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경
1986년 지주회사의 설립·전환 금지, 상호주 금지, 출자총액제한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경제력집중억제제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이라 한다)에 도입된 이후 우리나라에서 재벌문제의 핵심이 비로소 경쟁법의 규제를 받게 되었다.
그 후 소수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규제는 경쟁법의 고유한 임무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재계와 일부 학계의 비판에 대응하면서, 당초 입법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주된 관심사항도 일반집중에서 소유집중, 소유·지배의 괴리 등으로 변천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1997년 사상 초유의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재벌문제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그 즈음 종전의 30대 기업집단 중 절반 이상이 무너지면서, 재벌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시장의 작동이 가능하다는 인식과 더불어 재벌문제의 핵심이 의결권승수로 대변되는 소유·지배의 괴리로 좁혀지면서 2003년에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이 마련되었다.
동 로드맵은 재벌의 문제를 일차적으로 내·외부 견제시스템의 미비로 인한 주주·채권자의 권리침해에서 찾았고, 그에 따라 이러한 견제시스템의 정비를 대거 출자총액제한의 졸업사유로 규정하고 있었다.
동 로드맵이 2006년 그 시한이 만료되면서 경제력집중의 본질적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고, 기업집단의 순환출자와 이를 통한 경영권 부당승계가 주목을 받았으나 이를 실효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은 마련되지 않은 채 2007년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기존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2007년 12월 대선 이후 재벌규제의 문제는 '경제살리기'와 '친기업주의'라는 새정부의 국정방향에 따라 공정거래법상 재벌규제의 완화·철폐, 금산분리 완화가 기정사실화되면서 경제성장과 효율성의 논리 앞에 새로운 방향설정을 요구받고 있다.
그런데 새정부 재벌정책의 당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오래 전부터 기존의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이 갖는 정당성과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상태에서 경제력집중이 비단 개별기업이나 국민경제차원의 효율성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질서의 기본이자 '제도'로서의 시장경쟁에 미치는 복합적 폐해를 인식하고, 이를 억제하기 위한 공정거래법적 수단이 갖는 규범적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는 곧 재벌문제를 시장 및 규범의 영역으로 포섭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2. 새정부의 재벌정책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1) 새정부의 재벌정책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해 대선당시 7% 경제성장과 300만개의 일자리창출, 그리고 이를 위한 친기업적 기업환경조성을 주요 경제공약의 하나로 제시하였고, 2008년 2월 5일 인수위가 마련한 국정과제 중 '활기찬 시장경제'의 핵심내용에는 규제개혁, 금산분리 완화와 함께 출자총액제한 폐지와 지주회사 규제완화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내용은 새정부 국정과제에서도 '제로베이스 규제개혁'의 틀에 그대로 수용되었고, 그에 따라 지난 3월 28일 공정위는 2008년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현행 출자총액제한과 지주회사 규제 등을 글로벌 경제환경에 맞지 않고 기업활동을 제약하는 대표적인 규제로 지목하고, 이들 규제를 대폭 완화·폐지하여 경제활력을 제고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그 중 공정위 정책의 큰 축을 대기업집단시책 중심에서 경쟁촉진 중심으로, 사전적 규제중심에서 시장친화적인 제도 및 법집행으로 전환하겠다는 것 자체는 일견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세 가지 점에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나는 그간 공정위 정책의 초점이 재벌에 맞추어진 것은 1997년부터 부당지원행위를 적극 규제한 것이 계기가 되었고, 부당지원행위는 2006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하여 불공정거래행위의 하나로 편입되었고, 1997년 4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그 후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카르텔규제, 2006년부터는 독과점규제로 경쟁정책의 초점이 전환되어 왔기 때문에, 새삼스레 공정위 정책의 축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경쟁촉진 중심으로 정책방향을 정하는 경우에 독과점규제는 더욱 중요해질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독과점시장은 대체로 재벌의 계열회사로 이루어져 있고 시장지배적 지위남용행위 또한 주로 이들 계열회사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개별 시장에서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형태로든 재벌규제가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끝으로, 경쟁법은 무릇 사후규제로 이루어져 있는바, 일반집중이 심화되어 있는 경우 사후규제로 이를 시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부당지원행위와 같은 사후규제의 경우 경제력집중의 심화에 따른 공정거래저해성을 '부당성'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으나, 이 경우 일반집중(도)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일반집중을 규제할 판단기준을 정하기도 법기술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사후규제를 통하여 경쟁원리를 회복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정부의 재벌정책은 비단 규제완화 차원이 아니라 개별 시장 및 국민경제 전반에 경쟁질서를 확립한다는 포괄적 경쟁정책의 틀에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2008년 공정거래법 개정(안)
한편, 지난 2008년 4월 15일 공정위가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위와 같은 새정부의 국정철학과 그에 기초한 재벌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동 개정안에 따르면 지난해 법개정으로 자산합계 10조 원 이상인 기업집단에 속하는 자산규모 2조 원 이상의 회사에 대해서 다른 회사에 대한 출자한도를 순자산의 40% 이내로 제한하던 이른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전면폐지하고,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200% 이내 및 비계열회사의 주식 5% 초과보유 금지 역시 이를 폐지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지주회사의 설립·전환시 행위제한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인정되던 유예기간을 기존의 최대 4년(2년 + 2년)에서 5년(3년 + 2년)으로 연장하는 한편, 종래 손자회사가 100% 지분을 갖는 경우에만 증손회사를 허용하던 것을 30% 이상 보유하는 경우에 허용하는 것으로 그 요건을 완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4월 21일 입법예고된 시행령 개정안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범위를 자산규모 2조원에서 5조원으로 상향하고 있다.
이 경우 2008년 4월 현재 79개(1680개사)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수가 41개(946개사)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가 기업의 투자의욕을 고취하고 경제활성화를 위한 취지임은 물론이고, 지주회사 관련 규제의 폐지·완화는 순환출자 등으로 복잡하게 지분관계가 얽혀 있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쉽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동시에 개정안은 이와 같은 사전규제의 완화·폐지에 따라 시장감시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일반현황, 출자현황, 특수관계인과의 거래현황 등에 대한 공시의무를 도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3. 문제제기와 논의의 범위
경쟁법을 두고 있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공정거래법 역시 경쟁질서의 보호를 그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며(법 제1조), 경쟁이란 재산권보장과 사적자치를 기반으로 서로 경쟁관계에 있거나 경쟁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 일정한 거래분야에서 사업자의 자유로운 기업활동(투자, 고용, 계약관계 등)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F. Rittner, "Vertragsfreiheit und Wettbewerbspolitik", in: FS Sölter, 1982, 27면, 30면 이하.)
그런데 일반집중의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경제력집중은 총수를 중심으로 한 계열사간의 순환출자를 근간으로 하며, 개별 시장에서의 독과점을 직·간접적으로 유지·확대하는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공정거래법 제1조가 '과도한 경제력집중의 방지'를 통하여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 취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개별시장의 독과점이 계열사의 확대를 통한 일반집중의 형성·강화를 용이하게 하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일반집중과 시장집중, 소유집중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홍명수, 재벌의 경제력집중 해소방안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50~52면.)
우리나라에서 독과점구조가 장기간 유지되고 있는 시장은 대체로 재벌의 계열회사가 지배하고 있다는 점도 일반집중과 시장집중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개별시장 중심의 경쟁제한성을 이유로 한 규제나 순수한 경쟁정책만으로는 이미 형성된 대기업집단으로의 경제력집중을 해결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며, 여기서 공정거래법은 한편으로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의 제한이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의 금지 등을 통하여 개별 시장에서의 독과점을 방지하는 한편, 직접적으로 일반집중의 심화를 억제하기 위한 사전적·총량적 규제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원칙적으로 헌법적 차원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으나, 그 실효성이나 목적·수단의 적합성 등의 관점에서 일부 문제를 안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래에서는 경제력집중의 억제를 위한 수단을 강구함에 있어서 지향해야 할 규범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시장경제와의 관계에서 살펴보고, 이어서 최근 공정위가 입법예고한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폐지 등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끝으로 향후 대안마련에 있어서 고려하여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제시하기로 한다.
II. 경제력집중억제정책의 규범적 기초
1. 규범적 가치로서의 경제력집중억제
1986년 공정거래법 제1차 개정시 대기업집단에 대한 상호출자의 금지 및 출자총액의 한도제한을 도입한 취지는 무엇보다 헌법상 요구하고 있는 경제민주주의와 경제력의 과도한 집중억제, 이를 통한 자유시장 경제질서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지주회사 중심의 경제시스템과 군부의 결탁, 세계대전의 도발과 일본의 패전, 그에 이은 미군정의 지배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재벌해체를 통한 경제민주화의 정착이 1947년 독점금지법 제정의 주된 동기라는 점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벌의 문제를 개별시장을 넘어 국가지배력(national power)으로 확장하려는 견해로는 최정표, 재벌해체, 1993, 292면 이하.)
한편으로 경제력집중억제는 개별 시장에서의 독과점을 완화함으로써 효율적인 시장메커니즘의 작동을 가능케 한다.
경제력집중이 경쟁제한과 결부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상 사후규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제력집중 억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직접 개별 시장에서의 경쟁제한성을 가져오지 않는 일반집중을 규제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미 경쟁의 통제를 제대로 받지 않을 정도로 심화된 재벌체제는 시장경제의 기본원리, 즉 경쟁원리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력집중억제가 개별 시장의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한 원인규제의 성격을 갖는다는 견해 (이재구,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 공정거래법강의 II, 2000, 286면 이하 참조.)도 가능할 것이나, 이 경우 일반집중의 억제를 개별시장의 독과점규제와 결부시킴으로써 국민경제차원의 분권화된 경제질서를 지향하는 헌법적 가치판단을 축소 내지 평가절하할 우려가 있고, 일반집중이 개별시장에서 구체적 경쟁제한행위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그대로 수긍하기는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 2003년 공정위의 로드맵은 중대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동 로드맵은 재벌의 문제를 특히 비상장계열사를 통한 총수의 사익추구와 그로 인한 주주·채권자의 권리침해에서 찾고, 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내·외부 견제수단을 제시하고, 동시에 의결권승수라는 계량적 수단을 이용하여 소유·지배의 괴리를 판단하고 이를 출자총액제한의 졸업기준으로 삼는 등 (자세한 내용은 로드맵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김선구·류근관·빈기범·이상승,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바람직한 개선방안, 서울대학교 경제연구소 기업경쟁력연구센터, 2003.10 참조.) 경제력집중규제가 갖는 규범적 가치를 다분히 형해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접근방법은 헌법이 추구하는 경제질서의 보호문제를 단순히 총수와 주주·채권자의 사적 이해관계로 단순화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가치를 도외시한 효율성 지상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2. 대기업집단과 자유로운 경쟁질서
흔히 대기업 집단의 문제를 소유집중이나 소유·지배의 괴리에서 찾는 견해에 따르면,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상법이나 증권거래법, 나아가 공정거래법상 총수의 전횡을 방지하고, 권한행사에 걸맞는 책임을 인정하며, 공시의무가 내실화하고, 소액주주와 채권자의 보호장치가 강화되는 등 대기업집단의 문제를 시장에 맡길 여건이 마련될 경우 기존의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재벌규제정책이 폐지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2003년 로드맵의 출발점이자, 재계의 일관된 입장임은 물론이다.
재벌규제의 본질을 경쟁정책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개별 시장에서의 경쟁촉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거나 출자총액제한 등의 재벌규제가 오히려 경쟁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조성봉, "경제력집중 억제정책과 경쟁정책의 모순", 한국경제연구원 Issu Paper 2006.1 참조.)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재벌 내지 대기업집단의 형성·확대과정이 자유로운 시장메카니즘에 따른 효율성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즉, 대기업집단 그 자체가 효율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유효경쟁의 결과라면 재벌의 문제는 이처럼 소유·지배의 괴리와 그에 따른 주주·채권자보호로 한정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재벌의 성장이 일정 부분 정부주도의 경제개발전략이나 정경유착, 분식회계와 탈세 등을 통하여 가능해졌다면, 이제 와서 시장원리만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재벌의 과도한 국민경제지배를 정당화해줄 뿐만 아니라 향후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고착화할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총수와 그를 정점으로 하는 재벌을 중심으로 한 경제구조는 혁신적 중소기업이 탄생하여 성장·발전하기 어려운 토양을 가져온다는 점도 경쟁질서의 관점에서 간과할 수 없다.
대기업 중심의 재벌체제는 전후방시장으로 계열화를 촉진하거나 인접시장에 있는 중소기업을 하청화함으로써 사실상의 지배·종속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때 종속관계에 처한 중소기업이 이를 극복하여 성장·발전하기란 매우 어려우며, 이는 중소기업이 종업원 수 300인 이상의 대기업으로 성장할 확률이 약 0.1%, 500인 이상의 대기업으로 성장할 확률이 1만개 기업 중 하나꼴인 0.01%에 불과하다는 통계에서도 알 수 있다. (김주훈, "중소기업의 구조조정과 혁신능력의 제고", 혁신주도형 경제로의 전환에 있어서 중소기업의 역할, KDI 연구보고서 2005-05, 2005.12, 63~64면.)
여기서 우리나라에 고착된 착취적 납품구조, 종속적 하청구조가 자연발생적인 것인지, 재벌에 의하여 시장경제질서가 오랫동안 왜곡된 데에 따른 것인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글로벌경쟁을 강조하면서 한국적 재벌규제를 철폐할 것을 주장하는 견해 (조성봉, 앞의 책, 17면 이하 참조.)도 있으나, 이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첫째, 글로벌경쟁이 심화되더라도 결국 global champion은 한결같이 national champion으로서 자국의 국내시장에서 효율성을 기반으로 한 경쟁의 결과 선택된 기업들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Michael Porter, The Competitive Advantage of Nations, 1990.)
한편, 글로벌경제에서 재벌의 규모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태도는 재벌규제의 철폐를 통하여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할 national champion을 키우자는 주장으로 이어지는바, 이는 산업정책의 관심사항에 해당할 뿐 아니라 그 효과에도 적지 않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관하여는 Monopolkommission, Competition Policy under Shadow of "National Champions", The Fifteenth Biennial Report 2002/2003, 575면 이하.)
둘째, 국내 재벌기업의 불공정 하도급관계를 통하여 국제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을 용인할 경우 중소기업의 혁신잠재력을 약화시킴으로써 국민경제의 성장·발전을 저해하게 된다는 점이다.
셋째, 우리나라의 재벌체제가 그 형성과정이나 지배구조, 운영 등의 면에서 global standard와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는 점을 간과한 채 규제만을 global standard에 맞추어 완화·폐지할 경우 경제질서 전체에 대한 시스템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규제의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재벌규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규제수단의 적합성 여부이며, 재벌의 폐해를 막는 데에 적절한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3. 경제살리기, 친기업주의와 경쟁정책의 부조화 가능성
(1) 경제살리기와 친기업주의
지난 2월 25일 출범한 새정부는 지난 10여년간 방만한 재정운영과 그에 따른 국가부채의 증가, 공기업민영화작업의 중단을 시발로 한 공적 영역의 확대, 불합리한 규제의 유지·재생산 등으로 취약해진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키우고,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환경에 적극 대응하기 위하여 친기업주의에 입각한 규제혁파를 통하여 경제살리기를 도모할 것을 천명하였다.
여기서 친기업주의는 기업의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각종 규제를 재검토하여 개별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을 핵심내용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먼저 친기업주의에서 지칭하는 '기업'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모든 기업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적의 솔루션이겠지만, 규제 중에는 자본이나 기술, 인력 등의 차원에서 대·중소기업간에 존재하는 격차를 해소하고, 이들간의 불공정한 거래관계를 시정하기 위한 것이 있다.
그 결과 친기업주의를 구체적으로 정책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모순·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바, 자칫 예컨대 출자총액제한의 폐지나 지주회사규제의 완화 등과 같이 대기업에게만 유리한 반면 시장경쟁이나 중소기업에게는 불리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우선시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친기업주의가 불합리한 규제의 개혁을 통하여 투자와 성장 및 고용증대를 도모하려는 경우에도, 그것이 자칫 대기업과 재벌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규제까지 일률적으로 무력화시킬 경우에는 단기적인 경제살리기는 가능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시장기능의 약화에 따라 국민경제의 질적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출자총액제한이 기업투자를 유의미하게 저해하지 않는다는 실증분석결과 (곽만순, 출자총액규제와 대규모기업집단의 투자, 규제연구 제15권 제1호, 2006, 135면 이하. 그에 따르면 출자총액제한이 시행되던 기간에도 기업투자가 통계적으로는 유의미하게 저해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동 규제를 강화하는 경우에도 기업투자를 제약하지는 않는다고 한다.)나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에서 투자증가가 곧바로 고용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친기업주의의 정책수단으로서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하자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2) 친시장주의와 경쟁정책
새정부는 경제살리기를 최우선의 정책목표로 설정하는 한편, 이를 위한 방편으로 친기업주의(business-friendly)와 친시장주의(market-friendly)를 모토로 내걸었다.
여기서 친기업주의는 과거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대폭 완화·철폐하여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는 의미에서는 시장원리나 경쟁원리를 최대한 보호한다는 친시장주의와 맥락을 같이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친기업주의가 경제살리기에 부합하는 수단인지 여부는 차치하고, 친기업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규제를 완화·철폐하는 과정에서 자칫 모순 내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즉, 모든 규제가 시장원리를 저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규제 중에서도 시장, 경쟁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경쟁법상의 규제이고, 이는 시장경제질서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법규범이 경쟁법이라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따라서 규제완화나 철폐를 논함에 있어서는 기업의 창의와 혁신을 저해하는 산업별 사전규제가 일차적인 대상이 되어야 하고, 경쟁법상 규제의 경우 그것이 불합리할 경우 사전규제와 마찬가지로 시장원리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규제의 개선 내지 합리화작업이 요구될 뿐이다.
III.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검토
1.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
출자총액제한제도는 1986년 공정거래법 개정시 여타 경제력집중 억제시책과 함께 도입된 것으로서, 간접적 상호출자 내지 순환출자를 통한 일반집중의 심화를 일정 수준에서 억제하기 위한 사전규제장치이다.
그간 동 제도를 둘러싼 논의는 주로 재벌시스템의 경제적 효율성이나 지배구조의 투명성, 소주주주의 보호 등의 관점에서 전개된 측면이 강하고, 반면 시장경제에서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이 갖는 규범적 의미는 그 내용이 추상적이고 계량화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간과되어 왔다.
그런데 경제살리기와 이를 위한 성장정책은 단기간에 실천가능한 목표로서 그 성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도 매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목표가 인위적인 경기부양과 경제성장을 가급적 배제하고 친시장주의적 접근방법으로 실현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여기서 결국 출자총액제한이 반시장주의적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의 시장경제를 선진화하는데 기여하는 것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헌법이 상정하고 있는 시장경제란 과연 어떤 모습인지를 이해하여야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헌법은 시장경제를 우리나라 경제질서의 기본으로 규정하는 한편, 그에 따른 폐해로서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제119조 제1항, 제2항).
즉, 개인과 기업의 자유가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그에 따른 폐해가 적절히 시정되어 경제주체간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시장경제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전제로서 규제와 조정을 이해하는 견해로는 이원우, 경제규제와 공익, 서울대학교 법학 제47권 제3호, 2006.10, 97면 이하.)
여기서 극소수 기업집단으로의 과도한 집중은 사적자치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억제될 필요가 있으며, 여기서 출자총액제한 그 자체의 규범적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나름대로 경제력집중을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평가하더라도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출자총액제한은 기업의 출자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총량적인 규제로서 경제력집중의 주요 원인인 과도한 순환출자만을 선택적으로 금지하지 못하고, 둘째 그 당연한 결과로 지나치게 다양한 예외요건을 설정함으로써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허용의 관계조차 지켜지지 못하고 있으며, 끝으로 예외요건의 충족여부에 상당 부분 공정위의 재량이 개입됨으로써 결국 기업의 출자에 대하여 일일이 공정위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과 같은 난점을 안고 있다.
다만, 출자총액제한이 규제수단으로서의 정합성이나 실효성에 문제가 있더라도, 당초 동 제도가 기초한 문제의식이나 추구하려는 목표의 정당성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에서 폐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그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울러 대안 없는 출자총액제한의 폐지가 우리나라에서 일반집중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거나 집중규제의 정당성 자체가 부인되는 것으로 오인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2. 지주회사의 규제완화
공정거래법이 1986년 제1차 법개정으로 지주회사의 설립을 금지하던 태도에서 1999년 설립신고주의로 전환한 것은 지주회사의 설립·전환을 유도하여 외환위기 이후 바람직한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 2003 공정거래백서, 250~251면.)
다만, 일단 지주회사체제로 전환된 이후에는 그로 인한 과도한 계열사의 확대를 막기 위하여 부채비율 제한,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 제한 등의 규제가 가해지고 있다.
반면, 일단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기업집단에게는 출자총액제한의 적용을 제외시켜주는 혜택이 있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무엇보다 지주회사에 대한 공정거래법의 태도가 경제력집중억제의 틀 내에서 자칫 모순과 충돌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경제력집중억제의 취지를 다원적으로 이해하더라도 현행 규제는 지주회사를 통한 계열사의 확대·유지를 억제한다는 차원에서는 '소유구조의 단순화' 내지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통한 일반집중의 억제'와 맥락을 같이하는 반면, 지주회사로 전환한 기업집단을 출자총액제한에서 제외시켜주는 것은 비록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촉진하거나 그에 따른 부채비율 및 자회사 지분율 요건의 충족을 용이하게 하려는 취지는 인정되나 결국 수직적 관계에서 자회사의 유지·확대를 통한 일반집중의 심화 그 자체를 정당화해주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2007년 8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손자회사 보유가 사업관련성 여부와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허용되고 100% 완전 증손회사의 소유 또한 허용되고 있는 상황에서(법 제8조의2 제3항, 제4항), 개정안과 같이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200% 제한이 전면 폐지되는 한편 30% 이상의 지분만으로도 증손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될 경우 수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계열확장을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문제는 지주회사규제의 취지를 궁극적으로 '일반집중'의 억제에서 찾을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계열사간 수평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순환출자와 그로 인한 소유구조의 왜곡개선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에 따라 다르게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바, 사견으로는 양자를 모두 포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개정안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밖에 현행 지주회사 규제제도는 그 실효성 차원에서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먼저, 지주회사의 요건이 엄격한 상황에서 지주회사로의 전환 이후 예상되는 규제의 비용과 편익을 비교할 때, 출자총액제한에서 제외되는 것만으로 부채비율이나 자회사 지분율 등의 추가규제에 따른 불이익을 상쇄하기는 어렵다고 판단된다.
실제로 2007.8.31. 현재 36개의 일반지주회사와 4개의 금융지주회사가 존재하는데, 여전히 다수의 상위 대기업집단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지 않고 있거나 지주회사를 두더라도 상당수의 계열회사가 자회사로 편입되지 않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대기업집단이 지주회사 전환에 소극적인 이유는 자회사 및 손자회사의 지분율 요건이나 부채비율제한 등의 규제 때문이라고 하며, 의도하지 않은 지주회사로의 전환에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경련,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개정안 관련 정책건의, Issue Paper FIP-2007-29, 2007.12.31., 10면 이하.)
더구나 개정안과 같이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대안 없이 전면 폐지될 경우 기존의 대기업집단에게 지주회사로 전환할 유인이 있을 것인지는 더욱 의문이다.
3. 대기업집단 공시제도의 도입
개정안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회사에 대하여 인정되던 기존의 대규모내부거래의 이사회의결 및 공시의무, 비상장회사의 중요사항 공시의무 외에 추가로 당해 기업집단의 일반현황과 주식소유현황 및 특수관계인과의 거래현황 등을 공시할 의무를 신설하고 있다(안 제11조의4).
종래의 공시의무가 개별회사의 거래내역 등에 국한된 것인데 반하여, 신설될 공시의무는 기업집단 전체의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공시의 내용을 확대함으로써 기업집단에 대한 시장의 자율적 감시와 평가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취지라고 한다.
다만, 추가된 공시의무가 기존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현황 등에 대한 정보공개'(법 제14조의5)와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기 어렵고, 현재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관한 정보공개는 정보포탈사이트 "오프니(OPNI)"(http://groupopni.ftc.go.kr)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단지 종래 공정거래위원회가 과도한 경제력집중의 방지와 기업집단의 투명성 제고를 위하여 해당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의 일반현황, 지배구조현황, 특수관계인과의 거래 등을 직접 공개하던 것을 해당 기업집단소속 회사에게 공시의무의 형태로 전환한 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정보공개 내지 공개의 정확성, 신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신설될 공시의무가 보다 효율적일 수는 있을 것이다.
IV. 경제력집중억제정책의 접근방법
1. 대기업집단의 개념 및 지정기준
우리나라에서 기업집단이란 현상은 1960년대 경제개발 이후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나, 그 후 거의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를 규범의 영역에서 포섭하는 것은 매우 미진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집단에 대한 법적 정의가 이루어진 것은 1986년 공정거래법 제1차 개정이었으나, 동 개념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전혀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밖에 공정거래법에서 기업집단을 염두에 둔 조항이 일부 생겨나기는 하였으나, 통일적인 법개념으로 정립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복수의 계열회사를 하나의 경제적 동일체로 볼 수 있는지와 관련된 문제로서, 금지요건별로 접근방법에 차이가 있다. 예컨대,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에는 계열관계에 있는 회사가 포함되며, 기업결합의 경쟁제한성 판단시 계열회사의 점유율을 합산하는 것은 일응 기업집단을 하나의 경제적 동일체로 파악하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으나, 카르텔이나 부당지원행위의 경우에는 법인격을 중심으로 사업자를 판단함으로서 기업집단이나 계열관계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공정거래법상 경제력집중의 억제를 위하여 기업집단을 규제함에 있어서 그 정당성과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동법상 수범자인 기업집단 및 계열회사가 합리적으로 정의되어야 한다.
공정거래법 제2조는 기업집단을 둘 이상의 회사가 동일한 지배하에 놓인 경우 이들 회사를 총칭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때, 기업집단 개념은 사업자 개념과 마찬가지로 다분히 기능적인 것이어서, 사업자란 경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에 다름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집단은 헌법이 용인할 수 없을 만큼, 시장경제가 작동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력집중을 유지·심화시킬 우려가 있는 일련의 기업을 특정하기 위한 수단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기업집단을 그것이 갖는 국민경제상의 중요성이나 경쟁질서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하여 공정거래법의 규제대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기업간 결합형태를 기업집단으로 특징지울 수 있는 요소들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의 '기업집단' 개념이 공정거래법의 규제목적과 분리되어 도출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즉, 기업집단의 개념은 순수하게 법논리로만 정해질 수 없으며, 경쟁정책적 고려와 경제적 인식을 기초로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nicht begrifflich, sondern konstruktiv).
종래 공정거래법은 기업집단을 최대한 폭넓게 상정한 후, 자산총액만을 기준으로 그 기업집단소속 계열회사를 상호출자제한이나 출자총액제한의 수범자로 지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바, 일반집중의 규제목적과 시장집중과의 밀접한 관련성 등을 고려할 때 시장경제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는 기업집단을 비단 자산총액만으로 상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종래의 방식이 규제의 편의나 예측가능성에는 부합할 수 있으나, 업종의 특성, 자산구성의 차이, 종업원의 수 등 일반집중을 판단함에 있어서 고려할 수 있는 다른 기준을 포함하여 참여 업종수나 계열회사의 시장점유율 등을 적절히 조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동법의 규제를 받는 지주회사의 규모기준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2. 사전적 규제와 사후적 규제
현재의 재벌규제에 대해서는 이를 획일적 사전규제로서 글로벌시대의 무한경쟁체제에서 기업의 투자와 성장을 저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조성봉, 앞의 책, 17면 이하 참조.)
이러한 비판은 결국 재벌규제를 폐지하고, 필요하다면 공정거래법상 사후규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후규제란 결국 개별 시장을 중심으로 한 규제이기 때문에, 결국 재벌에 대한 사전 규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실상 규제방식이 아니라 규제 자체를 문제 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즉, 경제력집중억제의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에도 사전·사후규제의 문제는 불거질 수 있으나, 일반집중에 관한 한 사후적 규제란 그 실효성이 매우 적다는 점에서 한계가 크다.
즉, 일반집중의 경우 개별 시장에서 구체적인 경쟁제한행위와 결부되지 않는 경우에 사후적 금지요건을 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반집중이 개별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하거나 국민경제차원에서 과도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이를 사후에 금지할만한 마땅한 수단이 없고 원상회복의 조치도 내리기 힘들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제력집중규제는 전통적인 경쟁법적 규제와 달리 향후에도 사전적 규제로 접근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사전적 규제를 유지하더라도 규제의 예측가능성을 제고할 필요성은 매우 크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은 단순한 재벌정책이 아니라 동시에 규범의 해석·적용을 수반한다.
규제대상 기업집단을 지정함에 있어서 계열사 자산총액이라는 기준이 객관적인 지표이기 때문에 공정위에 재량의 여지가 없어 보이나, 지정제외사유에 있어서는 사정이 다르다.
즉, 예외요건 그 자체의 타당성은 차치하고, 그 판단에 공정위의 재량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컨대, "대통령령이 정하는 산업의 국제경쟁력강화 또는 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한 기업구조조정을 위하여 주식을 취득 또는 소유하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출자총액제한의 예외가 인정되나(법 제10조 제1항 4호), 시행령 제17조의2를 포함하여 동 예외인정에는 공정위의 주관적 판단을 요하는 부분이 적지 않게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재량의 여지는 적어도 사전적 규제방식에서는 최대한 자제되어야 하며, 그것이 법적 안정성과 규제의 실효성을 보장하고, "기업의 투자에 일일이 사실상 공정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식의 재계의 불필요한 비판을 해소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V. 경제력집중억제제도의 개선방안
1. 사업지주회사의 도입
(1) 개관
'사업지주회사 의제제도'는 대기업집단의 소유·지배괴리에서 출발하여 소유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으로 고려될 수 있는바, 지주회사로 전환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주된 사업'의 요건(다른 국내회사의 지배를 '주된 사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산총액의 50% 이상을 자회사의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법 제2조 1의2호, 령 제2조 2항).)을 충족하기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어떤 기업집단이 계열사 지배력 확대에 이용되는 핵심계열사 내지 주력회사를 지정할 경우 이를 사업지주회사로 의제하여 그 지배를 받는 자회사를 묶어 지주회사 관련 규제로 통합하는 방법이다.
즉, 종래 사업지주회사를 중심으로 한 기업집단을 기존의 (순수)지주회사 규제체계로 통합하는 방법이다. 그 취지는 사업지주회사에 대한 지주회사관련 규제의 적용을 통하여 기존의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억제·해소하는 데에 있으며, 사업지주회사나 순수지주회사나 일반집중의 관점에서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규제의 차이가 존재함에 따른 회사조직 선택의 왜곡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국 대기업집단의 지주회사전환을 용이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으나, 일단 지주회사로 편입될 경우 기존의 부채비율이나 자회사 지분율 등의 규제를 다소 수정하여 적용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업지주회사에 대하여 부채비율이나 자회사지분율 등을 순수지주회사에 준하여 제한할 경우 이는 기존의 출자총액제한보다 훨씬 엄격한 규제가 될 수도 있고, 사업지주회사에 대해서 순수지주회사의 경우보다 전체적으로 느슨한 규제를 적용할 경우에는 일반집중의 효과 면에서 보다 심각한 수단인 사업지주회사에게 유리할 뿐만 아니라 자칫 종래 전통적인 방식의 재벌을 지주회사체제로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여 경제력집중 억제에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지주회사의 의제는 사업·순수지주회사체제를 하나로 묶는 것이 핵심이다. 여기서 관건은 과연 사업지주회사로의 의제·전환이 계열사간의 수평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가공적 순환출자를 효과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이다.
다만, 사업지주회사에 대해서 순수지주회사와 마찬가지로 '수직적' 지분관계만을 허용할 경우, 이는 기존의 출자총액제한보다 까다로운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연 기존의 대기업집단이 핵심 계열사의 지정에 협력하는 태도를 보일 것인지도 의문이다.
(2) 검토사항
먼저 현행 지주회사규제는 그 대상을 총수 중심의 순환출자로 특징지워지는 재벌에 국한되지 않고 있어서, 사업지주회사의 취지에 맞게 수범자의 범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반집중의 관점에서 규제의 실익이 없는 기업집단이 대부분이고, 이들 중소규모의 기업집단을 지주회사로 전환토록 유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 일반집중과 무관한 중소규모의 지주회사를 규제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규제대상을 제한하는 방법으로는 소규모 지주회사의 적용제외 방식(지주회사의 규모기준)과 당해 지주회사가 속한 기업집단의 자산규모기준을 생각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받는 지주회사의 규모기준이 현행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으로 되어 있고(법 제2조 1의2호, 령 제2조 제1항), 그 결과 예컨대 자회사 지분율 규제 등을 적용함에 있어서 웬만한 소지주회사도 모두 동일한 규제를 받게 된다.
그런데 사업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하의 소지주회사는 규제대상에서 제외시켜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김두진, 공정거래법상 경제력집중 규제 연구, 한국법제연구원 연구보고 2006-12, 188면.)
구체적으로 2007.8.31. 현재 일반지주회사 36개 중에서 자산총액이 1조원 이상인 지주회사는 SK(주), (주)LG, 금호산업(주), (주)GS홀딩스 및 (주)태평양 등 5개사밖에 없다. 따라서 향후 사업지주회사제도가 경제력집중억제의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2~4조원 이상의 자산총액을 가진 회사로 규제를 제한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2006.6.2. 현재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와 10위인 SKT의 시가총액을 각각 약 80조원과 15조원으로 상정할 경우, 이들 1개 회사를 지배하기 위하여 지주회사는 24조원 및 4조5천억원 이상의 자산총액을 가져야 한다(자회사지분율 30%, 시가 ≒ 장부가격을 전제로 함).
이어서 후자의 경우 지주회사의 규제대상을 자산규모 6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에 속하는 것으로 한정하자는 주장 (이상승, 공정거래위원회 창립 25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자료집, 한국경쟁법학회 외, 2006.4, 토론문 97~98면의 [각주 2] 참조. 당시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의 지정기준이 자산규모 6조원 이상이었고, 이를 지주회사의 경우에 원용했던 것으로 보인다.)도 생각할 수 있는바, 지주회사규제의 취지를 복합한 순환출자를 통한 일반집중의 해소에서 찾을 경우 일응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예컨대, '소속 기업집단의 자산규모가 6조원 이상이면서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지주회사'와 같이 지주회사의 규모와 기업집단의 자산규모를 적절히 조합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사업지주회사제도는 기존 대기업집단과 양립가능한 형태로 운영될 수 있으며, 대기업집단내 소지주회사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현재도 예컨대 삼성의 계열사인 삼성종합화학은 삼성토탈이라는 1개 회사만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지주회사이고, CJ의 계열사인 (주)CJ홈쇼핑은 (주)CJ케이블넷을 비롯하여 5개의 자회사와 8개의 손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지주회사이고, SK E&S(구 SK엔론)는 지주회사인 SK(주)가 51%의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이면서, 동시에 SK가스 등 10개의 자회사와 1개의 손자회사를 두고 있는 지주회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향후 이들 소지주회사에 점차 다른 계열사가 쉽게 편입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사업지주회사제도에 반영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사업지주회사체제에서도 종래의 기업집단은 여전히 양립가능하다는 점에서 '동일인' 내지 총수의 기능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이는 일반지주회사 중에서 자연인인 총수가 대주주인 경우가 절반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바, 향후 사업지주회사에서도 총수의 역할이 여전히 클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를 사실상 지배하는 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주회사를 사실상 지배하는 동일인이 직접 보유하는 지분이 크지 않거나 다른 계열사의 보유지분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경우, 참고로 2005.8. 현재 (주)LG와 (주)GS홀딩스의 동일인 지분율은 각각 10.1%와 5.6%이다. 사업지주회사로의 의제·전환을 통하여 소유·지배의 괴리와 가공자본의 확대를 해결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동일인이나 여타 계열회사의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2. 순환출자의 직접적 규제
(1) 개관
최근 대기업집단소속 계열회사의 출자행위 및 지분관계에 대한 투명성이 현저히 제고되었다. 공정거래법은 1999년 12월 개정으로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소속 계열회사에 대하여 대규모내부거래에 대해서 이사회의결 및 공시의무를 부과하였고(법 제11조의2), 2004년 12월 개정에서는 동 기업집단소속 계열회사 중에서 주권상장법인과 협회등록법인을 제외한 회사에 대해서 최대주주와 주요주주의 주식보유현황 및 그 변동사항과 주식의 취득 등의 사항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법 제11조의3).
이러한 공시의무의 확대에 따라 대기업집단 계열사간 순환출자의 구조를 종전에 비하여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간접적 순환출자규제수단이던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하고, 당초 취지대로 순환출자를 직접 규제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법기술적으로 기존의 상호출자금지규정을 보완하여 법 제9조를 "자신의 주식을 취득한 (계열)회사 및 그 회사에 연쇄적으로 출자한 (계열)회사의 주식을 취득하지 못한다"로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홍명수, "대기업집단정책의 운용성과 평가와 향후 정책방향", 공정거래위원회 창립 25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자료집, 한국경쟁법학회 외, 2006.4, 92~93면.)
그런데 현재 순환출자를 직접 규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여서, 원론적으로는 일단 모든 순환출자를 일거에 금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단계적 축소 및 그 기간 중 의결권행사의 제한을 고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순환출자의 직접규제가 궁극적으로 이를 완전히 해소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지 여부 또한 논의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검토사항
순환출자를 직접 규제하고자 할 경우 제일 먼저 해결하여야 할 문제가 바로 규제대상을 어떻게 정할지 여부이다.
이는 다시 규제대상 기업집단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와 규제대상 순환출자의 개념을 정하는 문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순환출자의 규제대상 기업집단은 복잡한 가공적 출자관계의 해소라는 목적에 비추어 선정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비교적 단순하고 투명한 출자관계를 전제로 하는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한 기업집단에는 적용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순환출자규제의 주된 목적이 가공자본을 통한 일반집중의 심화와 총수의 지배권유지에 있다는 전제에서, 규제대상 기업집단을 단순히 자산총액의 절대적 규모뿐만 아니라 계열사의 수와 총수의 지분율을 함께 고려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자산총액 0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으로서, 계열사의 수가 00개를 초과하며, 자연인인 동일인(총수)의 지분이 0%미만인 경우를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법기술적으로 보다 어려운 부분은 순환출자의 개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순환출자를 간접적 상호주보유로 이해할 경우에는 고리형 순환출자에 규제가 한정되는바, 실제 많은 대기업집단의 출자구조가 고리형 보다는 방사형 등 복잡·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순환출자 보다는 재출자나 가공출자의 개념이 보다 타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출자의 동기나 목적을 일단 차치하고 볼 때에도 순환출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순환출자의 금지는 기존 계열사의 핵심적인 지분연결고리를 금지하여 결국 재벌의 존재를 부인할 수도 있게 되고, 단계적 축소와 의결권 제한을 결합한 규제를 채택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기존 재벌의 지배구조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난점을 고려하여 순환출자를 금지하기 보다는 계열사 단위로 지분율의 하한을 정하는 이른바 재출자규제방식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전술한 요건을 갖는 기업집단소속 계열회사는 일응 광의의 순환출자로 엮여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다른 계열회사의 지분을 일정 비율 이상으로 보유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로부터 예상되는 효과로는 내부지분을 이용한 총수의 계열사지배나 다수 계열사의 지분으로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기가 어려워지고, 아울러 가공출자도 억제되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이 방법은 대기업집단소속 계열회사의 출자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단 출자할 경우 일정 비율 이상의 출자를 의무화한다는 점에서 기업투자를 억제한다는 비난으로부터 일정부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순환출자금지의 기대효과와 일반집중억제의 한계요소에 대해서는 박상인,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대안연구- (환상형)순환출자금지를 중심으로, 경쟁법연구 제14권, 2006, 17면 이하.)
3. 대기업집단의 업종수 제한
(1) 개관
대기업집단의 규제취지를 선단식경영 내지 경제전반의 시스템 리스크에서 찾을 경우, 현행 경제력집중억제제도, 특히 출자총액제한은 간접적인 수단에 불과하고 총량규제의 획일성으로 인하여 예외사유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대기업집단의 계열사 수는 오히려 아래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전체적으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출자총액제한기업집단의 계열회사 수 역시 2004~2008년까지 5년간 추이를 살펴보면 21.0개, 25.7개, 33.0개, 36.3개, 38.8개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기존의 대기업집단이 지주회사체제로 순조롭게 전환되는 경우에도 계열사간 복잡한 순환출자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으나, 총수 중심의 계열사의 확대나 중소기업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시장으로의 무차별진입을 방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의 독점금지법이 2002년 '주식보유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면서 사업지배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기업집단의 설립 또는 전환을 제한하기 위하여 도입한 이른바 '업종수 제한'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독점금지법상 사업지배력의 과도집중 규제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홍명수, 일본의 일반집중규제와 시사점, 경쟁법연구 제14권, 2006, 67면 이하.)
이때, 일본 독점금지법 제9조로 통합된 내용은 사업지배력의 과도집중을 사후적으로 금지하는 방식으로서, 종전의 대규모사업회사에 대한 주식보유총액제한이라는 사전적 규제와는 구별되며, 내용면에서도 단순한 업종수의 제한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본 독점금지법 제9조에 의하면 다른 국내회사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사업지배력이 과도하게 집중하게 되는 회사를 설립하여서는 안 되며, 기존의 회사라도 다른 국내회사의 주식을 취득 또는 소유함으로써 국내에서 사업지배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회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때 '사업지배력의 과도한 집중'이란 회사 및 자회사 기타 당해 회사가 주식소유에 의하여 그 사업활동을 지배하고 있는 다른 국내회사의 종합적 사업규모가 상당수의 사업분야에 걸쳐서 현저하고 크거나, 이러한 회사의 자금과 관련되는 거래에 기인하는 다른 사업자에 대한 영향력이 현저하고 크거나 또는 이러한 회사가 서로 관련성이 있는 상당수의 사업 분야에 있어 각각 유력한 지위를 차지하여 국민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침으로써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의 촉진이 방해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과도한 사업지배력의 집중에 관한 지침'은 위 3가지 경우를 각각 아래와 같이 구체화하여 제시하고 있다.
① 자산총액이 15조엔을 넘는 기업집단이 표준산업분류 3단위 분류 중 총 매출액이 6천억엔을 초과하는 5개 이상의 사업분야에서 자산총액 3천억엔을 초과하는 회사를 보유하는 경우
② 자산총액이 15조엔을 넘는 대규모금융회사가 금융업과 무관한 자산총액 3천억엔을 초과하는 회사를 보유하는 경우
③ 표준산업분류 3단위 분류 중 총 매출액이 6천억엔을 초과하는 5개 이상의 상호관련성이 있는 사업분야에서 시장점유율이 10% 이상인 회사를 소유하는 경우.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위 금지규정 위반이 있을 때에는 당해 위반행위자에 대하여 보고서의 제출 또는 신고를 명하거나 또는 주식의 전부 또는 일부의 처분, 회사의 임원의 사임 기타 이러한 규정에 위반하는 행위를 배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동법 제17조의2 제2항).
(3) 검토사항
일본에서 도입된 경제력집중억제의 새로운 대안은 무엇보다 경제력집중의 판단기준을 기업집단의 절대적 규모 외에 계열회사의 수 및 시장점유율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정하고 있다는 점과 기왕의 집중상태를 감안하여 향후 지침에서 정하는 수준을 일반집중의 상한선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즉, 기업집단의 규모, 대기업집단소속 계열회사가 참여하고 있는 시장의 규모 및 이들 시장에서 계열회사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모두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4월 현재 출자총액제한을 받는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14개 기업집단은 평균 38.8개의 계열회사를 두고 있고, 이들 계열사는 각각의 사업분야에서 비교적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일본의 예는 일부 수정하여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산총액기준 일정 규모 이상인 대기업집단에서도 소수의 계열회사가 대규모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유하는 양상을 보일 경우, 일본식 접근방법은 매우 현실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규모금융회사의 비금융회사 보유금지는 현재와 같이 비교적 엄격한 금산분리원칙이 적용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고려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금융지주회사는 금융업 또는 보험업을 영위하는 회사 외에 국내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고, 예컨대 보험회사의 경우도 자산운용의 제한이라는 맥락에서 다른 회사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15%를 초과하는 주식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보험업법 제109조).
다만, 향후 경제력집중억제시책의 개편과정에서 금산분리가 일정 부분 완화될 경우에도 금융지주회사 또는 대규모금융회사의 비금융분야 진출에 한계를 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VI. 맺는 말
한국의 대기업집단을 상징하는 '재벌'은 총수중심의 지배구조와 일반집중, 시장집중의 문제가 응축된 형태로서,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왜곡하는 실체라는 점에서 논의가 출발하여야 한다.
재벌은 시장 내지 경쟁시스템이나 여타 정치·경제권력의 견제를 충분히 받지 않고, 특히 내부지분율의 확보를 통하여 적대적 M&A를 통한 경영권박탈의 위험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IMF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부채비율을 감소시킨 결과 은행으로부터의 감시도 충분히 받지 않는다.
그런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필연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는 전제에서, 재벌의 문제는 향후 지속적으로 규범적 관심사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가공자본을 통한 총수지배권의 유지와 계열사확대를 막고, 이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개별 시장에서의 독과점체제를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체제로 전환함으로써 시장경제의 견제·균형원리를 회복하는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986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상호출자금지, 출자총액제한 등 재벌에 의한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후, 공정거래법을 개정할 때마다 경제력집중 억제규정은 변화를 거듭하였다.
특히 최근 들어 출자총액제한의 경우 예외로 인정되는 출자가 금지되는 출자보다 많아지는 등 원칙과 예외의 관계조차 무색해진 측면이 있다.
경제력 집중 억제시책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한 데에는 무엇보다 경제력집중의 의미가 모호하고, 대기업집단 규제목적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정책방향에 대한 부처간 일관성이 부족하였다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으나, 여기서는 추가로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대기업집단의 규제는 공정거래법의 전유물도, 공정위의 전속관할사항도 아니라는 점이다. 즉, 재벌문제 중에서도 소유집중과 일반집중은 세법이나 산업규제법 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이들 부문의 법·정책과 공정위의 정책이 적절히 조화되어 일관되게 추진되지 않을 경우 그 실효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나라의 산업규제법·정책은 경쟁보다는 정부지원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함으로써 분권화된 시장경제의 경쟁원리와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향후 일반집중의 규제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전제로, 각 부처의 집중억제시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법제와 기구를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공정거래법의 일차적인 관심사항은 시장집중이고, 시장집중의 주요 원인으로는 무엇보다 재벌체제와 경쟁제한적 규제를 들 수 있다.
여기서 공정위가 재벌을 규제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시장에서의 경쟁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그렇다면 그 일차적인 수단인 경쟁법, 그중에서도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과 기업결합, 불공정거래행위 등에 대한 규제를 재벌구조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강구하여야 하는 것이다.
다만, 향후 계열관계를 경쟁제한성이나 부당성 판단 및 시정조치 강구시 어떻게 고려할 것인지는 매우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새정부의 재벌정책은 경쟁정책이라는 보다 큰 틀 속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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