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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에는 강기갑ㆍ진중권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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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에는 강기갑ㆍ진중권밖에 없나?"

[촛불집회 참가기] '지도'가 아닌, '기획'하는 진보를 바란다

청계천을 벗어나 종로, 을지로, 퇴계로를 구불구불 뱀처럼, 흐르는 물처럼 출렁거리는 촛불의 행진은 한 편의 오케스트라였다.

누군가의 '모기 목소리'가 군중의 함성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무런 질서도 없는 군중(群衆)으로만 보이는 사람들은, 그러나 하나의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내 옆에 서 있던 목소리가 크지도 않은 한 여성이 "장관고시 철회하라"라고 모기 목소리로 외쳐도 하나, 둘씩 구호를 외치고 있지 않던 사람이 따라하면서 점점 퍼져나갔다. 누군가가 선창을 하면 하나의 점에서 점점 파도를 이루고 전체로 퍼져 나갔다.

행진하는 사람들 - 이들을 절대 운동권 용어로, '대오(隊伍)'라고 부르지 말자 - 이 만든 가장 유쾌한 '예술'은 퇴계로에서 만들어졌다.
▲ 흐르는 물처럼 출렁거리는 촛불의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프레시안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명박은 회개하라!"

퇴계로 지하차도 앞에서 행진이 막힐 때쯤 갑자기 "예수천당, 불신지옥"이 새겨진 커다란 붉은 십자가가 행진 가운데로 끼어들었다. 순간,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이 당황하고 웃음을 터트리자 장난기 많은 사람 하나가 외쳤다.

"이명박은 회개하라" 사람들이 "와!"하고 함성을 지르며 그 구호는 삽시간에 전체 군중에게로 번져나갔다. "이명박은 회개하라!", "이명박은 회개하라!"

이전의 운동권 집회처럼, 누군가 앞에서 하얀 장갑을 끼고 선창을 하면 줄 맞춰서 행진하며 그저 따라 외치는 그런 행진이 아니었다.

중간 중간 '대표'로 보이는 사람들이 깃발 밑에서 자기네 '대오'를 '지도'하는 모습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절대적이었다.

운동권이라면 절대 같이 들고 있지 않을 '다함께'가 나눠준 피켓과 '진보신당'이 나눠준 피켓을 겹쳐 든 사람들이 다수였다. 난 '진보신당', 난 '다함께'니 너희가 나눠준 것은 절대 들 수 없다고 외면하는 사람들은 '운동권'뿐이었다.

"귀뚜라미는 지휘자가 없어도 오케스트라를 이룬다"

아마 네트워크 이론을 공부하고 신봉하는 학자들이 있었다면 사회운동에서 자신들의 이론이 실연(實演) 되는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지휘자가 없어도 어떻게 귀뚜라미들의 울음소리가 서로 동기화되어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되는지를 연구하고 설명하는 것이 네트워크 이론이다.

귀뚜라미들은 여러 마리를 모아 놓으면 처음에는 서로 울어대는 바람에 불협화음이 나오지만, 곧 서로가 서로의 목소리에 감응하여 하나의 교향곡으로 조율된다.

반딧불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각자가 무질서하게 불을 밝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서로가 서로의 신호에 귀 기울이고 감응하여 신기할 정도로 일제히 불을 밝혔다가 끈다. 주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자기를 맞추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 '대오'라는 이름에서 보이는 것처럼 상명하복, 일방통행의 조직이 아니라 - 연결되어 감응하기 때문이다.

"수백 명이라도 연행하겠다."…배후가 없으니 다 잡아들일 수밖에
▲ 거리에 나선 시민들의 '배후'는 없다. ⓒ프레시안

반딧불이와 귀뚜라미에 배후가 없는 것처럼 이 촛불의 오케스트라에도 배후는 없다.

한나라당이나 정부와 달리, 경찰청장은 이걸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수백 명이라도 연행하겠다." 배후가 없으니 다 잡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행진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늘어났다. 퇴계로를 지나 다시 종로로 방향을 틀 정도가 되자 사람들이 "뒤를 좀 봐!"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촛불이 길거리에 넘실거리고 있었다. 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감탄과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높은 빌딩 안에 '갇혀 있는' 회사원들도 창밖을 내다보며 박수를 쳐주곤 하였다.

누군가가 탄성을 질렀다. "어머, 87년이 재연되려나 봐!"

그러나 87년의 재연이 아니다. 행진이 퇴계로에서 멈칫거리며 명동 쪽으로 방향을 틀자 '베테랑 운동권'이 외쳤다. "아니, 저리로 가면 어떻게 해. 시청 쪽으로 가야지!" 지도부가 없는 탓을 하거나, 아님 다른 운동단체의 '음모'로 생각한다.

"스네이크 행진, 흐름과 리듬이 있을 뿐"

그러나 이건 스네이크 행진(Snake March)이다. 어디가 막히면 막힌 곳을 뚫기도 하지만 안 막힌 대로 흘러가는 그런 행진이다.

시애틀이나 파리 등 반(反)세계화 행진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다. 오타와에서의 G8반대 시위에서는 시위대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주택가 쪽으로 시위가 흘러들어갈까 봐 주택가 골목에 가스총을 찬 경찰관이 배치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예측할 수 없고, 감시할 수 없으며, 지도할 수 없다. 시애틀과 제노바 등지에서 시위가 벌어졌을 때 헬기가 뜨고 골목골목마다 경찰과 정보원이 배치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스네이크 행진에는 단지 흐름과 이 흐름의 리듬이 있을 뿐이다. 이 흐름과 리듬에 감응된 사람들이 뱀처럼 골목 골목을 누비며 점점 더 불어난다.

민주주의가 광장에서 나왔다고 했던가.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수는 골목에서 불어난다. 행진은 다시 종로로 향했고, 그곳에서 격렬하게 경찰과 대치하였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소식 등은 이미 다른 매체에서 많이 다루었으니 생략한다.)

진보정당 대표들을 뭐 하나?

"이명박 아웃", "이명박은 퇴장하라." 미국산 쇠고기와 이명박에 분노해서 나온 일반시민들이야 당연히 그런 것이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참여는 전혀 체계적이지 않다. 대오를 지도하라는 말이 아니라 참여가 전혀 조직적이지도 체계적이지도 않고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어떤 '기획'도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진보신당 당원이다.)

"노회찬과 심상정, 두 대표는 어디 간 거야? 이럴 때 당연히 나와야 하는 거 아냐?"
당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에게 물었다.

"몰라. 무슨 생각하는지.".
"자기네가 아직도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하나? 국회의원 그거, 한 번 떨어지면 땡이잖아. 찬밥이야.".
"찬밥 먹을 각오가 안 돼 있나보지 뭐."

"이명박 '아웃'되기 전에 진보정당이 쫓겨나겠다"

투쟁의 현장에 진보정당이 안 보인다. 민주노동당에서 보이는 것은 강기갑 의원뿐이고, 진보신당에서 보이는 것은 진중권밖에 없다. 내 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친하게 지내는 기자들에게 물어봐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민주노동당은 강기갑 의원의 대중성과 인기만 바라보고 있고, 진보신당은 글쎄? 당원게시판을 가보니 이덕우 대표가 진중권과 함께 동분서주하는 것 같은데 다른 '지도부'가 뭐 하는지는 모르겠다.

싸우지 않은 진보를 어디다 써먹을 것인가? 이러다 이명박이 아웃되기 전에 양 진보정당이, 아니 그나마 강기갑 의원과 같은 사람도 없는 찬밥의 원외정당 진보신당이 아웃되겠다.

이미 풍찬노숙의 신세가 된 진보신당, 그리고 노회찬과 심상정의 처지라고 한다면 단상에 서서 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싸움의 맨 앞에서 길거리에 서야 하는 것 아닌가?
▲ 시민을 억누르는 공권력에 맞서 싸우는 자리가 진보정당 지도자들이 머물 곳이다. ⓒ프레시안

함께 싸우지 않으면, 진보정당이 설 곳은 없다

'아, 저들은 길거리에서 우리와 함께 싸우는구나.' 이런 인상을 거리에 선 사람들에게 심어주지 못하고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진보신당이 원외에서 버틸 힘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진보신당뿐 아니다. 민주노총도 그렇고, 다른 사회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이 싸움을 지도할 필요는 없지만 대중들의 '배후 없는' 자발적인 이 투쟁에 자기의 참여를 '기획'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기획'이라는 것이 별다른 것이 아니다.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면 되는 거고, 자기 목소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면 되는 것이다.

또한, 이번 투쟁으로 잡히고 연행되고 하는 사람들을 제대로 지키면 되는 것이다. 법률적 지원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하는 것 말이다.

각자는 어떤 새로운 목소리가 있는가? 이번 투쟁을 어떻게 새로운 언어로 이름붙이며 거리에 나선 사람들의 힘을 북돋워 줄 수 있을 것인가? 언어가 사람의 존재를 규정하고 존재에 대한 힘이라고 한다면 유인물이건, 신문이건, 인터넷 방송이건 이런 것들을 통해 이런 힘을 대중들에게 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업그레이드'된 시민들…관성적인 진보 진영

노회찬, 심상정 두 대표가 그럴 '급'이 아니라고 변명하지 말자. 어제의 싸움은 경찰과의 충돌로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연행되고 난 다음에 벌어진 최초의 촛불시위였다.

당연히 맨 앞줄에서 시민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 것 아닌가?
▲ 난생 처음 공권력의 폭력을 경험하고서 당황해 하는 청소년들. 진보 진영은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까. ⓒ프레시안

시민들이 자신들을 가로막는 전경들에게 꽃과 물을 건네고, 그 앞에서 춤을 추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일 때, 자신들의 역할이 선전선동을 하고 대치를 격화시키며 '지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진보운동에 미래는 없다.

이처럼 전체 투쟁을 '관성적'으로 지도하고 기획할 줄이나 알았지 자기의 참여를 '기획'할 줄은 모른다면, 진보정당과 운동권이야말로 이 투쟁에서 이명박보다 먼저 아웃될 것이다.

남을 지도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떻게 참여할지를 기획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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