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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으로부터 배워야 할 광우병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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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으로부터 배워야 할 광우병 협상"

[송기호 칼럼]"애들에게 '다우너' 쇠고기는 먹이지 말자"

샤퍼 미국 농무부 장관은 올 1월, 취임한 지 하루만에, 캘리포니아 홀마크/웨스트랜드의 주저앉는 소 학대 사건을 겪었다. 미국에서는 "다우너"(downer)라고 불리는 주저앉는 소(기립불능우)라도 1차 도축 검사를 통과하고 나면, 설사 계속 주저앉더라도 도축할 수 있다.(9CFR309.3(d)) 또 식용으로 제공된다. 그러다보니, 캘리포니아에서 주저앉는 소를 1차 검사에 통과시키기 위해 전기 충격을 가하거나 지게차로 밀어 냈던 것이다.

샤퍼 장관은 이처럼 주저앉는 소가 도축되어 학교 급식용으로 공급되자, 미국 사상 최대의 쇠고기 회수 조치를 내렸다. 왜 그랬을까? 그 까닭은 주저앉는 소는 건강한 소에 비해서 광우병에 걸렸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고위험군 소이다. 한국 정부도 이를 이렇게 확인하고 있다.
임상증상을 보이거나 일어서지 못하거나, 생체검사에서 불합격판정을 받은 소 등 고위험군에 속하는 소를 검사할 경우 더 확실한 광우병 예찰효과가 있다는 것을 의미함.
※ EU의 사례에서 고위험군 소의 검사는 정상 소에 대한 검사보다 광우병 확인사례가 29.4배 이상 높다고 알려져 있음. (농림부 2008년 5월 2일자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문답자료 5쪽)

그런데도 미국은 여전히 이러한 고위험군의 소라도 일단 1차 검사를 통과하면, 도축돼 식용으로 쓰이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미국우육협회는 이러한 고위험군의 소를 "1차 도축 검사 합격 이후에 주저앉는 소"라고 에둘러 부르고 있다. 샤퍼 장관은 지난 20일에서야, 이러한 고위험군 소가 식용목적으로 도축될 길을 봉쇄하는 입법예고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을 뿐이다(FSIS will draft a proposed rule).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에서는 분명 주저앉는 소라도 식용목적으로 도축될 수 있다.

그래서 필리핀은 2007년 11월, 미국과 쇠고기 광우병 검역 기준을 협의하면서, 쇠고기는 다우너 소가 도축된 고기가 아님을 미국 정부가 별도의 증명서(Letterhead Certificate for Beef for Export to the Philippines)로 증명해 줄 것을 관철시켰다. 이 증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간다.
The meat were not derived from non-ambulatory disabled cattle offered for slaughter. (이 쇠고기는 주저앉는 장애 소를 도축한 고기가 아님)

이로써, 적어도 필리핀으로 수출되는 미국 쇠고기는 다우너 쇠고기가 아님을 미국정부가 공적으로 별도 증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할까? 노무현 정부에서 미국 정부는 수출 검역 증명서에서 도축된 소가 광우병 의심소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19(1)항, 10항). 다음과 같은 요건이 준수되었음을 증명하는 내용이 미국 정부의 수출 검역 증명서 기재 사항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수출 쇠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소(이하 "도축소"라 한다)는 BSE의 감염이 의심되거나 BSE 감염이 확인된 소 또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육상동물위생규약(Terrestrial Animal Health Code)에서 규정된 BSE 감염소의 새끼와 새끼로 의심되는 소 또는 동거소(Cohort)가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합의된 검역 조건에서는, 더 이상 미국은 광우병 의심소를 도축한 고기가 아닌 것임을 한국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위 내용은 더 이상 미국의 수출 검역 증명서 기재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22(1)항).

필리핀 국민들이 먹을 쇠고기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다우너 쇠고기가 아님을 증명해 준다. 그러나 한국 국민이 먹을 쇠고기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는 그 증명을 해 주지 않는다. 왜냐고? 한국 정부가 그렇게 합의해 주었으니까!

미국 정부는 광우병 고위험군 소가 최종 도축되어 한국으로 가는지 여부에 대해 굳이 따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미국이 미국에서 하는 대로, 한국을 대해 주면, 한국은 행복하다.

광우병 위험 부위의 범위 결정도 그렇다. 슈와브의 지난 19일자 편지에 나오는 대로, 해당 미국의 법률(prevailing U.S. Regulations on SRM removal)대로 대해 주면 한국은 행복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저앉는 소의 식용 목적 도축이 금지되면 소의 시체는 닭, 돼지의 동물 사료가 된다. 미국에서는 30개월이 되지 않는 주저앉는 소는 뇌와 척수마저도 그대로 닭, 돼지에 먹일 수 있다. 그러므로 광우병 원인 물질은 제거되지 않는다. 미국의 사료 조치는 이처럼 허술하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이 30개월 미만이라는 방화벽을 해제한 것은 위험하고도 경솔하다.

미국이 다우너의 도축을 전면 금지하는 입법예고안을 언제 완성하고, 언제 최종 규정을 만들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미국 정부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만이 한국 정부의 일이라면, 그런 정부를 위해 세금을 낼 마음은 없다.

다우너 쇠고기 문제에 대해선, 필리핀 수준과 같이 미국 정부의 공적 증명을 받아내야 한다. 그러려면 재협상해야 한다.

촛불을 들었던 10대에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 줄 책임이 우리 어른들에게는 있다. 아무리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기성세대들이 발가벗겨진 채 돈과 시장 앞에 내동댕이쳐졌다고 하더라도,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사회의 저력은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어른이 만들자. 적어도 그들의 입에 다우너 쇠고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자. 그를 위한 최소한의 방법으로 필리핀처럼은 하자. 그러려면 어른들이 광우병 고시 공고를 강행하지 말고 재협상해야 한다.

법률에도 어긋나는 내용의 고시를 이젠 그만 접자. 그리고 행정절차법에 맞게 제대로 된 고시를 다시 입법예고하여 국민의견을 수렴하자. 단계적으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수입한다던 입법예고는 이미 내용이 바뀌었다. 그러니 법에 맞게 다시 입법예고해야 한다. 어른들아 잘 하자! 아이들의 맑은 눈이 우리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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