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쇠고기 파문과 관련해 미국 측에 요구키로 한 내용은 '재협상'이 아닌 자율규제협정(VRA)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정청이 3일 수뇌부 회동을 통해 "재협상을 포함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기존의 '재협상 불가'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미국이 재협상 요구에 응할 가능성이 낮은 점을 감안해 '재협상 외의 방법'에 방점이 찍혀 있어 미봉책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정부의 태도변화를 예의주시하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자율규제협정은 국민 기만"
이날 오전 한승수 국무총리, 류우익 대통령실장, 강재섭 대표 등 여권 수뇌부가 모인 당정청 회의 결론은 "국내 상황을 고려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가용한 외교채널을 통해 미국과 문제해결 방안을 찾기로 했다"는 것. 회의 결과를 전한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은 버시바우 대사 접촉과 관련해 "오늘 내일 중으로 만날 것이며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조 대변인은 "30개월령이 넘는 쇠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다양한 대책을 논의키로 했다"며 "장관 고시의 관보 게재도 종합적 대책이 나올 때까지 보류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권의 이 같은 방침이 실질적인 재협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날 당정청이 논의한 것도 재협상 보다는 협상 외의 '다른 방법'에 맞춰졌기 때문. 조 대변인은 "협정문을 바꾸지 않는 다른 방법을 구하는 것으로 미국과 타진 중"이라면서 "계약서는 그대로 두되 그 외의 방법을 강구하는 것을 논의했다"고 확인했다.
오전 회의의 주된 논의 사항에 대해서도 그는 "(미국이) 노(NO) 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협정문을 바꾸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는지를 논의했다"고 덧붙였다. 조 대변인은 "협상의 문항 자체를 바꾸려면 미국이 맺고 있는 97개국의 쇠고기 시장 조약이 바뀌어야 하는데, 이것은 미국 쇠고기 협상의 기본 원칙이 바뀌는 것"이라며 재협상엔 난색을 표했다.
여권 수뇌부가 논의한 '다른 방법'에 대해 조 대변인은 "예컨대 국내 수입업자들에게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자율규제협정을 미국에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쇠고기 협상 결과는 그대로 두되 30개월령 이상이 되는 쇠고기에 한해서 6개월이나 1년 등 일정기간동안만 수입을 금지시키는 방법이다. 이는 남경필, 박진 등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이 주장해 온 방안이다.
하지만 이는 재협상과는 전혀 다른 의미여서 여론 무마용 꼼수라는 지적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송기호 변호사는 이에 대해 "자율규제협정은 세계무역기구(WTO) 농업협정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가 언급한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출 중단'이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또 한 번 국민을 기만하는 것에 불과하며 더 큰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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