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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대통령을 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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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대통령을 둔 대한민국"

[기고] "노동조합도 '그렇게' 하면 쫓겨난다"

구성원의 동의 없는 협상은 구걸이다

노동조합은 수없이 많은 협상을 한다. 5-10명의 종업원을 고용하는 영세업체 사장님부터 수십만 명의 종사자를 거느린 다국적 기업, 사용자단체는 물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까지 노동조합의 협상 대상은 다양하다.

노조의 협상단인 '교섭위원'을 상대로 한 교육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바로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할 것", "조합원의 힘과 지혜에 기댈 것"이다. 노동조합과 국가가 꼭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소속원의 요구를 반영해야 하는 협상단의 철학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가와 국가 간의 협상은 개인의 연봉협상과는 다르다. 각 나라 구성원들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협상이다. 또 그것은 단지 협상단의 협상기술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협상이 얼마나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가에 달려있다. 물론 국민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는 독재국가나 조합원의 요구에는 무관심한 '어용노조'의 경우라면 얘기는 다르다. 그런 곳에서는 이런 기본원리와 철학이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우리 정부 협상단의 태도 말이다. 이해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기도 힘든, 한심한 작태다.

무엇보다 그들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기는커녕 되려 미국정부와 목축업자, 도축업자의 이해관계를 우리 정부 협상단이 대변하고 있다. 국민의 힘과 지혜에 기대기는커녕 정권이 바뀌자 모든 태도를 바꿔 버리고 국민들의 몰이해를 탓한다. 그들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오만하고 반성할 줄 모른다. 이것이 국민을 화나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저항이 드세지자 대통령까지 나서서 '미국이 도와줘야 한다'며 구걸을 했고 미국 상무장관은 '재협상은 없다'며 일언지하에 잘라버린다. 어쨌든 국민적 저항에 밀려 20일 정부는 '사실상의 재협상'이라며 몇 가지 대책을 내놨지만 이것이 국민적 저항을 누그러트릴지 불을 지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운수노조의 '미친소 운송거부'가 보여준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
▲무엇보다 그들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기는커녕 되려 미국정부와 목축업자, 도축업자의 이해관계를 우리 정부 협상단이 대변하고 있다. ⓒ프레시안

운수노조는 촛불집회가 시작된 첫날인 지난 2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입항저지 및 수송거부 불사'를 결정해 발표했다. 대단히 심각하고 부담스러운 결정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뒤인 6일 한 인터넷매체에 이 결정의 의미와 배경에 대한 글이 실리면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일 발표된 '건조한 성명서'에 비해 6일치 기사 "우리 손으로 미친소를 운반하고 싶지 않다"가 더 주목을 받은 것은 뒤의 글이 '쇠고기 운송 거부'라는 결정과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포털사이트와 각종 거대 커뮤니티들에 글이 '퍼 날라'지고 운수노조 홈페이지는 몇 시간 만에 지지 댓글로 다운돼 버렸다. 촛불집회에서는 "운수짱"이라는 구호가 나온다.

노동조합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어 금속노조, 전교조 등도 '미친소 수입저지'에 합세했고 민주노총은 '강력한 투쟁'을 결의했다.

운수노조는 산별노조이다. 초기업단위노조인 산별노조로서 운수노조는 사내 복지에 국한될 수밖에 없는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어 그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제 역할을 다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쇠고기 국면이 한국적 산별노조가 사회적 책임에 일정한 기여를 하도록 만든 측면이 있다.

사실 운수노조의 수송거부는 조합원들의 엄청난 희생을 전제로 한다. 10%의 조직율에 불과한 운수노조 조합원들은 수송거부에 협조할 것이다. 그런데 그 투쟁은 TV에 출연한 한 쇠고기 수입업자의 비아냥처럼 "한탕에 70-80만원하는 일거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상당한 출혈을 감수하는 것이다. 물론 화물노동자들이 한탕에 70-80만원을 버는 것은 아니다. 이 가운데 경유가, 도로비, 보험료 등을 제하고 나서 손에 쥐어지는 것은 몇 만원도 안 된다. 그나마도 어음이다.

그 뿐 아니다. 지도부의 구속수배도 감수해야 한다. 이런 결정에 대해 조합원들은 부담스럽지만 한편으로는 흔쾌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MB노믹스'라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에서 '쌔빠지게' 임금단체협상투쟁(임단투)을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이명박 정부 출범 3개월도 안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운수노조의 '미친소 수송거부'는 산별노조라는 조직적 특성과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친기업 일변도의 정부정책에 대한 반발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온 결정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노동조합과 시민사회의 소통방식에 관한 것이다. 네티즌의 열광적인 지지와는 달리 공중파와 종이매체들, 이른바 메이저 언론들은 별 관심이 없다. 운수노조 홈페이지가 다운되었다는 것, 실제 수송거부가 가능한지, 화물연대 집회가 경유가 인하인지 쇠고기 수송거부인지 등 팩트 이외의 것들은 다루지 않는다. 아마도 운수노조가 '대형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메이저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할 것 같다.

사실 노조 입장에서는 '메이저 언론의 주목받기'에 목말라해 온 측면도 있다. 죽어라고 싸워봐야 뉴스에 한 줄도 안 나오면 그냥 고생만 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안쓰러운 바람이다.

그런데 운수노조는 이번 일을 거치면서 인터넷을 통한 여론의 확산과 수렴이라는 새로운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사이의 소통방식을 '발견'한 것이다. 물론 의제자체가 국민적 관심을 가진 것이기는 했지만 예컨대 '운하반대'와 같은 사회적 담론에 대해서 무심했던 '넷심'이 움직인 것은 책임 있게 무언가를 해보려는 노동조합의 진정성에 대한 확인과 기대라고 본다.

어쨌든 노동조합은 자신의 요구만을 위한 집단이 아닌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호흡하는 새로운 전기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 아무리 실리를 챙겨도 구성원의 자존심을 짓밟는 협상은 구걸이다. 하물며 명분도 실리도 없고 구성원의 동의라는 기본절차도 없는 협상결과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집단이라면 이미 집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프레시안

운수노조-미 국토안전부 협상에서 본 외교통상부의 한심한 작태

운수노조는 노동조합 조직으로서는 아주 특이하게 현재 미국 정부와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4월 13일 부산세관은 한미 SFI(Secure Freight Initiative·화물안보구상) 협약을 맺고 핵 및 방사능 물질에 대한 검색이 가능한 화물영상검색기를 부산 감만부두 허치슨터미널에 시범 설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미국의 안보를 위해 남의 나라에 핵물질 검출을 위한 장치를 설치한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우리 정부가 그 검색기를 수시로 드나들어야 하는 화물차 운전자들에게는 한마디 양해도 없이 이미 협약을 맺어버렸다는 것이다.

운수조노는 즉각 반발했고 급기야 미 대사관과 미국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고위 관계자까지 노동조합과의 협의테이블에 나왔다.

노동조합이 화물영상검색기(RPM)의 안전성에 대한 확신이 없는 한 사용을 거부할 것을 분명히 하자 미국 관계자들은 "250억 원에 달하는 기계가 파손되면 우리가 비용을 대서 고치고 방사선 피폭량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겠다"며 노동조합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런데 정작 그 협약을 체결한 당사자인 외교통상부는 아직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자기 구성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미국정부와 직접 협상을 하는 마당에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는 그게 무슨 문제인지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협상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놀랍게도 똑같다. 한미 SFI협약이나 작금의 쇠고기 협상 모두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의 이해와 요구, 안전과 건강에 대해서는 일말의 고려와 고민도 없는 정부당국의 무책임한 작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그 핵심이라고 본다.

정부가 버린 주권, 국민이 되찾아야
▲ 대한민국에 '어용 집행부'는 있을지언정 대한민국 자체가 어용은 결코 아니다. 지혜롭고 힘 있는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프레시안

아무리 실리를 챙겨도 구성원의 자존심을 짓밟는 협상은 구걸이다. 하물며 명분도 실리도 없고 구성원의 동의라는 기본절차도 없는 협상결과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집단이라면 이미 집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노동조합에서 뒷구멍으로 회사와 협상해서 위원장이 도장을 찍어버리면 우리는 그 위원장을 바로 불신임해서 쫓아내 버린다. 그것도 못하는 노조를 두고 바로 '어용노조'라고 한다.

쇠고기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미리 다 짜놓고 미국 측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는 굴욕적인 협상을 했다. 국가의 검역주권까지 몽땅 다 내주고는 그것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고 있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자 국민의 몰이해와 배후론, 선동론을 뇌까리고 촛불집회에 대해 청소년의 놀이문화가 부족해서 라는 한심한 인식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대한민국은 '어용'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어용 집행부'는 있을지언정 대한민국 자체가 어용은 결코 아니다. 지혜롭고 힘 있는 국민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이해와 요구는 분명하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달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촛불문화제라는 지혜로운 방식으로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나라다. 정부가 버린 나라의 주권과 국민의 자존심을 국민 스스로 되찾으려 애쓰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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