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2007년 5월 <프레시안>에 게재된 "국정원은 '무제한 감청'의 길 열려 한다"라는 기사에서 직무발명 보상에 관한 부분만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기술 유출의 방지책은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 강화'
최근 첨단 기술의 해외 유출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의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연구개발직 종사자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과거 일본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일본 사회가 끌어낸 해법이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 강화'다. 그리고 이런 해법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법률 체계 및 기업 문화 등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연구원에 대한 낮은 보상, 문화적 차이? 제도적 차이!
신기술이 나라 밖으로 유출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러나 그 이유는 대체로 비슷하다. 연구개발직 종사자에 대한 외국 기업의 보상 수준이 국내 기업보다 현저히 높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일본 기업의 경우, 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거두는 전문가형 인재보다 조직을 폭넓게 장악할 수 있는 관리자형 인재를 높이 평가하는 문화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차이가 생겼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화적 측면보다 발명에 대한 보상 제도의 차이에 주목해야한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일본인 나카무라 슈지 씨는 니치아화학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지난 1993년,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해 '일본의 에디슨'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 발명을 계기로 무명의 중소기업이었던 니치아화학은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회사에 이렇게 큰 기여를 한 슈지 씨에게 돌아온 보상은 보상금 2만 엔(약 16만 원)과 과장 승진의 혜택뿐.
이런 보상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슈지 씨에게 2000년 초 미국 샌타바버라 대학이 거액의 연봉과 함께 교수 직을 제안했다. 슈지 씨는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당시 그가 일본을 떠나며 한 말이 일본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슈지 씨가 남긴 말은 "나는 일본을 사랑했지만, 일본의 시스템에는 실망했다"라는 것. 당시 일본 언론은 슈지 씨의 말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 강화' 문제를 공론화했다.
미국에서는 정부나 기업에 고용된 사람이 한 발명으로 큰 수익을 냈을 경우, 수익 중 일정 비율을 발명가에게 돌리는 제도가 발달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피고용자의 발명은 그가 속한 조직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슈지 씨처럼 일본을 떠나는 유능한 발명가가 늘어갈 것이라는 게 당시 일본 언론의 지적이었다.
일본 법원 "연구원의 발명으로 얻은 수익 가운데 일부는 해당 연구원의 몫"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슈지 씨가 미국으로 떠난 2000년 말, 니치아화학은 슈지 씨가 회사 기밀을 유출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이런 소식을 접한 슈지 씨는 격분했다. 그래서 이듬해 슈지 씨는 회사 측이 자신이 개발한 제품의 특허를 독점 사용해 부당 이익을 얻었다며 200억 엔(약 2000억 원)의 대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억 엔은 소송 최대 한계 금액이다.
그리고 2004년 1월, 일본법원은 1심에서 파격적인 판결을 내렸다. 회사 측이 소송액 전액, 즉 200억 엔을 슈지 씨에게 지급하라는 것. 당시 판결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 등 주변 국가에도 큰 충격을 낳았다.
이어 2005년 고등법원은 회사 측의 지급액을 약 6억 엔(약 57억 원)으로 줄였다. 하지만 이런 소송을 계기로 "피고용자의 직무 상 발명으로 회사가 이익을 얻었을 경우, 일정한 비율을 보상해야 한다"는 판례는 일본 사회에 자리 잡았다. 그 이후 일본 법원은 이와 유사한 판결을 연이어 내렸다. 지난해 10월에는 해외 특허를 통해 기업이 얻은 수익도 직무상 발명을 한 직원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판결도 나왔다.
이런 판결의 배경에 있는 것은 직원의 직무상 발명에 대해 정당한 보상 없이 규제만으로 일관할 경우, 일본 경제의 성장을 가능케 했던 유능한 기술자들이 미국으로 흡수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다.
회사 측의 양보 필요한 '직무 발명 보상', 한국에 뿌리내릴 수 있을까
한편 직무상 발명에 대한 일본 사회의 태도 변화는 유사한 법 체계를 가진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법원은 지난 2004년 동아제약 전직 연구원인 왕모 씨가 회사를 상대로 낸 직무발명 보상금 청구소송에서 1억76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일본 법원이 나카무라 슈지 씨에게 200억 엔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뒤, 나온 판례다.
왕 씨는 이 회사 제품개발연구팀 재직 당시, '먹는 무좀약' 제조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데 참여했다. 동아제약 측은 왕 씨가 개발한 기술을 지난 2000년 1월 한 다국적 제약사에 넘기는 대가로 지난 6월까지 92억여 원을 받았으나, 왕 씨에게는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았었다. 결국 왕 씨는 2004년 소송에서 승소하여 보상금을 받아냈다.
이처럼 직원의 직무상 발명에 대해 회사 측이 보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자 정부는 지난해 9월 발명진흥법의 직무발명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직무 상 발명에 대한 보상 체계를 도입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도입됐다.
그 이후 특허청은 기업들을 상대로 직무 발명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홍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이런 홍보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은 사용자 측의 양보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는 정부의 권고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 늘고 있는 기술 유출 사건들이 직원의 직무 발명에 대한 기업과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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