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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사료조치' 파문 일파만파…정부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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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사료조치' 파문 일파만파…정부 "상관없다"

"협상 무효 될 수 있다" vs "우리는 재협상 요구 못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 정부가 미국의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가 '강화'가 아닌 '완화'된 사실을 모르고 사실상 속은 채 협상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11일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진행 중인 쇠고기 검역 기준 입법예고에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발생했다"며 "이를 시정해 입법예고를 다시 할 것과, 협상 과정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 민변은 "비엔나 협약에 따르면 착오와 기망행위가 있는 경우 조약을 취소할 수 있다"며 정부가 '속아서' 맺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은 무효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도 입장이 굳어지고 있다. 통합민주당은 이날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없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처리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쇠고기 협상의 전제조건인 미국의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가 대폭 완화됐다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미국측이 협상의 전제조건을 위반한 이상 협상 자체가 무효화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2005년 미국의 입법예고 그대로 믿은 한국 정부
▲ 11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시장의 전면 개방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이번 논란은 민변 소속 송기호 변호사가 지난 4월 25일 <프레시안>에 보낸 기고를 통해 최초로 제기됐다. 송 변호사는 당시 기고에서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이 내놓은 새로운 동물성 사료 금지 정책을 살펴보면, 주저앉는 증세를 보여 도축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상태로 식용으로 쓰일 수 없는 소라도 그 나이가 30개월 미만이면 뇌와 척수까지도 닭과 돼지의 사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바로 가기: "검역 주권은 어떻게 양도되었나")

그러나 정부는 '미국의 강화된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에 따라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 2일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문답자료'를 통해 "미국의 사료 금지 조치는 30개월 미만의 소라 하더라도 도축 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경우 돼지 사료용 등에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상길 농수산부 축산정책단장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수차례 공식 석상에서 "이런 조치가 우리가 미국을 압박해 얻어낸 성과"라고 주장해 왔다. 이 같은 정부 측 발표는 미국의 2005년 입법예고안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4월 25일 미국 관보에 공포된 내용은 전혀 달랐다. 이에 따르면 광우병이 심각하게 의심돼 아예 도축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소라고 하더라도, 30개월 이상의 소는 뇌·척수를 제거한 부위는 동물성 사료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특히 30개월 미만의 소는 뇌와 척수를 제거하지 않더라도 동물성 사료의 원료로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애초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는 돼지의 사료로 광우병에 감염된 소가 쓰이고, 그 돼지로 만든 동물성 사료를 다시 소에게 먹이면서 광우병 원인체가 확산하는 '교차오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미국 정부의 이번 사료 조치는 광우병 방지를 위한 효과가 사실상 없는 셈이다. 미국은 1997년 8월부터 소, 양 같은 반추동물에게 반추동물을 사용해 만든 동물성 사료는 금지했으나, 닭·돼지로부터 유래한 동물성 사료를 계속 소에게 먹이고 있다.

민변 "정부 주장대로면, '광우병 소'의 SRM을 사람이 먹어도 될 것"

한편, 농수산부는 지난 10일 <경향신문>, <한겨레> 등이 이런 내용을 보도하자 뒤늦게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별 문제는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농수산부는 해명 자료에서 "30개월 미만 소의 뇌, 척수는 (국제수역사무국 기준대로라면)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SRM)이 아니므로 실제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또 농수산부는 "지난 2일 설명한 내용은 미국 FDA가 25일 발표한 보도 자료를 인용한 것인데 이는 실제 관보 게재 내용 간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책임을 FDA 측에 떠넘겼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도 실제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프레시안>의 확인 결과 미국 FDA의 보도 자료는 관보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었다. 더구나 송기호 변호사는 이미 미국 FDA가 낸 보도자료를 인용한 기고를 <프레시안>에 싣기도 했다.

또 민변은 기자회견문에서 "이번 사태는 식용목적 도축검사에 합격한 소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광우병 증세 등이 의심되어 도축검사에 합격하지 못한 소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그러므로 SRM의 구분이나 범위 개념이 도축검사 합격 소와 동일하게 적용되기 어려운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만일 농수산부의 주장대로라면 광우병에 직접 걸린 소라도 30개월령 미만이면, 편도와 소장원회부를 제외한 뇌, 척수는 SRM이 아니므로 사람이 먹어도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민변은 "이번 사건의 진실 규명이야말로, 30개월령 제한 해제 문제를 좌우할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농수산부 "사료 조치 달라져도 이의 제기 못한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수산부는 11일 민변 기자회견에 관한 해명자료를 재차 내고 "지난 4월 25일 미국 연방관보에 게재된 사료 조치 내용이 2005년 입안예고안 중 일부를 수정한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30개월 미만 소의 뇌와 척수가 '광우병 위험 통제국'의 경우 광우병 위험물질(SRM)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측이 요구한 교차오염 방지의 목적 달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다시 한 번 밝혔다.

이상길 단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 FDA 영문 보도자료를 잘못 해석한 데서 빚어진 실수였다"고 인정하면서도 "미국과 협상 과정에서 강화된 사료 금지 조처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우리가 미국 쪽에 명확히 요구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 단장은 "따라서 사료 조치의 실제 내용이 달라졌다고 해도 우리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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