시안>에 실린 "동네 곱창집 노부부의 눈물"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자동차와 철강을 이유로 재협상을 거부함으로써, 이제 촛불은 더 이상 쇠고기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철강과 자동차는 대기업 중심의 수출 주도형 경제를 상징한다. 이들 분야에서 이익을 보는 계층은 광우병 검역 기준 신뢰성 상실로 인하여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계층과 동일하지 않다."

이런 설명은 한미FTA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미FTA 추진은 자동차와 철강을 수출하는 대기업의 이익을 주로 고려한 결정이었다. 또 영미식 질서에 익숙한 일부 엘리트 집단과 금융자본가들이 주도한 결정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각료들은 한미FTA를 성사시키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세력은 한미FTA 추진의 걸림돌 취급을 받았다. 정권을 이어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한술 더 떴다. 영어로 쓰여진 협정문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을 내렸다.

몹시 대조적인 두 정권에서 드러나는 공통분모들은 한미FTA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추진하는 세력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재벌, 이들과 결탁한 권력, 이들에게 기생하는 언론, 미국 식 '승자독식 논리'를 이상으로 여기는 일부 엘리트 집단 등으로 구성된 동맹이다. 어떤 이들은 이들을 '광우병 동맹'이라고 부른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 동맹은 더욱 견고해졌다. 하지만 거리에서 타오르는 촛불 앞에서 그동안 어둠에 가려 있던 '광우병 동맹'의 알몸이 드러나고 있다.

촛불의 힘이 광우병 동맹을 허물 수 있을까? 아직 대답하기 이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광우병 동맹'이 힘을 발휘하는 현실을 제대로 보려면, 과거부터 차근차근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프레시안>은 꾸준히 광우병 동맹을 고발해 왔다. 이 과정에서 광고가 끊어져 재정적인 곤경을 겪기도 했고, 일부 누리꾼들에게서 격렬한 비난을 듣기도 했다.

지난 5년 동안 <프레시안>이 광우병 동맹을 고발하며 게재한 기사 가운데 일부를 골라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 시기 별 광우병 관련 기사 모음

2003. 12~2004. 10
미국에서 광우병 소 발견
-미국, 한국ㆍ일본 쇠고기 시장 개방 압력

2004. 11~2006. 1
"한국 정부, 부시의 고민을 떠안다"
- 미국의 쇠고기 개방 압력, 한국은 적극 화답

2006. 1~2006. 11
한국 정부 "쇠고기 빗장 풀겠다. 미국과 FTA 맺자"
-쇠고기 미리 내주고 시작한 협상

2006. 11~2007. 6
"쇠고기 속 뼛조각, '광우병 동맹'을 당황하게 하다"
-한미FTA '딜 브레이커'로 떠오른 광우병 쇠고기

2007. 6~2007. 12
2007. 6. 30.…한미 대표, 한미 FTA 협정문에 서명
- "동북아 금융 허브 국가?" vs "국제 광우병 허브 국가?"

2008. 1~2008. 4
이명박 당선…FTA, 쇠고기에 무방비 정권 출범
-물 만난 미국, 설설 기는 한국

2008. 4. 18~2008. 4. 28
미국산 쇠고기 무차별 수입 재개
-검역주권 전면 포기…축산농가는 절망

2008. 4. 29~2008. 5. 3
촛불, 타오르다
-촛불소녀들이 거리에 나섰다

2008. 5. 4~2008. 5. 19
영문 해석도 못하는 정부, 속속 드러나는 진실
- "협상 시작 전에 이미 미국 측 요구 수용했다"

2008. 5. 20~2008. 5. 21
"거짓말, 또 거짓말"
-"'추가 협의'는 없었다"

2008. 5. 22~2008. 5.29
해답은 '전면 재협상'이다"
-"'광우병 고시'는 무효다"

2008. 5. 30~2008. 6. 11
"100만 촛불, 진실을 외치다"
-'꼼수'로 대응한 정부…"'촛불 대장정'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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